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했던 규모의 강력 태풍(힌남노)이 온다기에 며칠 전부터 겁을 먹고 걱정하며 학교 곳곳을 단도리 했습니다.
밤에 베란다 창이 흔들리고 덜컹덜컹 소리가 시끄러웠습니다. '태풍이구나.' 잠결에 별일 없어야 할 텐데 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태풍은 벌써 지나갔고 약한 비가 살짝 흩날리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베란다 창을 치고 들어온 빗물이 바닥에 살짝 고여 있는 것 외에는 여느때와 다름없었어요. 비가 세차게 쏟아지는 날은 어김없이 낡은 창 틈으로 빗물이 새어 들어왔기에, 빗물막이용으로 앞 뒤 베란다에 수건을 놓아두었거든요. 그 수건으로는 역부족이었겠지요. 당연히. 그래도 걱정했던 것보다 훨씬 나았습니다. 어젯밤에는 창틀에 박스 조각을 끼워두었더니 덜컹거리는 소리도 전보다 훨씬 덜했어요.
학교로 왔습니다. 선생님들은 오늘 원격수업이라 재택근무입니다. 교무실에 가방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우리 학교는 아파트 사이에 둘러싸여 있어요. 아파트들이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을까요? 걸어서 출근하는 길가 곳곳 나무들이 바람에 생채기가 나고, 나뭇잎이 떨어지고, 나뭇줄기와 가지가 부러져 있어서 우리 학교 나무들도 걱정이 되었어요. 그런데 태풍이 왔었나 싶게 말끔한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1학기때 나뭇가지를 전정해준 것도 도움이 되었겠지만. 밤새 태풍은 다만 학교의 작은 동산에 야트막한 호수를 만들어 놓고 지나갔네요. 그렇게라도 자신이 왔다 갔음을 남기고 싶었나 봅니다. 신기루처럼 잠깐 동안 생긴 호수는 정원의 나무와 풀들이 담았네요. 이건 뭐랄까요? 이런 모습을 보며 '어머나, 호수가 생겼네! '하고 좋아하면 안 되는 걸까요? 그런데 또 나는 '아이들이 첨벙 대며 놀기에 딱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드는 거지요. '이 모습을 애들이 봐야 하는데' 이런 생각을 또 합니다.
태풍이 몰고온 비로 신기루처럼 정원은 호수가 되고
학교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별다른 피해가 없습니다. 태풍이 휩쓸고 간 뒤 공기가 더 깨끗해진 기분입니다. 학교 화단을 둘러보는데, 가을 초입에 피는 '꽃무릇'이 꽃대를 올렸습니다. 빈 화단에 이렇게 꽃무릇이 숨어 있었다니 하며 놀랐습니다. 이 모습을 어찌 사진에 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작년 이맘때 함양 상림숲의 붉은 꽃무릇이, 제주 절물휴양림에서 신비로운 빛깔이 고왔던 상아색 꽃무릇이 떠올랐습니다. 얼마간 나는 또 이 꽃무릇들을 보는 낙으로 아침 일찍 교문을 들어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