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초등학교 5학년 때, 동화 쓰기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글을 쓰는 건 재미있었지만, 맞춤법도 못 지키고 책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는, 늘 ‘나는 글을 못 써’라고 생각했다.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어 시각디자인과에 진학했다. 그러다 티브이 없이 지낸 시기에 우연히 세계문학전집을 읽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것도 있었지만, 억지로 읽은 것도 많았다. 작가가 되려면 글을 많이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쯤 문창과 복수전공을 고민하며 수업을 몇 개 기웃댔다. 시 수업을 들으며, 읽을수록 깊어지는 시의 매력에 한동안 빠지기도 했다.
그렇다고 내가 글을 잘 쓴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글짓기 시간은 원고지를 채우는 일 자체가 고역이었고, 감상을 쓴다는 건 너무 막막했다.
하지만 아빠가 해외 근무 중일 때, 군대 간 교회 오빠들에게 보낸 편지는 꽤 열심히 썼다. 유창하진 않았지만,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이 그들에게는 그리운 풍경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싶었다.
결혼 후엔 무겁게 가라앉은 마음을, 틈틈이 일기장에 적어두곤 했다. 말하지 못한 마음을 어디에라도 덜어두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보니 내가 쓴 글이라고는 편지와 일기뿐이었다. ‘글쓰기’는 여전히 나와 먼 이야기였다.
그런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건, 한 브랜딩 수업에서였다.
수업에서는 ‘나’를 탐구하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글을 써 내려가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누군가가 나의 장점을 찾아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탐색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그림책을 하고 싶어 했고, 일러스트레이터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런데 여전히 안갯속을 걷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더 써보기로 했다.
글쓰기 모임에 들어갔다. 매일 주어진 질문에 글을 쓰고, 일주일에 한 번씩 합평을 했다.
내 글을 누군가가 진심으로 읽어주는 경험은 처음이었다.
부끄러워 구석에 숨겨두었던 상자를 누군가가 꺼내 함께 들여다보고, 웃고 울어주는 느낌이었다.
그 생생한 순간들은 나에게 온전히 위로가 되었다.
합평의 시간을 통해 남편과의 관계에서 쌓였던 감정도 조금씩 정리되었고, 창작자로서의 나 자신도 더 확신할 수 있었다.
별 볼일 없는 글을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다니.
그림으로 받은 칭찬과는 또 다른 기쁨이었다.
그래서 나는, 글도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