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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지의 연말

소설 <거기서 페리를 만나> | 포르투 편 : 8 화

by 성게 Dec 12.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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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를 마친 겨울 해가 다시 서쪽 바다로 기울어 가고 있었다. 


우리는 코트를 찾아 밖으로 나왔다. 다시 한번 도시의 일몰을 보고 싶다는 나의 말에 페리가 택시를 잡았다. 


“모로 공원으로 가죠.”


연말 거리라 차가 가득했다. 택시는 큰길을 피해 현지인들이 다니는 작은 골목들을 지났다. 하늘은 점점 더 자몽 빛으로, 또 오래된 벽돌 색으로 물들어 갔다. 관광객이 몰리는 대로를 피하는 운전기사의 센스에 감탄하던 순간,  택시는 오전의 ‘파쎄오 알레그레’에서 멈췄다. 


“구시가로 가는 길은 여기뿐인가요?”


두로가 오른쪽으로 흘러 내려갔다. 페리는 창 밖을 바라보다 휴대폰을 확인하고 메시지를 몇 개 보냈다. 택시는 2차선 도로에 갇혀 강 건너편 가파른 포도밭 뒤로 져가는 마지막 해 줄기를 받고 서 있다. 도시의 택시기사에겐 겨우 오늘의 마지막 햇볕이지만 여행자에겐 영영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석양이 아쉬워 앞 좌석으로 몸을 기울였다. 


“여기서 내리죠.”


페리가 회색코트를 집어 들었다.


“괜찮습니다. 택시도 이런 길에 갇혔으니 내리기도 그렇고요.”


“조금만 더 가다 내리죠.”


우리는 포르투의 굳건한 절벽에 단단하게 박힌 베드로 교회를 조금 지나 내렸다.


“내가 타자고 했으니 미안해 말아요.”


페리는 지갑을 꺼내 택시비를 후하게 치렀다. 가만 보면 페리는 입고 있는 것들에 비해 돈이 더 많은 사람처럼 굴었다.


“파쎄오 알레그레는 이름처럼 빠른 길이 아닌 모양입니다.”


아쉬운 마음을 덜기 위해 농담을 던지자 페리가 빙긋 웃었다.


“사실 이 길은 즐거운 산책길입니다. 이름대로 이 길은 차를 타고 가는 것보단 걷는 것이 낫군요.”


모르는 언어의 뜻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던 것도 모자라 까먹지도 않고 기억한 자신이 우스워 웃음이 터졌다.






강 건너 가파른 포도밭에 점점 검은 그늘에 잠겼다. 


그 위로 바위와 나무 끝이 붉게 물들어 간다. 택시 안에선 아쉽기만 하던 풍경이 다시 보였다. 푸른 물 빛이 회색으로 바뀐 저녁의 두로 강은 오렌지색 하늘과 잘 어울렸다. 우리는 이 도시를 방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석양의 반대편을 보며 걸었다. 푸른빛에서 보라 빛으로 물들어 가는 검은 밤이 하얀 달을 내놓았다. 


“대구구이를 먹을까요?”


“좋죠.”


시내와 한참 떨어진 강가의 비탈진 돌길에 테라스를 낸 오래된 대구구이 집에 앉았다. 건물 사이 좁은 골목에다 그릴을 내놓고 소금 간을 한 대구를 석쇠에 구워 내놓는 집이다.


“많이 걸었나 봅니다. 다리가 좀 아픈데요?”


신발 밑창에서 발이 떨어지자마자 피가 통하면서 발바닥이 부푸는 느낌이 났다.


“그래도 여행의 피곤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나는 두로 강에 남은 이국적인 석양과 숯불에 구워지는 베칼랴우의 구수한 냄새, 부드러운 거품이 듬뿍 올라간 맥주에 들떴다. 멀리 아름다운 포르투에 하나 둘 불이 켜 지는 풍경이 보였다.

 

“이 대구 정말 맛있습니다.”


페리 덕분에 포르투 여행 일정이 만족스러웠다. 이토록 편안하고도 즐거운 여행. 까다로운 불평이나 작은 의견차이 하나 없는 완벽한 동행을 만나 기뻤다. 


“포르투 어디를 가더라도 갓 잡은 대구를 씁니다. 맛이 없을 수가 없어요.”


언뜻언뜻 비치는 자동차의 불빛에 날 선 두로의 물결이 보였다. 지느러미 같은 두로의 등이 바짝 세워질 때가 아니면 깊은 두로의 물길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두움 밤이 왔다.


어둠이 내린 검은 두로를 따라 시내 쪽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띄엄띄엄 선 가로등 말고는 별다른 불빛이 없는 길. 도시에 모여 있는 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오래된 돌길을 밟으니 나그네가 되어 문명의 도시에 갓 입성한 듯 문명의 안락함이 밀려왔다. 자동차와 오토바이에서 내린 사람들이 포트 와인이 마르지 않는 낭만적인 테라스가 가득 차 있었다. 페리는 대구구이 집에서 먹지 못한 디저트를 찾고 있었다. 스마트폰을 찾아들었다. 페리가 손을 흔들었다.


“이 쪽으로 가요. 마티니 바는 어떻습니까?”


높은 야자나무 두 그루를 마주 본 카르모 성당 쪽으로 간다. 밤거리는 촉촉한 밤이슬에 젖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내일 아침이면 포르토의 태양이 축축한 밤을 개운하게 말릴 것이다. 이 도시의 태양은 단 하나의 젖은 돌도 용납하지 않는다. 가로등 불에 잔잔하게 빛나는 오래된 도시의 성벽에 박힌 돌들 사이사이 이끼 같은 그림자가 숨어 있었다. 그리운 얼굴들이 떠올라 싱숭생숭했다.


“아까 말한 베칼랴우 어묵 튀김집이에요.”


페리가 뿌연 김이 가득 서린 창문 앞에 멈춰 서 있었다.


“너무 배부른데요. 다음에 먹죠…. 그렇지만 다음은 없을지도 모르죠?”


언제가 될지 모른다는 아쉬움에 일부러 튀김 하나를 시키려는 찰나 페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튀김은 딱 먹고 싶을 때가 아니면 체하기 쉬우니까요. 내일 아침에도 문을 여니까 무리하지 마요. 저번에 이걸 먹고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무척 아팠습니다. 뼈 마디마디가 아픈 채로 비행기를 탔죠. 그렇게 체한 건 정말 오랜만이어서 아득한 시절에 아팠던 기억까지 몽땅 떠올랐어요.”






작은 골목길 사이 거대한 벽을 온갖 종류의 마티니 병으로 가득 채운 바로 들어갔다. 


달리 반들반들한 나무 의자와 테이블이 세월을 가늠하게 하는 모던한 바. 여러 가지 붉은 햄과 하얗고 노란 여러 질감의 치즈가 전시된 유리 냉장고, 고전적인 검은 정장 조끼를 입은 종업원들의 자유로운 스타일, 네덜란드 맥주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배달 트럭, 붉은 조명을 반사하는 페리의 검은 노트 등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것들이 주는 느낌을 받았다.


창 밖에는 낙엽이 뒹구는 돌길에는 라탄의자들이 놓인 여름 테라스가 있었다. 바로 저런 것들이 포르투의 계절을 가늠할 수 없게 한다. 저녁을 먹으며 마신 맥주 한 잔이 전부임에도 아득한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잔잔한 모던 록 음악이 들렸다. 연말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가득한 바에서 우리는 테라스 쪽 창가에 앉았다. 


페리는 모처럼 들어온 마티니 바에서 와인을 주문했다. 곧 물 한 병과 치즈 플래이트, 노란 꾀꼬리가 그려진 두로 강변의 포도로 만든 와인 한 병, 그리고 마티니 비앙코 한 잔이 나왔다.


“꾀꼬리가 철새인 거 알고 있어요?”


별 감흥 없이 고개를 흔들었지만 페리는 설명을 멈추지 않았다.


“꾀꼬리는 여름 철새입니다. 이 친구들이 어디까지 날아갔다 오는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참새만 한 작은 새가 5천 미터 상공을 날아 대륙을 건넌답니다. 비행기보다도 높이, 이 손바닥보다 작은 친구들이 날고 있는 거죠. 이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미지의 사건이 넘쳐나는 세계지요. 그렇게 높은 곳에서 이렇게 작은 친구들이 맨몸으로 날아다니고 있을 거라고 상상해 본 적 있습니까?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이 놀라운 세계에 매일 일어나고 있습니다.”


나는 새들을 친구라고 부르는 페리와 친구가 되고 싶었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 반가운 인사를 나누는 연말의 바. 


올 한 해 동안 있던 일들이 그리움만 남은 추억으로 전환되려 했다. 씁쓸하다 못해 슬프고 화났던 일들까지도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그러나 나는 며칠 동안의 연말만 견디면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페리가 아니었다면, 홀로 타국에서 연말을 맞았을 것이다. 그 계획이 망쳐진 것이 다행이었다. 혼자 있었다면 무엇인 지도 알 수 없는 것을 잃어버린 죄책감에 목숨을 끊어 버렸을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페리는….’


페리는 홀로 연말을 맞으러 포르토에 온 것일까. 그 이유가 노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노트는 문득문득 떠올라 불현듯 모든 사고를 끊었다. 서서히 운을 뗐다.


“페리는 이 시기에 혼자 여행을 하려고 했던 겁니까?”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고, 포르투는 겨울 날씨가 좋죠.”


더 이상 물을 필요 없는 간단한 대답을 내놨다.


“사실 저는 이래저래 생각할 것이 많아서 혼자 여행을 왔습니다.”


페리는 조용히 내 말을 듣고 있었다.


“생각이 많았겠군요.”


“그렇죠.”


나는 살아가야 한다는 중압감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제대로 된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고 싶었다.


“포기하지 않고는 살 수 없죠. 하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을 갖는 건 좋은 거예요.”


페리는 교과서적인 말을 하며 빈 잔에 물을 따라 주었다.


“긴 인생이 항상 재미있을 수는 없죠. 그래도 재미란 참아야 생기는 거라고도 하잖아요.”


나는 별말 없이 남은 마티니를 다 마셨다. 페리가 새 잔에 와인을 따라 주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가지고 속상해할 필요 없습니다. 앞으로 즐겁게 할 일을 생각해 봐요.”


“정말 그랬으면 좋겠네요. 페리는 어떻습니까? 여행에 일상을 끌어들이고 싶진 않습니다만.”


페리가 바깥을 바라보았다. 낙엽이 뒹구는 한 여름의 테라스, 아니 겨울의 테라스.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일이 아니어서 꾸준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만하고 싶을 때는 없었습니까?”


“포기는 의외로 자의로 되는 게 아닙니다.”


별 것 아닌 대답이었지만 그 순간, 페리가 보통의 법칙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하기 싫은 일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이었다. 한 번 인생에서 엮이면 영원히 끊어낼 수 없는 사람. 차라리 애초에 모르는 편이 나은 사람.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어떤 일이든 끝장을 보고 만다. 나는 어둠이 걷히지 않는 끝없는 절망을 잔잔히 이겨내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라지지 않는 찝찝한 죄책감에도 굴하지 않는 사람. 페리야말로 그런 사람 같았다.






카메라를 꺼냈다. 렌즈를 댔을 때 찍을 때의 감동이 있는 사람이 있는 가 하면, 현상을 하고 나서야 감동을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사진 속 눈빛 때문에, 어깨가, 코의 위치가, 입가를 움직이는 근육에 걸린 작은 선이, 빛에 반사되어 누구도 낼 수 없는 분위기를 낸다. 그런 사진들은 고요하지만 휘몰아치는 여러 종류의 강렬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페리가 어떤 사람 인 지 알고 싶었다.  


“디저트를 시키려고 하는데.”


“아니요 전 괜찮습니다.”


페리와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던 종업원이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검붉은 잼과 치즈를 가지고 돌아왔다. 바깥에는 바람이 불었다. 가로등이 밝게 빛나 주변을 동그랗게 비추었다. 겨우 1미터 남짓 주변을 밝히는 위태로운 빛, 그 정도 빛이야 삼키고도 남을 깊고 검은 골목길의 대조. 카메라를 들어 초점을 맞췄다. 조리개를 돌리는데 페리가 물었다.


“올여름에 만든 잼이겠죠?”


“그렇지 않겠어요? 그게 정말 여기서 만든 거라면.”


카메라 초점을 맞추느라 건성으로 답했다. 가로등 뒤로 무언가 인영이 잡혔다. 방금 전까지 없던 검붉은 색깔의 그림자. 카메라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창문 가까이로 다가갔다. 한 남자가 코르크 색 코트를 입고 길을 건너 바 쪽으로 걸어왔다. 눈이 마주쳤다. 그는 눈인사도 없이 페리 쪽으로 눈을 돌렸다. 코트깃에 파묻혀 얼굴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아는 사람도 아닌 것 같은데 인사를 합니까?”


“눈이 마주쳤거든요.”


그 남자는 창문 밖 테라스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얇은 노트를 꺼내 읽었다. 잉크로 쓴 글이 빼곡히 차 있었지만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우리에게 등을 돌리고 혼자 앉아 장갑을 낀 채 붉은 와인을 마셨다. 페리가 잼을 올린 치즈를 권했다.


“이거 맛있습니다.”


페리 쪽으로 카메라 렌즈를 돌렸다. 


“날 찍으려고요?”


연말 파티를 즐기던 사람들이 커다란 렌즈를 보더니 덩달아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다. 


“어디서 왔어요? 친구! 우리도 잘 찍어줘요!”


흥겨운 사람들의 성화에 엉겁결에 몇 번 정도 셔터를 눌렀다. 페리는 그새 가장 가까이 앉아 있던 중년의 신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는 페리가 권한 치즈와 잼을 먹더니, 자기 자리에서 와인을 가져와 따라 주기까지 했다. 이런저런 상황에 휩쓸려 사진 찍기를 그만뒀다. 그러고 보면 굳이 페리의 사진을 간직할 이유도 없다. 


창 밖에 코르크 색 코트를 입은 남자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겨울바람이 부는 대리석 테이블에 놓인 빈 잔이 끝내 바닥으로 밀려날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다. 






“슬슬 들어갈까요?”


여행의 마지막 밤이었다. 물론 더 있고 싶다. 그러나 조금 더 앉아 있으면 분명 괴로운 일상이 침범할 것이다. 여행에 일상을 끌어들이지 않기로 했다. 일상을 탈출해 만난 사이에 하지 말아야 할 금기어는 ‘돈을 벌고 사는 일.’에 관한 것이다. 여행의 낭만이 현실에 묻혀버리게 둘 순 없었다.


“두고 가는 거 없죠?”


페리가 테이블을 한 번 더 살펴보았다. 친한 사람들처럼 옆 테이블과 새해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자정이 넘어 새해를 드디어 하루 남긴 포르토의 밤공기는 코트 속이 훈훈하게 차오를 만큼 따뜻했다. 바를 나오며 옷을 잔뜩 여민 것이 민망할 정도였다.


“그 사람은 어째서 그렇게 꽁꽁 싸맸을까. 춥지도 않구만….”






숙소로 돌아와 덧문을 활짝 열었다. 밤의 포르투 골목에서는 그리운 골목길 냄새가 났다. 


늘어놓았던 짐을 걷어 가방 속에 넣었다. 충전기와 세면도구 말고 이제 이 방에 내 것은 없었다. 여행가방을 닫아 잠그면 호텔 방과 나는 모르는 사이가 될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이별을 고하는 일이었다.


침대에 누우니 금방 졸음이 몰려왔다.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흰 파라솔을 펴며 웃던 종업원의 입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는 내게 똑바로 눈을 맞추었고 내가 잠에 빠져들자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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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게의 말 : 

따뜻하고도 차가운 12월,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거기서 페리를 만나> 포르투 편은 10 화 완결입니다. 벌써 8 화올라갔네요. 이 여행의 끝을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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