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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정윤 Oct 07. 2019

귀도의 음악하기 (1) 기보법

 <도시.樂 투어> 이탈리아, 아레초(Arezzo) 2탄

<도시.樂 투어> 이탈리아, 아레초(Arezzo) 1탄 "귀도(Guido)의 흔적을 찾아가며"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음악에 큰 업적을 남긴 그의 본명은 '귀도 모나코', 베네딕트 수도사였다.


530년 경부터 틀이 만들어진 베네딕트 규율(Rule of St. Benedict)은 수도사들의 생활에 지침서 역할을 했다. 규율의 내용에 따라 그들은 공동체 생활을 해나가면서 매일 기도와 노래라는 성스러운 임무들로 채워진 하루 일과를 수행해나갔는데, 이는 성무일도(聖務日禱, The Office)라 불리어 전해진다.


기도는 3시간마다, 늦은 밤과 새벽에도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기도는 시편(psalm)을 낭독하는 것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앞뒤로 안티폰(antiphon)이라고 하는 형태의 노래를 불렀다. 그리고 말씀이 담긴 성서(Bible)를 낭독할 때에는 그에 대한 응답으로 레스폰소리(responsories)라는 형태의 노래를 불렀고, 성서의 일부에서 발췌된 가사에 노래를 붙여 찬미가(canticle)를 부르기도 했다.


상황에 맞게 부른 노래를 여러 이름으로 칭하는 것으로만 보아도, 성무일도는 기도와 함께 다양한 형태의 음악이 이루어졌던 것을 알 수 있다.


노트르담 음악가들의 음악 기록하기에서 언급했듯이, 소리를 기보(notation)한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다. 결과적으로 기보의 결과물인 악보는 복잡한 수학과 기호학이 바탕이 된, 아는 사람만 읽어낼 수 있는 일종의 약속된 비밀문서 같은 셈이다. 누군가에게 읽힐 음악을 "써 내려가는 방식"이 바로 기보법이며, 그 방식의 변화가 바로 '기보법의 역사'로 남아있다.


중세시대에는 로마 전례와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의 보존을 위해서 필사(筆寫)가들의 많은 작업이 있었다. 인쇄기술이 발달하기 전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이들은 스크립토리움(scriptorium)이라고 하는 문서실에서 필사를 했고, 그들의 작업은 오늘날까지 필사본(manuscript)이라 불리며 전해진다.


스크립토리움에서의 필사가들(1040년 경)


글을 필사하기 위해서는 글을 읽을 줄 알아야 하듯이, 기보를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음악적 지식이 필요했고, 그렇게 음악을 기록하는 작업을 해나가면서 원래의 음악에 가장 가깝게 잘 보존될 수 있는 형태로 기록하기 위한 방법을 점점 강구하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악보를 읽을 줄 모르는 사람도 악보를 한 번쯤 보았다면 그 기본 구성은 알고 있을 것이다. 음높이를 구분해 주는, 오늘날 5줄로 구성되어 오선이라고 불리는 가로줄, 생김새는 가물가물 하더라도 '높은 음자리표'와 '낮은 음자리표', '가온 음자리표'라고 불리는 표시, 그리고 길이(음가)와 음높이의 정보를 담고 있는 음표. 이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악보의 기본 구성이다.


귀도가 살았던 11세기에도 구성은 비슷하지만 다른 형태의 악보가 있었다. 시작 음부터 다음에 나오는 음들이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음인지, 내려가는 음인지를 알려주는 방식이다. 여기에 제스처라는 의미의 네우마(neuma)라고 하는 표시는 음의 성격을 나타내 주고 음악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 안내해주는 역할을 했다.

초기 네우마 기보

귀도는 이러한 방식에서 더 나아가 구체적인 기준점이 되는 음높이를 설정하여 좀 더 정확한 음을 표시할 수 있게끔 4개의 가로선과 해당 음높이를 넣었는데, 이는 후에 귀도식 기보법(Guidonian notation)으로 불린다. 아래 악보를 보면, 왼쪽에 e, c, a, f에 해당하는 것이 미, 도, 라, 파에 해당하는 음높이이고, 그 음높이에 맞게 네우마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귀도식 기보법 (12세기 중엽)

귀도는 수도사로서, 음악을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고자 했다. 선에 색깔을 추가한 귀도식 기보법은 보다 정확한 음높이를 표시할 수 있고 음악을 빠르게 습득할 수 있게 해 주었다.


결과적으로 보면, 당시 표준적인 기보법이 되긴 했지만 생각보다 수용은 그리 빠르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과 음악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본래의 방식을 사용하고 가르치고 배우기를 고집했기 때문이었다. 편리하고 획기적인 음악 기보법도 익숙함과 관습에 부딪혀 사실은 생각보다 더디게 퍼져나갔던 것이다.


다음 <도시.樂 투어> 이탈리아, 아레초(Arezzo) 3탄은 "귀도의 음악하기 (2) 헥사코드와 계명창법"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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