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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매한 재능, 애매한 방향, 그 사이에서

명확하지 않아도, 나는 내 색을 모으고 있었다.

by 송알송알

막내를 낳고,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제가 실력이 부족해서요…’

이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늘 이렇게 대답했다.

“잘 그리시는데요?”


그 말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늘 마음에 걸렸다.

그림을 잘 그리고 싶은 내 기준은 ‘일반적인 평균’이 아니라

‘직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한 번이라도 일을 해본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어야,

비로소 ‘일러스트레이터’라 불릴 자격이 있다고 느꼈다.


글도 마찬가지였다.

브런치는 한 번에 붙었고,

지원서도 제법 잘 써서 사업을 따낸 적도 있다.

한 번은 생협 월간지에 글을 기고해 원고료도 받았다.

다만, 그 글은 편집자님이 밭이랑을 갈 듯 싹 다 고쳐 주셨다.


그러니, 내가 쓰는 글은 ‘아주 엉망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감히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은 아닌,

그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도 계속한다.

왜냐하면 어제보단 오늘이 조금은 나아졌을 테니까.

꿈이라는 건, 안 하는 것보단 계속하는 쪽이 맞으니까.


하지만 여전히 물음은 남는다.

내 그림은, 내 글은… 어디로 가야 할까?


어린이 책에 어울기엔 색감은 너무 차분하고,

어른을 위한 일러스트로는 인물이 너무 동글동글하다.

확실한 기승전결보단 모호한 결말이 좋고,

명랑한 판타지보단 묵직한 여운이 좋다.

결국 그림도, 글도 무엇 하나 명확하지 않았다.


‘이건 애매한 실력 때문일까?’


그래서 어떤 날은 어린이책을 겨냥해 색감을 바꾸고,

또 어떤 날은 멋진 작가의 스타일을 따라 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따라 하지도 못하고, 내 손에도 붙지 않는다.

결국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 시간들이 다 의미 없이 흩어져 있는 안개 같았는데,

이야기라는 바늘로 꿰어보니

그 모든 흔들림이 결국 ‘나의 색’이었다.


이것도, 저것도

결국 내가 만들 수 있는 무지개였다.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에 흩어져 보였던 것뿐.

그림체는 없었지만,

그림을 그리는 사람으로서의 방향은 조금씩 생기고 있었다.


어설프게 시작한 글과 그림들이,

결국 내가 가야 할 좌표를 향해

하나씩 점을 찍어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자랑할 것 없는 애매한 재능으로

애매한 방향을 향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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