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좋아하는 남편은 아침에도 국과 반찬으로 구성된 한식을 먹어야 하는 타입이었다. 나는 한식보다 빵과 과일 등 간편식을 선호했지만 결혼 이후, 아이들이 집을 떠나 기숙학교로, 대학으로 나가기 전까지는 줄곧 우리 집 아침은 한식이었다. 아침을 거르면 무슨 큰일이 나기라도 하듯 한식을 꼬박꼬박 먹었다. 교사로서 수업을 하며 말을 많이 해야 했을 때, 밥은 오전 동안의 에너지원으로 괜찮았다. 하지만 교육청으로 옮겨 종일 컾퓨터 앞에 앉아 일하게 되면서 한식은 부담스러웠고 나의 아침은 과일과 요커트 등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남편은 한식, 나는 간편식으로 우리의 아침 메뉴가 나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밥 아니면 안 될 것 같았던 남편은, 나의 아침 메뉴에 관심을 보였고 우리의 아침 풍경도 바뀌었다. 나이가 들면서 당뇨, 혈압에 대한 관리가 필요했고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가 자신의 건강에 그리 좋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 한몫 했던 것 같다.
이렇게 아침 메뉴가 바뀌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남편은 매일 아침, 사과를 껍질째 깨끗하게 씻고, 토마토를 덤성덤성 자르고, 내가 좋아하는 키위를 깎아서 접시에 담았다. 그리고 달걀을 삶고, 내 그릇과 자신의 그릇에 요거트를 담고 견과를 골고루 넣어서 우리의 아침을 준비했다. 일에 치여 힘들어하는 내가 안쓰러웠는지, 자신의 아침만 준비하기에 멋쩍어서 그런 건지, 이유야 어찌 되었건 덕분에 나는 감사하게도 나의 아침을 약간은 게으르게, 약간의 스트레칭을 하며, 읽고 싶은 글도 잠깐 눈 맞춤하며 출근 준비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손이 서툰 남편이 준비한 아침 과일 접시
나와 함께 사는 '한 사람'은 그런 사람인 것 같다. 아무런 기대나 불평을 늘어놓지 않고 자신이 하고자 마음먹은 일을 그저 하는 그런 사람. 손이 서툰 사람인데, 서툰 대로 꾸준히 하는 사람.
긴 시간 함께 했다고 한 사람을 모두 안다고 할 수는 없다. 여전히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 상태에 있는지 잘 모를 때가 많다. 보이는 것으로, 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런 사람이구나', 또는 '이런 면이 많구나' 하고 순전히 내 생각으로 그 사람을 정의하곤 한다.
얼마 전 나는 일터의 공용 커피맛이 별로라며 불평아닌 불평을 늘어놓았다.
"아침마다 마실 커피는 내려서 가잖아. 내가. 커피가 금방 없어져."
"그럼 한 번에 두 봉지씩 사야겠네."
"가격은 오르고 양은 줄은 것 같아."
"네가 좋아하는 건데 뭘 그 정도 갖고 그러냐."
'그냥 먹어.' '커피 맛이 다 거기서 거기지.' 하며 핀잔 섞인 말을 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예쁘게 말해주니 고마웠다.
지난 2년간 코로나로 학교는 학사방안 변경이 잦았고, 나는 주말도 없이 학교들의 학사운영과 관련한 민원을 처리해야 했다. 쉼이 절실히 필요했지만 사회적 거리두기로 잠깐의 여행도 마음 편하게 할 수 없었다. 여름 초입 무렵, 템플스테이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무작정 신청했다. 그 당시 나는 매우 지쳐 있었고, 사람이 없는 산 속에서 조용히 쉬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았을까. 남편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두고 그림자처럼 곁에서 함께 했다. 내가 책 보다가 잠들면 그 옆에서 함께 조용히 책 보다 낮잠을 청했다, 이것 하자, 저것 하자 보채지 않고 내 마음이 동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푹 쉬고 난 내가 '산책 갈까' 하면 흔쾌히 또 숲길을 함께 걸었다.
부부가 함께 하면서 갈등이 어찌 없을까! 하지만 오랜 시간 지켜보면서 '상대의 있는 그대로' 를 인정하고, 자신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지지하며, 나의 관점에서 상대의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다고 불평을 늘어놓지 않는 것. 관계의 기본을 잘 지키는 것이 오랜 세월 함께 하고, 해야하는 사람에 대한 기본 예의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