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되고 낡은

무수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 물건들이 주는 위안

by lee나무


아직 에어컨을 집에 들이지 않았다. 나는 찬 기운에 약한 몸을 갖고 있고, 가만히 앉아 움직임을 최소화하면 더위도 기꺼이 참을만했다. 거기다 나의 집은 지대가 높은 곳에 위치해 있고 산과도 가깝다. 문을 열어두면 산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오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며칠을 제외하고는 지낼만하다.


에어컨이 없다고 하면 주위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지만 개의치 않고 지금껏 잘 살고 있다.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에어컨 없어서 카페 가잖아.' 했더니, 친구들은 에어컨 이야기가 나오기만 하면 '누구는 에어컨 없어서 카페 가잖아. 그게 더 번거롭지 않아?' 한다. 그럴 때면 말로 뱉어내지는 않지만, 온 지구가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그나마 우리 집은 지구에게 덜 해로운 생활을 실천하고 있다는 궁색한 도덕함을 속으로 중얼거리곤 했다. 그런데 이런 고집 아닌 고집도 내려놓아야 할 때인가 생각하고 있다. 여름은 점점 더 더워지고 에어컨 생활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더 이상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생산성도 떨어지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면 별것 아닌 일에도 짜증이 날 수 있어서 괜히 서로 관계가 서먹해지는 일이 벌어지기도 하니까. (사실은 아이들이 머무는 여름방학이면 매번 이런 고민을 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사실로 나는 여름방학이면 오후 시간 대부분을 카페에서 보내는 날이 많았다.


시내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벗어나면 큰 유리창으로 초록과 하늘이 들어오는 카페가 있다. 창과 평행으로 놓인 긴 테이블에 커피 한잔과 함께 앉으면 충분하다. 언어 공부도 하고 책도 읽는다. 고개 들어 길과 바람, 하늘과 구름을 바라보기도 한다. 허리가 뻐근해지면 일어나서 카페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장식된 물건들을 감상하기도 한다.


오늘은 카페 한 모퉁이에 전시된 오래된 물건들을 눈여겨보았다. 고서, 타자기, 알람시계, 인형, 카메라...... 그리고 볼수록 좋은 커피콩.


오래된 물건이 주는 정겨움이 나는 참 좋다. 낡고 빛바랜 고서, 더 이상 본래의 기능으로서의 쓸모가 사라진 타자기, 때 묻은 낡은 인형. 오래된 물건들에게는 눈으로 보고 '무엇이네' 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물건이 간직한 역사와 살아온 이야기를 상상하게 되어서 그럴까. 오래도록 바라보고 싶게 만드는 힘이 있다. 마치 고목의 그늘에서 쉴 자리가 더 많은 것처럼 무수한 시간을 견디고 살아낸 물건에게서 나는 마음이 편안해지고 위로를 받는다.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고, 쓰임이 되고, 누군가의 옆을 지키고, 세월이 지나고 낡아져 어느 골동품 시장에서 새 주인을 기다렸을까? 어느 날 '오래된 미래'처럼 누군가의 눈에 들어와 새 쓰임이 된다면 하는 희망을 품었을까?


오래되고 낡은 것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줄 아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 있어서 나에게는 특별히 감사하다.



오래되고 낡은 물건들이 주는 편안함과 정겨움이 좋다.


* 사족(蛇足)

옛 물건들을 보고 있으면 이 물건들이 참 고마웠다는 생각이 든다. 옛 물건들은 사람과 정답게 인간적 상호작용을 가능하게 했다. 사물로 인해 사람이 소외되거나 무기력하게 되지 않는, 사람에게 유용하여 노동을 덜어주고 기꺼이 수단이 되어준 존재. 인공지능, 디지털화, 로봇화 된 지금의 물건들이 그 편리성이 지나쳐서 인간을 사물화, 무기력화 하는 것과는 다르다. 사물이 주인인지 사람이 주인인지 헷갈리게 하는 것이 지금의 물건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잠시만 해드폰이 사라져도 불안해하는 자신을 보면 내가 핸드폰의 주인인지 핸드폰이 나의 주인인지 씁쓸해지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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