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나를 몰랐을까
“무얼 그리지?”
하얀 종이를 펼칠 때마다 늘 떠오르던 질문이었다.
그림을 업으로 삼고 싶다고 결심했지만, 무엇을 그려야 할지 몰랐다.
매일 그리고는 있었지만, 방향 없이 떠도는 기분이었다.
SNS에서는 매일 그리기만 해도 외주가 들어오고,
수익이 생겼다는 이야기가 넘쳐났다.
나도 ‘매일 그리면 뭐라도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림 챌린지에 참여했다.
주제를 따라 그리고, 다른 작가들과 나란히 그림을 올렸다.
시간이 흐르자 단톡방에 이런 말이 올라왔다.
“이번에 외주 들어왔어요!”
“팔로워가 확 늘었어요!”
그때부터 나는
‘왜 나는 안 되지?’
‘나는 뭘 잘못하고 있는 걸까?’
끊임없이 의심하게 되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브랜딩 수업이나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들었던 말은
“그림체가 통일되지 않아요.”
“스타일이 정해지지 않았어요.”
사실 나도 알고 있었다.
색연필로 그렸다가, 수채화 느낌을 따라 해 보다가,
어떤 날은 캐릭터를, 어떤 날은 실사 드로잉을 해보았다.
어느 하나도 확실히 좋아하는 것도 없었고,
피드백도 고만고만했다.
이 그림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건가?
저 스타일이 더 괜찮은 걸까?
결국 나는, 그림체가 없었다.
“도대체 그림체는 어떻게 찾는 거지?”
어떤 사람은 취향에서,
어떤 사람은 감정에서,
또 어떤 사람은 이야기에서
자기만의 스타일을 발견한다는데.
나는 내 취향도,
내가 민감하게 느끼는 감정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당연히
무슨 이야기를 그리고 싶은지도 몰랐다.
어쩌면 나는 그냥,
나를 잘 모르는 상태였던 것 같다.
왜 나는 나를 잘 모를까?
일기를 자주 썼다면,
책이나 영화의 감상을 기록했다면,
그림보다 글을 먼저 시작했다면
조금 더 빨리 나를 이해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나는
그림체를 찾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의 이야기부터 찾아보자고.
그림보다 먼저,
나를 그려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