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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그림보다 쉬운 그림으로

열등감에서 이야기로

by 송알송알


어딘가에 열등감이 있는 사람은

그 결핍을 채우기 위해 애쓴다.

나에게 그것은 ‘그림’이었다.


‘잘 그려 보이고 싶다’는 마음은

단순함보다는 자세함으로,

느낌보다는 정확한 형태로 기울게 했다.

답이 명확한 그림.

보는 사람도 인정할 만한 그림.

나도 그런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래서 언제나 ‘잘 그린 그림’을 연습했다.

하나라도 더 디테일을 넣어야 할 것 같았고,

더 넓은 책상, 더 다양한 도구를 쓰는 이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현실은, 종이 한 장 꺼내는 것조차 어려웠다.

아이를 안고 재우다가 애써 눕혀 책상으로 돌아오면

금세 깨서 울어버리기 일쑤였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낮잠은 줄고, 움직임은 늘었다.

계획대로라면 작업을 시작해야 할 시기였는데

완성된 작품은 하나도 없었다.


그때는 몰랐지만

나는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사람’이 아니라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었던 것 같다.


말수가 많지도, 적지도 않았고

사람을 즐기는 편도 아니었지만

육아는 너무나 외로웠다.


또래보다 조금 빨리 결혼하고

아이를 낳은 나에겐

마음을 나눌 친구도 드물었다.

남편은 잠시 일을 쉬던 시기였고,

늘 붙어 있는 미숙한 우리는

사소한 일에도 자주 투닥였다.


그렇게 꺼내놓지 못한 말들이

가슴 안에서 뭉치고, 굴러다녔다.


그래서,

그림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친구에게 이야기를 건네듯,

쉽게 그림을 말처럼 쓰고 싶었다.

복잡한 그림은 필요하지 않았다.


가장 단순한 선과 도형.

동그라미, 세모, 네모, 점과 직선.

그걸로 나와 그를 닮은

동물 캐릭터를 만들었다.


색상환에 있는 기본색으로 옷을 칠하고,

무겁지 않은 그림으로

내 마음을 조용히 담아냈다.


넉넉하지 않은 주머니,

초보 엄마의 고민과 조바심,

20대의 마지막 해를 보내고 있는

흔들리는 자아.


아이를 안고 재우면서도,

이유식을 만들면서도

이야기를 떠올리고 그림을 구상했다.

조각난 시간들을 모으고 모아서

틈만 나면 자리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그림일기를 카카오스토리에 올리자

친구들이 공감해 줬다.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공감을 받은 건

처음이었다.


나도 누군가가 공감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구나.

사람들은 이런 간단한 그림을 좋아하는 걸까?


외주 문의도 들어왔고,

계약서도 쓰고,

캐릭터 등록까지 생각했다.


하지만 곧 한계를 느꼈다.


단순한 얼굴로는

깊은 감정을 표현하기 어려웠다.

말하고 싶던 일상의 작은 이야기들이

그림 안에 담기지 않았다.


결국,

또 그림에서 멀어졌다.


첫 캐릭터는

끝맺지 못한 이야기들을

내 마음속에 아쉬움으로 남겨두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림을 잘 그리는 것보다

내가 정말 하고 싶었던 건 ‘이야기’였다.


대화에 휘황찬란한 말보다

그 안에 담긴 진심이 중요하듯,

그림도 나에겐

화려한 기교보다

담백한 전달력이 필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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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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