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같은 강풍이 온다고 했기에, 어젯밤 베란다 창틈 새로 바람 우는 소리가 요란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나는 지어진 지 스무 해도 더 지난 '구축 아파트'에 십 년도 넘게 살고 있다. 주변에 새 아파트가 심심찮게 들어섰고 이웃들도 종종 이사를 해서 나는 이 동네 '터줏대감' 같은 존재가 되었다. 나는 아무래도 '결정 장애자',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자'일지도. 남들이 새 아파트를 찾아 떠날 때면 '나도?' 하며 남편에게 '몇 호 이사 간대.' 또는 '우리도 저기 아래 동네 구경가 보자.'며 애꿎은 남편을 귀찮게 하곤 했다. 그렇게 일부러 새 아파트를 기웃거리고 와서는 '베란다가 없이 어떻게 살까?', '바람이 통하기는 하는지 모르겠어.', '여긴 에어컨이나 공기청정기 없이는 못 살겠네.' 등등 갈 수 없는 이유를 나열하기 일쑤였다. 그리고 내 집에 돌아오면 '오래된', '다소 낡은' 그 느낌에 안도했다. 그렇게 미적미적 이 아파트를 고집하며 살고 있다. 문제는 바람이 심한 날 베란다 창틈 사이로 바람 우는 소리가 심하고, 태풍이 창과 수직으로 불어오는 날엔 덜컹거리기까지 하는 샷시였다. 겉으로는 멀쩡해서 태풍이 창과 수평으로 지나가거나 태풍 시절이 지나고 나면 또 불편함도 잊고 살아간다. 현관문에 붙어있던 '샷시 교체' 전단지를 집안으로 가져온 것도 몇 번인지.
'오래되면 새것으로 바꾸어야 할까?' 그건 아마도 자신이 얼마나 아끼는가, 얼마나 좋아하는가, 얼마나 소중한가, 얼마나 설레는가 이런 기준들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오랫동안 함께한 손길이 있고, 낡은 것이 만들어내는 그 특유의 아름다움은 새것에서 발견할 수 없는 고유함이다.
이런 이유들로 나는 스스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들이 보면 다소 비현실적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내 집의 토요일 아침, 베란다 창으로 고요한 이웃의 풍경을 배경으로 비가 묻어내린다. 간간이 바람 소리가 들릴 뿐, 고요하고 차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