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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lly Dec 30. 2023

건실한 척 하는 게으른 나

이번엔 건실한 내가 이겨보자

보통 나의 주말은 루틴화 되어있다. 출근하는 날보다 일찍인 5-6시쯤 일어나서(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버릇처럼 이렇게 되었다.) 작은 방을 한바퀴 휙 둘러본다. 오늘은 무슨 집안일을 해야하지?라고 생각만 하고 좀만 더 누워있다가 갑자기 책상에 앉는다. 이제 커피나 티백이 등장할 것 같지만 아니다. 얼려놓은 베이글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리며 앞에서 동동거리며 기다린다. 빵냄새만이 나를 지배한다. 그렇게 베이글이 바삭하게 다 익으면 로투스 스프래드를 발라서 호호 불어 먹은 다음.. 아... 탄수랑 당을 너무 섭취했다. 라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나갈 준비를 한다. 집에만 있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되어 그것은 그것대로 스트레스를 받기때문에 오늘은 건실한 나일 경우 운동을 하러나가고 차분한 나일 경우엔 책을 들고 카페에 간다. 손으로 끄적이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카페에 가면 혼자서도 이것저것 할게 많다. 그림 실력은 초등학생 이후로 늘지 않았지만 괜히 카페 풍경을 그려도 보고 와 저 사람은 주말에도 공부를 하네.. 저렇게 건실하게 살아야되는데...라는 메모를 적는다거나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 등장인물한테 말을 걸기도 한다. 으휴 니가 그러니까 쟤가 그러지!! 이러면서 오전시간을 보낸다.


보통 이렇게 오전시간을 보내다 오후에 다시 집에들어와서 일단 바닥에 눕는다. 나는 이상한 집순이여서 집에서도 할일이 많은데 꼭 한번은 외출을 해야하지만 외출하고 오면 기력이 사라져 잠깐 누워있어야 하는 게으른 건실해보이고싶은 청년인 것 같다. 퇴사를 계획하고는 이런 루틴을 바꾸고싶다는 생각을 했다. 왜냐하면 나는 환승이직할 회사를 구하지 않고 그냥 냅다 퇴사하는거라 한동안은 백수로 살아야 한다. 지금은 평일엔 일을하고 주말 고작 이틀을 이렇게 보내는 반면에 퇴사 후 한동안의 일상이 주말처럼 돌아갈 것이다. 성질 급하고 바지런한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퇴사를 하더라도 진짜 한 3일 푹쉬고나면 아 뭐라도 해야될텐데?.. 뭘 하지?? 하다가 바로 이직을 준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요즘 직장 찾는게 어렵다고 하니 좀 시간이 걸리는 동안 다시 취준생이 되어 공부를 하던지 아니면 갑자기 운동나가는거에 중독되어서 운동을 매일매일 나가던지 눈 앞이 선하다. 마치 쉬는게 죄악인 것 처럼 굴 내가 예상이 된다.


하지만 글을 쓰고 연구를 하고 운동하고 병원을 다니고 이런 평안한 일상이 앞으로 나의 인생에서 얼마나 있겠는가. 계획 세우기를 좋아하는 나는 벌써부터 그 방학같은 시간에 무슨 숙제를 할까? 고민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앞에서 내가 게으른 건실한척 하는 청년이라고 말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또 좋아하는게 계획 세우기인것도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나의 취미는 계획하는거에서 끝난다. 이거 공부해야지, 이거 만들어봐야지, 이 책 다 읽어봐야지를 생각하는 나는 건실한데 그것을 행하는 나는 게을러서 문제이다. 물론 아예 안하지는 않는다. 왜냐면 테스크가 남아있는거에 스트레스를 받는 스타일인데 또 미룰 수 있을때까지 미뤄보는 모순적인 인간인 나는 늘 내면에서 불같은 싸움이 일어난다. 지금 하자. 하.. 아니야 5분만 있다가 하자... 에이... 내일하자... 이러면서 건실한 나를 게으른 내가 이긴다.


과연 나는 그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방학기간동안 무엇을 하고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건실한 내가 제발 한번쯤은 게으른 나를 이겨서 뭔가 득이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지금까지 계획은 구매해 놓은 벽돌책 읽기, 괜히 학교가서 연구실에서 풀타임처럼 시간 보내기, 학교 잘 다니고 있을 사촌동생한테 꼰대발언하기 등등. 중요한건 이 모든것이 내 정서적 안정을 위한 일이고 나를 지키기위한 시간이기 때문에 내가 뭘 하고 있어도 불안해하지 않기가 가장 중요하다.


정말 이 방학동안 해야하는 제일 큰 계획은 먹고 있는 정신건강의학과 약 줄이기이다. 부끄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언제까지고 약을 먹고싶지도 않기때문에 가장 큰 목표를 약 줄이기로 선정하였다. 다른건 몰라도 그것만 해내면 나는 이 방학을 잘 지내왔다고 평가할 것이다. 다만 너무 오랜 기간의 방학이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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