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년 만의 만남

그 작은 아이가 멋진 어른이 되어서

by lee나무

22년.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어디서부터 무슨 말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과 몸짓을 하는 것이 좋을지. 음, 그래서 나는 그냥 맡기기로 했습니다. 현재의 내 모습 그대로 내 얼굴이, 내 입이, 내 손과 발이 움직이는대로 그냥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만났습니다.

2022. 9. 20. 화요일, 낮 12시, 피렌체 48.


초등학교 2학년 때 이레는 저와 단둘이 한글 나머지 공부를 했습니다. 저는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데 이레는 자신이 받아쓰기를 못했고 빵점을 받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레는 저를 늘 기억하고 있었고 십년 가까이 저를 찾았다고 하네요. 부끄럽고 감사했습니다.)


"한 번은 받아쓰기 0점을 받았는데, 0점 아래 두 줄을 긋잖아요. 그걸 이렇게 비스듬하게 세워서 110점을 만들었던 기억이 나요. 하하."


생일이 12월이라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빼빼였습니다. 수줍은 듯 잘 웃었고, 하지 않겠다고 대답을 철떡 같이 해놓고는 곧잘 장난치며 놀기도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아이가 현재는 유니스트 박사과정에서 차세대 탄소소재 관련 연구에 온 힘을 쏟고 있습니다. 석사과정에서 연구했던 논문은 해당 분야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미국에서 특허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이레의 집중력은 대단하여 연구하고 논문을 쓰는 1년 동안, 365일 중 360일은 거의 잠을 자지 않았다고 하네요. 연구에 집중하니 잠도 오지 않더라고. 그게 사람이 가능한 일인가요. 연구 성과를 내고 난 후 건강이 나빠졌는데 지금은 거의 정상 수준으로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이레가 한 말이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부족함이 저를 성장하게 하였어요. 결핍을 아니까 더 집중하고 노력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레는 4년의 박사과정에서 연구활동을 끝내면 국립대학교 교수가 되어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다고 부끄러운 듯 포부를 이야기했습니다. 수수하게 밝게 웃는 그 아이가 얼마나 커 보이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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