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수도원 여행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을 다녀와서

by lee나무

<공지영의 수도원 기행 2>를 읽고 난 후 칠곡에 있는 왜관수도원을 가까운 시일 안에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간직한 이야기와 인물들에게 끌렸다. 한국전쟁, 흥남철수작전, 열두 명 정원의 화물선에 만사천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흥남을 떠나 거제로 향했던 '레너드 라루 선장'(그는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돌아가 뉴저지 주의 뉴튼 세인트 폴 수도원에 입회하고 '마리너스 수사'로서 살게 된다. ), 1949년에 떠나올 수밖에 없었던 북한 덕원수도원의 종탑 모양을 본떠 수도원 새 성전을 지었다는 이야기 등. 그 역사적 이야기를 간직한 곳을 걷고, 보고, 마음으로 느끼고 싶었다.


"원래 우리 수도원은 함경남도 덕원에 있다가 한국전쟁 때 피난 내려와 왜관에 정착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독일인 신부임과 수사님들이 처음 내려와 공장을 세우셨죠. 이 수도원에 정착한 독일인 신부님과 수사님들은 독일인의 특성을 많이 가지고 오셨어요. 그분들은 뭐든지 모자라면 공장을 세워 만들어 냈어요."


넘쳐나는 시대에도 시간과 노동을 쏟는, 본질만 남기는 노동의 과정은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을 경건하게 한다.


"나, 주말에 왜관수도원 가고 싶어. 갈래?"


신랑은 두말없이 그러자고 했다. 늘 군말 없이 동행이 되어주는 이 사람이 요즘 들어 '나에게 온 가장 큰 선물임'을 느끼고 있다.(물론 우리는 여전히 사소한 일에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그리고 토요일의 꿀잠도 뒤로 하고 우리는 경북 칠곡군으로 차를 몰았다. 가는 길은 비안개인지 비구름인지 가을 초입의 아련한 분위기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비가 오려나? 우산 없는데."

"익숙한 곳을 벗어날 때, 낯선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이런 감정이 여행을 그토록 부르는 걸까?"


이런저런 대화를 주고받으며 어느새 왜관수도원에 도착했다. 주말이라 부모님과 꼬마 친구들, 수녀님들로 수도원은 사뭇 활기가 있었다. 붉은색 벽돌로 단출하게 지어진 오래된 '구성당'이 주변의 자그마한 부속건물들과 어울려 단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예쁘고 고풍스러웠다. 키 큰 감나무에 달린 다홍색 감, 반짝이는 가을 햇살, 주홍색 벽돌, 그리고 푸르고 높은 하늘. 잔잔하고 조용한 평화가 수도원 곳곳을 감싸고 있었다. 이런 장소에 서면 누군들 평화로워지지 않을 수 있을까.



구성당을 둘러보고 2009년 새로 지었다는 본당으로 향했다. 2층 성당으로 갔다. 마침 낮기도가 막 시작되기 전이었다. 무심코 올라온 나에게 수도사님 한 분이 성무일도서를 건네주었다. 얼떨결에 두 손으로 받아 들고 성당 안으로 들어갔다. 몇 명의 방문객과 수녀님들이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 검은 하비투스를 입은 수도사님들이 한 분 한 분 성당 안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낮기도가 시작되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어림잡아 오십여 명의 수도사님들이 기도문을 합창하듯 읊조렸다. 성당 안을 가득 채우는 울림은 고요하기도 하고 장엄하기도 하고 노래 같기도 하고 시 같기도 했다. 마음이 저절로 그 소리로 기울고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무슨 이유로, 내 안에 감추어진 눈물은 기도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예기치 않게 흘러내린다. 내 안의 슬픔, 상처, 후회, 감사, 관조, 수용, 아픔, 바램 같은 혼재된 감정들이 눈물이 되어 흘러내리는 걸까. 한 번도 제대로 응시하거나 마주하지 않은, 스스로도 그 정체를 모르는, '다 그런 거지' 하며 묻어두었던, 어쩌면 아플까 봐 들추어내지 못하고 있는 무의식의 심연. 그렇게 눈물을 흘리고 나면 홀가분해지고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던 거다. 카타르시스처럼. 기도의 공간이 마치 눈물이 허용되는 공간인 것처럼 그 안에서는 울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수도원에서 이렇게 낮기도를 할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않았다. 그저 수도원을 둘러보고 거닐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기대하지 않은 선물 앞에 어리둥절하면서도 나는 큰 기쁨을 느꼈다.


우리는 신성한 노동이 만들어낸 독일식 수제소시지와 현미시리얼을 샀다.

안녕. 나의 한국에서의 첫 수도원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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