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연습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마음먹었을 때,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매일 그리는 루틴’을 만드는 일이었다.
표정 그리기 책에서 하루 한 장,
디지털 드로잉 책에서 하루 한 챕터,
그리고 짧은 크로키 연습.
공부하려고 마음먹으면 배워야 할 게 끝도 없이 많았다.
매일 그림을 그리면서도 늘 시간이 부족했고,
어느 날은 그 부족함이 조급함이 되었다.
그래서 알게 됐다.
조금 더 잘 그리고 싶은 마음이 루틴을 무너뜨린다.
매일 그리기는 근육을 키우는 ‘준비 운동’에 가까웠다.
눈에 잘 보이지 않아도,
조금씩 그림을 그리는 힘을 길러주는 일.
그런데도 루틴이 한번 흐트러지면,
손을 놓는 건 순식간이었다.
습관을 만드는 건 어렵지만,
잃어버리는 건 너무나 쉬웠다.
출산과 육아로 그림을 멀리했던 시간.
다시 그림을 시작할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결국 ‘매일 그리기’ 덕분이었다.
이번엔 혼자가 아니었다.
작가들의 그림 챌린지를 따라갔다.
예전엔 그냥 그리는 데 의미를 두었다면,
이제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다.
하지만 막상 결심을 하고 나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건 언제나 똑같았다.
“그래서… 뭘 그리지?”
그때 챌린지는 주제를 던져줬고,
그 주제는 내 안의 고민을 줄여줬다.
함께 그리는 사람들의 그림과 피드백은
매일의 그림을 더 즐겁게 만들었다.
매일 완성된 그림을 하나씩 내놓는 건
연습이라기보다 작은 성취의 반복이었다.
그건 자투리 시간을 다르게 바라보게 해 줬다.
짧은 시간도 쌓이면 근력이 된다는 걸 알게 해 줬다.
지금도 나는 매일 아침 30분,
아이들의 사진을 보며 그림을 그린다.
어린이 그림책을 하고 싶기 때문에
아이의 몸짓, 포즈, 표정을 담으려고 한다.
하지만 늘 같은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다 보면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포트폴리오로 만들고 싶어 완성도를 욕심낼 때,
어김없이 손이 멈칫거린다.
그럴 때는 다시 이 말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그래, 그냥 그리자.”
매일 그림은
내가 ‘그리는 사람’이라는 걸 기억하게 해주는 일이다.
완벽하지 않아도,
그림이 그날의 나를 품고 있다면
그건 이미 충분하다.
매일 그린다는 것,
그건 나를 믿는 방식이고,
내 삶을 조금씩 바꾸는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