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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트 체크아웃

소설 <거기서 페리를 만나> | 포르투 편 : 9 화

by 성게 Dec 1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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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덧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옆을 더듬어 시계를 찾았다. 10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 밖에서 한 번 더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페리였다.


“일어난 겁니까? 먼저 가버린 줄 알았어요.”


페리는 로비의 흰색 소파에 앉아 노트북 화면 속을 보며 열중하고 있었다. 크레마 자국이 남은 빈 커피 잔이 보였다. 누가 옆에 온 줄도 모르고 노트북을 응시하더니 어깨를 두드리자 고개를 돌렸다.


“미안합니다.”


“괜찮습니다.”


페리는 호텔 카페의 바리스타와 프런트 직원에게 살가운 작별 인사를 건넸다. 덩달아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인사를 나눴다. 호텔을 나와 마지막으로 파스테이 데 나타와 비카를 사 카타리나 성당 앞 돌 층계에 앉았다.






한 해의 마지막 날, 들뜬 사람들을 맞이하려는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분주했다. 


여행객이란 마음대로 왔다가 마음대로 떠나는 사람이다. 돌길을 굴러가는 내 캐리어 바퀴 소리 때문에 정신없이 시끄러웠다. 단정한 코트를 입고 가죽 배낭 하나를 맨 페리는 이 도시에 사는 젊은 직장인처럼 보였다. 낯선 도시의 특별한 친절이나 영문 모를 소외는 페리에게 해당되지 않는 것 같았다. 내려가는 동안 내게 잔잔한 미소를 띠며 일상의 인사를 건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포트와인 투어를 못 했군요.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데 좀 아쉽네요. 통조림 가게에도 안 들어가 봤고요. 떠날 때가 되니 정말 아쉬운데요.”


“커다란 오크 통은 다른 도시에도 많습니다. 그 가게 안에는 정말 통조림들 밖에 없어요. 그리고 생선은 잡자마자 먹는 게 제일 맛있어요.”


페리가 빙긋 웃었다.


“아무리 작은 도시라도 골목골목을 샅샅이 다 알기 위해선 얼마만큼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아쉬워할 것 없어요. 아무리 오래 살아도 모르는 걸 알 수는 없거든요.”


페리는 아쉬운 기색 없이 평온한 일상을 시작한 사람처럼 오르막 길을 걸어 올라갔다. 정말로 여행이 끝나가고 있었다. 여행 동안 좋은 친구였던 페리 와도 헤어져야 했다. 


“페리는 무슨 일을 합니까? 아직 그런 것도 못 물어봤네요.”


“프로그래밍을 합니다.”


“그랬군요.”


그러고 보니 무슨 직업이든 페리에겐 별 무리 없이 어울렸다. 나도 침착하고 어른스럽고, 천진한 표정을 가진 믿음직한 사람이 되고 싶다.


“독일에 있다고 했죠. 혹시 어느 도시인 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친구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난 건 오랜만이었다. 나는 스마트 폰을 꺼내 오리너구리 앱을 켰다.


“그 앱, 제가 만든 겁니다. '오리너구리'요.”


페리는 손가락으로 휴대폰 귀퉁이를 가리켰다. 


자극적이지 않은 여행 정보가 많은 오리너구리 앱은 전 세계 여행자들에게 인기 있는 앱이었다. '오리너구리'는 여행이 일반인들에게도 별 특별한 일이 되지 않은 요즘엔 일상 영역까지 확장되고 있었다. 동행을 찾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앱 덕분이었다. 관심사를 설정해 두면 ‘추천 친구’ 란에 뜬 사용자를 찾을 수 있는 방식이었다. 포르토에 도착한 날 '오리너구리'가 내게 페리를 추천했고 나는 동반 여행을 물었다. 그리고 페리가 승낙 메시지를 보내왔던 것이다.


“앱 제작자요? 개인적으로 정말 좋은 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걸 페리가 만들었다니….” 


행운아가 된 기분에 휩싸였다. 


“이거 정말 대단한 우연입니다.”


페리의 갈색 눈동자에 환한 빛이 돌았다.


“컴퓨터가 계산할 수 있는 무수한 차원의 정보들이 교환되는 현상은 인간이 평생 생각해도 정확하게 그려낼 수 없을 만큼 복잡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우연도 모두 계산할 수 있을 만큼.”


여유롭고 침착한 말투였지만 그는 여느 때처럼 웃고 있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 일은 계산할 수가 없었습니다.”


“무슨 계산이요?”


“죄송합니다. 원한다면 여행 경비는 모두 보상해 드리겠습니다. 다른 보상을 원하시면 여기로 연락 주시죠.”


페리가 너무나 공손하게 사과를 했기 때문에 영문을 모르는데도 송구한 마음이 들었다. 


“페리가 왜 보상을 합니까?”


페리가 노트를 꺼냈다. 그 검은 노트는 환한 포르투의 햇볕을 빨아들였다. 


“제 데이터는 일반 사용자에게 뜨지 않습니다. 그러니 누구도 저에겐 메시지를 보낼 수 없습니다. 물론 어느 프로그램이든 빈틈은 있지요. 아무리 대단한 프로그램이라고 해도 사람이 만들었으니 다 뚫을 수 있는 방법이 있거든요.”


“네?”


“이건 제 잘못입니다. 오류를 막지 못했으니까요.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오류는 빠른 시일 내로 고치겠습니다.”


일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 없어도 다음 휴가 일정이 궁금할 정도로 나는 그저 페리를 알게 된 것이 좋았다. 오리너구리 앱이 무엇을 어떻게 잘못 분석했든 내 입장에선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그러나 페리에게 나는 수많은 이용자 중 한 명일 뿐이라니 실망이 컸다.


“비행기 시간 늦겠습니다.”


오류가 난 알고리즘은 수정될 것이다. 그러므로 같은 오류가 일어날 확률은 희박하다. 다음번에 같은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오류가 아니라 행운이다. 언제나 행운은 오류보다 희박한 확률로 일어난다. 둘 다 확률적으로 계산하면 다를 것이 없음에도 삶에서 더 자주 마주치는 것은 오류 같은 불운들이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불운을 맞이하게 될지 생각하니 캄캄했다. 






시청을 돌아 들자 환한 공터가 보였다. 트린다드 역에는 처음 도착했던 날처럼 사람이 많았다. 몇몇 다급해 보이는 관광객들이 새치기를 하면서까지 기차표를 사 급하게 승강장에 뛰어올랐다. 기차는 아직 들어오지 않았으니 어차피 같은 승강장에서 만나게 되어있다. 승차권 발급 자판기 앞에서 페리처럼 여유롭게 표를 샀다.


‘노란색 라인이었나.’


페리가 보라색 라인을 가리켰다. 물론 페리가 가르쳐 주지 않았어도 노란색 열차를 탈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검표기가 노란색이었다. 


‘오류는 고치면 돼. 행운을 기다리지 뭐.’ 


이어폰을 꺼냈다. 쳇 베이커의 Strollin’이 재생됐다. 언제나 자욱하게 껴 있던 쳇의 트럼펫 소리에 안개가 걷혀 있었다. 포르토의 햇볕 아래에선 앨범 속에 낀 안개마저 말끔히 걷혔다.


기차가 들어와 정차했다. 페리와 나는 모르는 사람처럼 들어가 4인석 좌석에 앉았다. 커다란 배낭과 캐리어를 끄는 젊은 프랑스 친구 두 명이 마주 보고 앉아 신나게 떠들어 댔다. 페리는 말없이 창밖을 바라보았다. 오래된 집들과 커다란 나무들이 지나갔다. 바람에 태양에 바래 더욱 깊이 스미고 고정된 담장의 색이 정다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나도 그대로 일 것 같은 풍경이었다. 사사로운 이야기들 속에 삶은 좋든 싫든 물들어 간다. 태어났을 때 가지고 있던 마음의 천은 세상의 풍파에 그을리고, 물들기 시작해 태초의 색을 잃어간다. 어디로 구도의 길을 떠나도 빠지지 않고, 어느 샘에 담가도 헹궈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처음으로 돌이키는 것, 그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페리가 접힌 노트를 꺼내 어느 페이지 한 귀퉁이에 무언가 써넣더니 곧장 주머니에 넣었다. 나는 사실 여전히 그 메모에 대한 궁금증을 참을 수 없었다. 


“페리, 저기….”


공항까지 앞으로 15분. 


“그 노트 말이에요. 중요한 겁니까?”


“나름대로 중요하죠. 잃어버리면 다시 생각을 해 내는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모르니까요.”


최대한 의심스럽지 않게 물으려 애썼다.


“실례가 안 된다면, 안에 뭐가 적혀 있는지 봐도 되겠습니까?”


“프로그래밍에 대한 아이디어가 많습니다. 그 외에는….”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그 외에는?”


“낙서… 같은 것들. 토마토 캐릭터가 있습니다. 사실 언젠가 이 모양으로 메모지를 만들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토마토요? 토마토?”


어이가 없기도 하고 매우 궁금하기도 했다. 페리는 조금 민망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대충 둘러대려 한 말로 보이지는 않았다. 


“보여줘 봐요. 토마토? 사람 참.”


페리가 마침내 그 검은 노트를 꺼냈다. 몇 장을 훌쩍 쓸어 넘기더니 빈 페이지 귀퉁이에 4분의 1로 쪼갠 조그만 동그라미를 가리켰다.


“이거예요. 약간 더 캐릭터 화 해 봤습니다.”


노트의 귀퉁이를 따라 90도로 펼쳐진 부채 모양의 토마토에는 보일 듯 말 듯 작은 점 두 개와 그만큼 짧고 가는 가로선이 하나 그어져 있었다. 점 두 개는 눈, 선은 입이었다. 토마토라는 이름에 걸맞게 눈 위에 드라이로 멋을 낸 쉼표머리 같은 꼭지가 싱그럽게 달려있다.


“어떻습니까?”


진심으로 묻는 것인 지 의심스럽다. 매우 쑥스러워하다니 기분이 이상했다. 나는 이런 것을 보려고 그렇게 용기를 낸 게 아니다.


“솔직하게 말해도 되죠?”


페리가 빙긋 웃었다.


“재미있긴 한데 메모지로 만들어서 페리 혼자 쓸게 아니면 별로 많은 돈을 투자하라고 하고 싶진 않네요. 그래도 정 만든다면 나한테도 하나 보내줘요. 주변에 쪽지를 전해야 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사용하죠.”


“기분 좋게 메모할 수 있는 종이는 아껴 쓰게 되니까요.”


페리가 노트를 덮어 버릴 까 초조했다.


“다른 그림은 없어요?”


태연한 척 내민 손에 페리는 순순히 노트를 넘겼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페이지를 넘겼다. 지문 사이사이에서 땀이 나 종이에 들러붙었다. 페리는 내 손에서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노트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제 이 즈음….’

입이 벌어진 줄도 모르고. 

한 장. 한 장.

낯익은, 아니 또다시 새로운. 


그 페이지는 스스로 펴지듯 노트에서 피어났다.




열차 안에는 햇볕이 넘쳐흐르지 못했으므로 필체는 처음보다 훨씬 검고 깊었다. 페리는 이제 노트가 아니라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페리는 글씨를 참 잘 쓰네요.”


거짓말을 했다.


“이건 제 글씨가 아닌데요.”


생각했던 것보다 건조한 목소리에 다음으로 무얼 물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요? 그럼….”


“그건 제 친구가 쓴 거예요.”


무표정의 페리. 밝은 갈색 눈동자가 짐승처럼 빛났다. 건물에 가려졌던 햇볕이 금방 돌아왔다. 페리가 빙긋 웃었다.


“어떤 친구요?”


페리는 도중에 시선을 거두어 반대쪽 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럴싸한 이야기입니다. 화가보단 소설가 같군요. 하긴 페리 덕분에 포르투에서 길을 잃은 적은 한 번도 없었죠. 파이도 많이 먹었고요.”


“그렇게 생각하세요?”


열차가 포르투 국제공항 역에 들어섰다. 


“페리는 곧장 독일로 갑니까? 전 아직 갈 길이 멉니다.”


페리가 미소를 지었다.


“제 여행은 이제 끝나겠죠. 당신의 여행은 아직.... 남은 거고요.” 


사람들이 하나 둘 일어섰다.


“덕분에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나는 페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페리의 손은 도톰하고 푹신했다. 큰 손이 아닌 데도 힘이 있고 따뜻했다. 먼저 열차 밖으로 빠져나왔다. 페리는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리길 기다렸다가 마지막으로 나왔다. 서로 다른 비행기 시간을 확인했다. 페리의 비행기는 내 것보다 두 시간이나 더 늦게 출발했다.


“저 때문에 너무 일찍 왔네요. 조금 더 시내에 있다가 와도 되는데요. 참, 그 앱 버그를 고치고 싶겠지만 가능하면 그대로 두는 건 어때요?”


페리는 대답 대신 여행의 동반자 로서의 역할을 다 하겠다며 선물을 추천했다.


“괜찮으면 포르투 와인이라도 한 병 사가는 게 어떻겠어요? 로열 오포르투 콜헤이타 루비를 추천하죠. 아직까지 한 가족이 운영하고 있거든요. 얼마 남지 않은 전통 포트와인 양조장입니다.”


페리가 손을 흔들었다.






리스본 공항에 내렸을 땐 비가 내렸다. 

포르투의 노란 필름이 걷히고 이내 회색 하늘로 올라가려는 비행기들이 차례로 활주로를 나갔다. 페리는 아직 포르투에 있을 것이다. 게이트 대기석에 홀로 앉아 있으니 왠지 외로웠다. 여행 동반자였던 페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여정을 함께 해 주지 않았다. 포르투에서의 며칠이 벌써 아득한 일처럼 느껴졌다. 나는 회색 코트를 입은 페리가 집으로 즐겁게 돌아가는 상상을 했다. 우울한 얼굴로 집 문을 여는 페리는 상상할 수 없다.


리스본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여행이 끝났다는 아쉬움을 잔뜩 않은 채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나를 피곤하고 우울하게 만드는 일상을 불평하고 싶지 않았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성게의 말:

크리스마스가 코앞이군요. 크리스마스 방학을 맞아 저는 다시 한번 포르투로 떠납니다. 페리와 임은이 거닐었던 포르투 연말의 거리를 다시 한번 걷고 올겁니다. 두로강으로 내려가는 포르투의 골목에서 회색코트르 입은 페리를 만나게 될지 궁금하군요. 그럼, <거기서 페리를 만나> 포르투 편의 마지막 화를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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