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를 보며

비가 주는 즐거움

by lee나무

가로등 아래서 비는 그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냅니다.

망설임 없이 직선으로 떨어지는 비는 거침없습니다.

하루 동안의 불안도, 감정의 동요도 씻겨지는 듯합니다.

시원하게 떨어지는 비를 가만히 바라봅니다. 오늘 하루를 시원하게 마무리하는 힘을 얻습니다.




초등학교 때 비를 쫄딱 맞고 울며 집으로 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우산을 들고 오지 않은 엄마를 원망하며 학교에서 집까지 내내 울었더랬습니다.

비 맞은 생쥐처럼 머리카락도 얼굴도 옷도 축축하게 젖어서 내 온 존재가 축축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눈물을 쏟아내고, 분이 풀릴 때까지 엄마를 원망하고 나서야 툇마루에서 비를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비를 참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비를 보면 "내가 좋아하는 비가 오네." 하며 밖으로 향하곤 했습니다. 아마도 그 말을 이해하게 된 시기가 사십 대 중반을 살고 있었던 때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여름날 우산을 받쳐 들고나가 가까운 동네를, 아파트 뒷산 둘레길을, 바닥을 드러내며 메말라있던 도랑에 졸졸졸 물이 흐르는 것을, 뜨거운 햇살에 축 쳐져 있던 잎들이 얼굴을 씻고 싱그러워지는 모습을 바라보는 일이 큰 즐거움임을 알게 되면서부터였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비를 보며 '축축하다'가 아니라 '촉촉하다'라고 긍정의 언어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꺼이 설레는 마음으로 비 내리는 세상 속으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장마철인 요즘 또 하나의 큰 즐거움이 있습니다. 맨발로 비에 젖은 운동장을 걷는 것입니다. 물먹은 흙들이 보드랍고 푹신해서 맨발 걷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자유로워진 발이 마음껏 숨 쉬고 멋대로 움직이며 흙을 느낍니다. 그 유쾌하고 즐거운 기운이 머리와 가슴까지 전해집니다. 걸어도 걸어도 자꾸 걷고 싶어 집니다. 이 장난 같은 걷기로 어린아이처럼 가벼워집니다. 당분간 장마철 고유의 즐거움을 누려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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