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보고 싶었다.

by lee나무

바람이 보고 싶었다.

색깔도 모양도 냄새도 없는 바람이 보고 싶어서 사진을 찍어보지만,

바람을, 그날의 바람을, 그날 그 바람에서 느꼈던 기분을 담아내고 기억할 수 있을까 궁금했다.

살랑살랑 잔물결에서 부드러운 바람의 모습을 상상하고,

하얀 삐삐풀*꽃이 한 방향으로 눕는 모습에서 바람의 몸짓을 찾는다.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는 바람이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도 나 아닌 비아(非我)* 속에서 더욱 적확하게 드러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의 가족, 나의 친구, 나의 동료, 나의 물건, 나의 공간 등이 나의 색깔, 나의 모양, 나의 향기, 결국에 기억되는 '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

문득, 나라는 존재는 나와 관계된 존재의 합이라는 생각.


바람이 바다에, 나뭇가지에, 얼굴에, 머리카락에, 옷자락에 닿을 때 '아 바람이구나' 하고 알아차린다.

바람이 지나고 머무는 곳에서 바람을 본다.

사람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아, 누구이구나!' 하며 알아차리게 되는 것. 그것이 그 사람의 증명일지도 모르겠다.


* 삐삐풀은 삘기의 사투리

* 비아(非我): 나 밖의 모든 것


삐삐풀이 눕는 모습에서 바람을 본다.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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