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엔무, 푸근한 고향 같은 동네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22)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22. 티엔무, 푸근한 고향 같은 동네


타이베이에는 티엔무(天母)란 다소 독특한 동네가 있었다. 이곳에는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 등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다양한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한국인도 꽤 많이 거주해서 당시 대만 법인의 주재원들도 4명 중 3명이 가족과 함께 이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국적으로 본다면 티엔무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에는 일본인이 가장 많았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대만에 거주하는 일본인의 수가 다른 외국인에 비해 워낙 많은 데다가, 해외 거주할 때는 특정 지역에 몰려 사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일본인이다 보니, 티엔무에 일본인들이 그렇게 많이 모여서 거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참고로 대만 정부의 자료에 의하면 2020년 기준 대만 거주 일본인은 약 1만 5천 명으로, 한국인 약 4.7천 명의 3배가 넘는다. 대만에 거주하는 미국인도 일본인의 2/3 수준인 약 1만 명 정도밖에 안된다 하는데, 미국의 전체 인구가 일본 인구의 3배가 넘으니 꽤 많은 일본인들이 대만에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많은 일본인들이 티엔무에서 거주하고 있다 보니, 티엔무에는 일본계 대형 백화점도 3개씩이나 들어와 있었고 1948년에 개교했다는 오래된 일본 학교도 있었다. 한편 일본 학교 바로 앞에는 미국 학교도 있어서 도로 하나 사이로 두 개의 외국인 학교가 나란히 있었다. 또 유럽 학교 또한 이곳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도보 약 20~30분 거리에 위치해 있었다. 외국인들이 워낙에 많이 거주하는 동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외국인 학교들도 모두 이곳으로 몰리게 된 것 같았다.


(티엔무 일본 학교와 미국 학교 거리뷰)

※ 도로 좌측이 일본 학교, 우측이 미국 학교

https://goo.gl/maps/5pceL1yDLYSwjdE76

(티엔무 유럽 학교 거리뷰)

https://goo.gl/maps/JTXua9ERhxr933vv6


외국인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볼 때는 티엔무는 서울의 이태원과 흡사한 것 같기도 다. 하지만 이태원은 주택가라기보다는 유흥시설이 많은 곳이라 주택가 느낌이 보다 강한 티엔무와는 좀 차이가 있는 것 같고, 오히려 과거 이촌동이 티엔무와 좀 더 흡사했던 것 같다.


용산 미군 기지에 미군이 다수 주둔하고 있던 시절에 미군 부대 인근에 있는 이촌동의 아파트에는 미국인들이 꽤 많이 거주하고 있었다. 또 일본인이 압도적으로 많기는 했었지만 미국인 이외에도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이촌동에 함께 거주했는데 그 시절의 이촌동이 티엔무와 조금 더 유사했던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현재의 이촌동은 다른 외국인은 별로 없고 일본인들만 다수 남아 있어서 다양한 외국인들이 함께 거주하는 티엔무와는 그 느낌이 좀 다른 것 같다.


(티엔무 거리 곳곳의 모습이 소개된 블로그)

https://m.blog.naver.com/sysbre/222338760173




티엔무라는 동네에 이렇게 외국인들이 많이 몰려서 살게 된 현상에는 나름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다.


북한, 중국, 소련 등 공산권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에는 6.25 전쟁 이후 현재까지도 USFK(U.S. Forces Korea)라고 불리는 미군 부대가 주둔해 오고 있다. 그런데 바로 이와 유사한 미군 부대가 대만에도 주둔하고 있었는데 그 부대가 바로 1955년에 창설된 USTDC(U. S. Taiwan Defense Command)라는 부대였던 것이다.


대만에 주둔하던 이 부대의 병력은 한때 약 3만 명에 달하는 적지 않은 규모였다 한다. 하지만, 군인 수만 그 정도였으니 그들의 가족과 민간 지원 인력을 모두 합치면 아마 약 10만 명에 가까운 미국인들이 대만에 거주했다는 얘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주로 거주했던 지역이 바로 이 티엔무와 인근 양명산 근처였던 것이다


이 부대는 한국 전쟁이 종료된 직후 1954년에 마오쩌둥이 대만을 공격했던 사건을 계기로 그 이듬해 설립된 부대로서 한국에 있는 USFK와 같이 대만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된 부대였던 셈이다.


하지만 두 부대 간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하나 있는데 USFK는 현재도 존재하고 있는 부대인 반면에, USTDC는 1979년에 미국이 중국과 수교하면서 그해 바로 해체되어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부대라는 점이었다.


사진) 현존하는 USFK와, 사라진 USTDC의 부대 마크


미군이 없는 대만이 혼자서 중국의 침략을 막아내기는 이제 불가능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중국은 자기 집 앞마당을 드나들듯이 노골적으로 대만 영공을 침범하고 자극하는 등 무력행동 수위를 점차로 높여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중국의 대만 위협 증가)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22/0003505053?sid=100


그럼에도 미군은 단교와 동시에 대만에서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미군이 대만에서 철수하면서 USTDC 또한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다만 부대는 사라졌어도 부대에서 근무했던 그 많던 미군과 또 그들의 가족들은 그 부대가 대만에 존재했던 약 30여 년간 적지 않은 흔적들을 대만 곳곳에 남겼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긴 흔적들 중 굵은 흔적 하나가 바로 그들 다수가 밀집해서 거주했던 이 티엔무라는 동네였던 것이다.


(미군은 대만에서 어떻게 철수했나?)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5/2017082501711.html

(1955년경의 대만 주둔 미군 모습)

https://kknews.cc/military/b6jv9eo.html

(USTDC, 설립 10주년 기념행사, 01:10)

https://www.youtube.com/watch?v=uHJCNLCYiec

(미군 주둔 당시의 부대 인근 사진, 03:17)

부대 모습은 0:58부터 나타난다.

https://www.youtube.com/watch?v=Nnnq9NFpXnY


한편 미군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다른 국가의 외국인들도 이 티엔무에 거주하게 되었는데 그러한 현상은 미군이 철수한 이후에도 지속 이어지고 있었다. 과거 한때 용산 미군 기지 인근의 이태원이나 이촌동에 미국인이 다수 거주했었지만 이후 미국인들이 대부분 철수한 이후에도 이 동네는 여전히 외국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그런 곳으로 남아 있게 된 것과 비슷한 현상이 티엔무에서도 발생했던 셈이다.




사실 티엔무는 내가 거주하고 있던 에서는 택시를 타고도 30분 정도가 걸리는 비교적 먼 곳에 있는 동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한 달에 서너 번 이상 꼭 티엔무를 방문했었는데 그랬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Maggie's Hair Salon이라는 당시 타이베이에서는 유일하게 한국식으로 이발을 해주는 미용실이 있었는데 그 미용실이 바로 이 티엔무에 있어서 이발을 하려면 티엔무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 미용실은 좌석이 약 3~4개 정도 되는 작은 미용실이었는데, 사장님 이름이 Maggie라 그런 이름으로 불렸다.


파리, 토론토, 베이징, 광저우, 홍콩 등 한때 내가 체류했던 다른 도시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미용실이 적어도 한 곳 이상은 있었다. 지만 타이베이에는 당시 한국인이 적어서 그런지 한국인이 운영하는 미용실은 전혀 없었고 그 대신에 대만인이었지만 Maggie라는 분이 한국식으로 이발을 했었다. 그런데 그녀가 한국식으로 이발을 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는데, 당시 티엔무에 많이 거주하고 있던 한국인 주재원 부인들이 그녀에게 한국식 이발 방식을 가르쳤다고 한다.


영국의 외진 시골 마을 Wynyard라는 곳에도 과거 회사의 공장이 있어서 출장 간 적이 있었다. 그런데 그 오지에 있는 중국집에서 깍두기가 반찬으로 나와 의아했던 적이 있는데 알고 보니 그 공장에 근무하는 주재원의 부인분들이 중국인 주방장에게 깍두기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는 것이었다. 대만 타이베이에 있는 대만인이 한국식으로 이발을 해 주게 되는 과정과도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영국에서나 또 대만에서나 한국 여성들의 강한 의지를 느낄 수 있는 사례인 것 같았다.


대만인이 찾아오면 대만식으로 이발을 해주지만, 한국인이 찾아오면 주재원 부인분들로부터 배운 한국식으로 이발을 해주니, 나처럼 그 먼 곳에서도 굳이 이 미용실을 찾아오는 한국인 손님도 늘어났을 것이고 또 손님이 늘어나니 그녀도 한국식으로 이발을 해주는 것을 마다해야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한국식으로 이발하는 것은 대만식은 뭐가 다른 걸까? 한마디로 딱 잘라서 설명하기는 좀 어려울 것 같은데 어쨌든 대만 미용실에서 이발하면 평소 한국에서 이발하던 스타일과는 뭔가 다르고 어색해 보였다. 아마도 과거 한국 직장인의 대표적인 스타일이었던 머리 옆부분을 다소 짧게 깎는 그런 스타일이 그 당시 한국식 이발 스타일의 표준이 아니었나 싶다. 물론 요즘과는 매우 많이 다른 스타일이다.


한국인들 대부분 이 미용실을 찾아가다 보니 재미있는 일도 있었는데, 이 미용실에 가면 우리 법인 주재원들도 만날뿐 아니라 심지어 경쟁사의 주재원들도 이따금 만나게 된다는 것이었다. 타이베이 거주하는 한국인 주재원이면 대다수가 이곳에서 이발하다 보니 이런 현상까지 생기곤 했던 것인데 혹 담합 이슈로 민감한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경쟁사 인력과의 만남은 원칙적으로 피하는 것이 당시 관례였다.


구글 거리뷰로 검색을 해 보니 이 미용실은 아직도 간판이 붙어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타이베이에도 한인이 운영하는 미용실들이 생겼다고 하니 여전히 주요 고객이 한국인으로 이 미용실이 운영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어쨌든 영업은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오래간만에 거리뷰로나마 그 모습을 다시 보니 꽤 반가웠다.


(Maggie's 미용실 거리뷰)

https://goo.gl/maps/zUHxJqbTcTxW81Ze8


사진) 타이베이의 지인에게 부탁해서 받은 Maggie 미용실 최근 사진 (2020. 10월)


좀 안 좋은 기억이지만 우리 법인의 모 주재원이 이 미용실 사장님 Maggie에게 심한 막말을 해서 문제가 되기도 했다. 사실 그 주재원은 평소에도 현지인들을 좀 막 대하는 그런 타입이었는데, 미용실에서 예약 시간을 넘어 기다리던 것에 화가 나 있던 상태에서 Maggie가 뭔가 말을 하자 바로말을 문제 삼아 큰 소리로 꽤 오래 막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중에소식을 전해 들었는데, 솔직히 나 역시도 비슷한 실수들을 적지 않게 범하긴 했지만 이런 모습은 확실히 좀 부끄러운 한국인의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티엔무를 자주 방문했던 둘째 이유는 그 당시 타이베이에서 한국 음식을 가장 잘하는 곳으로 알려졌던 '제주관'이라는 식당이 바로 이곳 티엔무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타이베이에서 거주했던 동네에는 마침 개인적으로도 가깝게 지내던 법인의 직원 부부도 거주하고 있었는데 혼자 살아 적적하기도 했던 나는 주말에는 그 부부와 함께 자주 외식도 하고는 했었다. 그런데 그때 주로 갔던 식당이 바로 당시 한국 음식 맛집으로 소문난 티엔무의 이 제주관이었던 것이다.


법인의 그 직원 부부는 두 분 모두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화교분이었다. 따라서 한국어는 당연히 능통했고 또 대학에 입학하기 직전까지 한국에서 살았으니 그분들이 성장했던 시절인 과거의 한국에 대해서도 너무도 잘 알아서 주말에는 이렇게 티엔무의 한국 음식 맛집에 와서 술 한잔 나누면서 주말 기분과 음식 맛도 즐기고 또 오랜만에 한국의 오래전 추억들도 같이 나누곤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제주관에서 그들과 그렇게 편한 한국어로만 대화를 나눌 때는 마치 오래전 고향 친구를 오랜만에 타이베이에서 다시 만난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었다. 실제로는 그들이 대만 국적을 가진 엄연한 대만인이었지만, 그들의 한국어가 너무도 완벽했고 또 한국의 과거에 대해서도 나와 너무나도 비슷한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으니 그런 느낌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사진) 타이베이의 지인에게 부탁해서 받은 제주관의 최근 사진 (2020. 10월)




이발이나 또는 식사를 하러 이렇게 한 달에 최소한 서너 번 이상은 티엔무를 방문했으니 타이베이에 약 2년 근무하는 기간에 100번 정도는 티엔무를 방문했던 같다. 또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것을 너무도 좋아해서 티엔무에 한번 가면 적어도 몇 시간 동안 티엔무 구석구석을 기웃기웃 구경하며 다니기도 했었다.


결국 이처럼 티엔무에 자주 가고 또 오랜 시간을 그곳에서 머무르다 보니 티엔무라는 동네는 내가 거주하던 집이 있는 동네만큼 친숙하고 정이 갈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게다가 또 티엔무에는 지역에 거주하는 다양한 외국인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낸 독특한 티엔무만의 매력들도 있어서 어쩌면 내가 살던 동네보다 더 끌렸던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2008년 12월 대만 법인 근무 불과 2년 만에 갑자기 홍콩 법인으로 발령받으면서 대만에서의 생활도 한순간에 마감하게 되었고, 그렇게 허망하게 마감하게 되면서 각별한 애착이 남아있던 티엔무와도 결국 작별을 해야만 했다.


티엔무는 그 지명에 들어있는 '어머니'란 한자처럼 수많은 미군들을 끊임없이 품으로 받아들여 포용했고 또 그 미군을 다시 돌려보내기도 했었다. 그리고 미군들이 완전히 철수한 이후에도 일본인, 미국인, 유럽인, 한국인 등 또 다른 적지 않은 이방인들을 여전히 품 안에 포용하고 또 돌려보냈다.


햇살 가득한 아열대 지방의 묘한 낭만과 어머님 품처럼 묘한 푸근함이 가득한 티엔무를 즐겼을 그 많은 외국인들은 언젠가는 모두 아쉬움을 갖고 그 티엔무를 떠나야만 했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그렇게 많은 애정과 감상이 남아 있는 그 티엔무를 뒤로하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돌려 홍콩으로 향해야 했다.


그렇게 티엔무를 떠난 지 올해로 이제 12년이 다. 하지만 여전히 티엔무의 푸근한 모습과 기억은 마음속에 따듯하게 남아 있다. 아마도 티엔무를 경험했던 다른 이방인들에게도 티엔무에서의 기억은 그렇게 마음속 깊은 곳 어딘가에 짙은 향수처럼 자리 잡고 있는 그런 기억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래 블로그를 작성하신 분도 티엔무에 대한 그러한 애틋한 향수를 갖고 계신 분 같은데, 본인이 과거 한때 거주하셨던 티엔무를 오랜만에 다시 방문하면서 과거의 기억과 추억을 회고하는 내용이 블로그에는 기록되어 있다. 나도 언젠가는 이렇게 한번 티엔무로 되돌아가 보고 싶다....


(티엔무 거주했던 분의 티엔무 재방문과 회고록)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4julove&logNo=220929908610&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kr%2F


타이베이에 거주했던 많은 외국인들에게 어쩌면 티엔무는 꼭 한 번은 다시 되돌아가 보고 싶은 어머님이 계신 고향과 같은 그런 기억이 새겨졌던 동네가 아니었을지....


검색해 보니 내가 티엔무를 떠난 지 11년이 지난 2020년 최근의 티엔무를 적은 글도 있던데 이 글에 있는 사진들을 보니 티엔무 모습도 10여 년 사이에 정말 꽤 많이 변한 것 같았다. 세월이 흐르면 결국 많은 것들이 이렇게 사라지고 또 바뀔 수밖에 없는 것이 냉정한 이 세상의 현실인 것 같다, 나 자신이 조금씩 더 늙은 모습으로 매년 바뀌어 가고 변해 가듯이 말이다....


(2020년의 티엔무 모습)

https://brunch.co.kr/@dreamju/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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