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인상적인 공간 (3-3)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21)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21. 타이베이의 인상적인 공간 (3-3)


전편 "20. 타이베이의 인상적인 공간 (3-2)"에서 이어짐......




■ 작지만 작지 않은 평안을 주는 거리의 공간


규모가 크거나 시설이 매우 우수한 그런 공간은 아니지만, 타이베이의 거리에서나름 매우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는 작고 아름다운 공간들을 볼 수도 있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공간들이 그런 공간인데, 매우 좁거나 구석진 곳임에도 누군가 정성을 들여서 그 공간을 꾸며놓은 덕분에 그곳을 지나치는 이름 모를 행인들은 그러한 공간을 보면서 짧지만 나름 평안을 느끼고 또 아름다움을 감상하고 때로는 위로까지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사진) 건물 사이 좁은 공터에 있는 미니 공원 (2008. 8월).


사진) 오솔길처럼 휘어지고 자갈이 곱게 깔린 거리의 인도 (2010. 4월)


사진) 건물 뒷마당의 조경 (2007. 5월). 짧게 깎은 잔디가 일본 용안사의 자갈 정원이 연상되는 것 같기도 하다.

(용안사 정원)

https://blog.naver.com/ccl607/220074737402


사진) 법인 근처 거리의 미니 정원. 2평 남짓의 작은 공간이 소나무, 돌, 화초, 잔디 등으로 정성스럽게 꾸며져 있었는데 마치 소나무 분재가 거리 한복판에 심어져 있는 것 같았다. (2010. 4월)


사진) 빌딩 지하층인데 천정이 뚫려 있어 지하까지 햇살이 내리쬐는 모습. 바닥에는 목재 데크가 깔려 있고 좌측에는 붕어가 떠다니는 미니 호수도 보인다 (2007. 10월).


사진) 건물 외부 좁은 공간에 벚꽃이 온통 피어 있는 모습 (2007. 2월).



중국풍 건물도 꽤 멋지다는 것을 실감했던 건물


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마주친 건물로, 역시 유명한 명소는 아니었지만 나름 매우 고유한 중국적인 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건물도 있었다. 아래 사진의 건물이 바로 그 건물인데, 한국이나 일본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중국만의 양식으로 디자인된 건물처럼 보였다.


사진) 전형적 중국풍 양식으로 보이는 건물 (2007. 12월).


이 건물은 나중에 지도에서 찾아보니 '푸위엔 찬팅(馥園餐廳)'이라는 이름의 식당이었다. 거리를 지나다 우연히 보게 된 건물이라 당시 식당 내부는 못 찍었는데 내부 모습이 좀 궁금해 검색해 보니 내부 모습이 소개된 사이트도 있었다. 그런데 이 사이트에서 보니 건물 내부 역시 외부 이상으로 매우 고전적이고 또 중국적인 느낌이 물씬 풍겨지는 그러한 공간이었다.


(푸위엔 찬팅 내외부 모습이 소개된 사이트)

1. https://vindie123.pixnet.net/blog/post/323229209

2. https://anrine910070.pixnet.net/blog/post/32770676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narMxdoQcV4sj4DB7


식당의 음식 가격을 보니 한화로 20만 원이 넘는 메뉴들도 있던데 역시 너무도 우아한 건물만큼 음식 가격도 비싼 것 같았다. 하지만 매일 이런 곳에서 먹을 것도 아니고 어쩌다 한 번쯤은 타이베이 거주하는 기간 이런 고풍스럽고 독특한 멋이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해보는 것도 좋았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전혀 해보지 못하고 2년간의 타이베이 생활을 마감해 버린 것이 지나고 나니 좀 후회스럽고 아쉽다.


최근 거리뷰로 검색해 보니 이 건물은 공사를 하고 있던데 그 사이 이미 폐업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계획에 공사를 하고 있는 경우라면 이제는 이곳에 또다시 찾아가도 식사를 할 수 기회는 전혀 없게 된 셈이다.



■ 아름다운 그리스 신전 같은 정원


내가 타이베이에서 거주했던 아파트는 '롱야오스지(榮耀世紀)'라는 아파트였다. 이 아파트는 아파트 건물 내부도 매우 깔끔하고 좋았지만, 단지 중앙의 고대 그리스풍의 정원처럼 보이는 공간이 매우 인상적이고 아름다웠다.


아파트 단지 출입구로 가려면 이 정원 옆 회랑을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출퇴근하면서도 최소한 하루 2번 이상은 이 정원을 지나쳐서 가곤 했다. 그런데 이 공간을 지나칠 때는 정원의 아름다움으로 비록 매우 짧은 시간이었지만 어쨌든 피곤이 잠시 씻겨가는 것 같은 기분이 때때로 들기도 했다.


사진) 아파트 '롱야오스지' 단지 중앙의 정원 모습. 사진 속 돌기둥으로 된 저 회랑길을 걸어 매일 출퇴근했었다.


서울에도 물론 첨단 시설과 대규모 조경으로 꾸며진 최고급 아파트가 많이 있다. 하지만 비록 그다지 크지는 않아도 이 아파트 정원처럼 뭔가 독특하고 섬세한 감흥을 느끼게 하는 그런 정원이 있는 아파트는 별로 보지 못한 것 같다.


(아파트 단지의 정문 거리뷰)

https://goo.gl/maps/NpCVmyy2ZUBBn9bp7



■ 아열대 지방 뜨거운 태양 아래 거리 모습


깔끔하고 잘 꾸며진 신축 건물도 물론 있었지만, 타이베이 거리에서 마주치는 건물들은 대다수 오래되고 낡아 보이는 것들이 많았다. 건물 내부는 꽤 깔끔하다고 하는데 어쨌든 외부 모습은 그랬다.


대만인의 평균 PPP 기준 GDP가 한국인 평균보다 여전히 1만 달러 이상 많을 정도로 대만인들이 부자임에도 외관은 그렇게 거의 방치된 상태로 있는 건물들이 꽤 많았던 것을 보면 대만인들은 일반적으로 겉모습에는 그리 많은 신경을 쓰지는 않는 것 같았다.


사진) 타이베이 시내 곳곳의 모습. 대부분 낡은 건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낡고 오래된 건물이 많다 보니 그런 건물들 사이로 걷다 보면 마치 시간을 거슬러서 1980~90년대로 되돌아가서 서울 강북의 오래된 동네 거리를 한여름에 다시 걷고 있는 것 같은 아름다운 착각을 하기도 했다.


물론 서울 강북의 그런 오래된 동네도 이제는 거의 대부분 재개발되어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2020년 현재도 을지로, 종로 5가, 후암동, 남영동, 내 고향 돈암동 등 일부 지역은 여전히 위 사진에서 보는 타이베이의 거리처럼 예전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서울이 여전히 너무도 빠르게 재개발되어 가고 있고 타이베이 역시 새로 개발되는 곳이 많으니, 두 도시의 그런 오래된 모습들이 과연 언제까지 남아 있을지는 모르겠다.



■ 허름했지만 푸근한 타오위안 1 터미널


인천 공항이 건설되기 전에는 김포 공항이 서울의 유일한 국제공항이었던 것처럼, 한동안 타이베이의 유일한 공항은 일제 강점기인 1936년 일본이 시내 도심 한복판에 건설한 '쑹산(松山) 공항'이었다. 역시 일제 강점기 시절에 완공된 서울의 김포공항이 1939년 건설되었다 하니 쑹산 공항은 김포 공항보다는 약 3년 정도 먼저 개장된 셈이다.


하지만 교통량이 증가하면서 훨씬 더 큰 공항이 필요했고, 마침내 1979년에 타이베이 인근 '타오위안(桃園)이라는 지역에 새로운 공항이 완공되었다. 이 공항이 바로 현재의 '타오위안 1 터미널'이다. 이후 교통량이 또다시 증가하자 터미널 추가 공사가 착수됐고, 2000년부터는 타오위안 2 터미널이 추가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한편 보다 최근에 완공된 2 터미널은 최신식 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반면, 1 터미널은 완공된 지 이미 너무 오래돼 제반 시설들이 매우 노후했었고 따라서 2009년부터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 공사가 착수되었다. 공사는 3년 후 2012년에 마무리되었고, 이제는 1 터미널도 첨단 시설의 전혀 새로운 터미널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결국 현재 타오위안 1 터미널 모습은 1979년 최초 완공 당시의 그 터미널 모습과는 크게 다르다는 뜻이다.


2007~8년 타이베이에 근무하던 기간 내가 주로 이용하던 항공사는 1 터미널에 있어서 시절에는 1 터미널을 주로 용했다. 그런데 그때는 2009년부터 시작된 리노베이션 공사가 진행되기 바로 직전으로 30여 년 전인 1970년대에 건축된 1 터미널은 꽤 낡고 노후한 모습이었던 시절이었다.


(2005년 1 터미널의 한 공간 모습)

https://www.travelblog.org/Photos/176972


하지만 그런 1 터미널의 모습이 나쁘게만 보이지는 않았고 오히려 왠지 매우 푸근하게 느껴졌다. 작고 노후한 과거의 김포공항이 더 정겹게 느껴졌던 것과 비슷한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최신식 시설로 건축된 거대한 인천 공항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1 터미널 관련 기억 중에는 특이했던 것도 하나 있는데, 항공기 탑승을 위해 Gate로 가려면 한 층 아래로 내려가야 했던 것이었다. 1 터미널의 Gate는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내려간다고 해서 지하로 내려가는 것은 아니었고 그저 한 층 아래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즉, 사람들이 다니는 통로, 상가가 모두 Gate 보다 한 층 더 위에 있다 보니 항공기에 탑승할 때는 2 층에서 지상층인 1 층으로 내려가야 했던 것이다. 리노베이션 이후에는 이러한 특이한 방식이 혹 변했는지 확인해 보려고 1 터미널의 최근 사진을 검색해보니 리노베이션 이후에도 이런 탑승 방식은 변함없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1 공항 게이트 모습, 끝부분에 Gate 모습이 있다)

https://ittekuru.com/2019/10/08/terminal-report-taoyuan-international-airport-tpe-t1-taipei-taiwan/


한편 홍콩-타이베이 노선을 운용하는 항공사는 타오위안 2 터미널에 주로 있었다. 따라서 대만을 떠나 홍콩에 부임한 이후에 타이베이 출장 갈 때는 2 터미널을 주로 이용했다. 하지만 보다 첨단 시설들로 새롭게 지어진 2 터미널에서는 과거 리노베이션 이전 1 터미널에서 느꼈던 것 같은 오래된 공항에서만 느낄 수 있는 그런 묘한 향수 같은 매력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런데 사실 1 터미널과 2 터미널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두 터미널 간은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그래서 출발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 있는 경우는 2 터미널에서 1 터미널까지 걸어가서 예전의 추억과 향수가 남아 있는 1 터미널을 맘껏 구경하고 오기도 했었다. 아래 사진이 그때 찍은 사진인데, 안타깝네도 그 시절 1 터미널을 찍은 사진은 남아 있는 것이 없고, 단지 2 터미널에서 1 터미널로 연결되는 부분을 찍은 아래 사진만 달랑 한 장 남아 있다.

사진) 타오위안 2 터미널 끝 부분 모습. 복도 끝의 우측으로 계속 걸어가면 1 터미널로 연결된다 (2010. 9월).


(1 터미널 리노베이션 이전 2009년 모습, 04:35)

https://www.youtube.com/watch?v=VUIJ4182P8Q



■ 중정 기념관 허공에 메아리치던 군화 소리


대만을 소개하는 한국의 서적들 중에는 '아름다운 섬, 슬픈 역사'라는 제목의 책도 있다. 그만큼 대만에는 아픈 역사가 많았다는 의미로 제목을 그렇게 정한 것 같은데, 실제로 대만의 역사는 그런 아픔들로 점철되어 있었다.


네덜란드, 스페인, 청나라, 일본 등의 외세가 번갈아 대만을 지배했던 과거 역사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도 중국의 국제 사회에 대한 압력으로 대만은 국제적으로 국가로도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했다는 홍길동처럼, 전 세계는 국가인 대만을 국가라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UN 가입과 함께 대만은 UN에서 축출됐으며, 국제회의에 참석할 수 없음은 물론, 올림픽 같은 비정치적 체육행사에 참석할 때대만 국기, 국가, 국명 모두를 사용하지 못하고 그저 중국이 자신들 입맛에 맞게 새롭게 정해준 'Chinese Taipei'라는 괴이한 이름으로만 참석이 허용된다.


국가적 차원뿐 아니라 개인적 상황에서도 대만인의 현실은 참담한데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걸그룹 트와이스의 당시 16살이었던 대만인 '쯔위'는 한국 방송에 대만 국기를 들고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중국으로부터 집중적인 공격을 받고 결국 상복 같은 시커먼 옷을 입은 채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방송까지도 해야만 했다. 대만에서 태어나고 대만에서 자란 16살 대만 소녀가 대만 국기를 들고 나왔다는 것이 이제는 사과해야 할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대만, 엄밀히 말하면 '중화민국'도 한때는 중국 본토 전 지역을 통치했던 시절도 있어서 이제는 꿈같은 얘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현재 마오쩌둥의 초대형 초상화가 걸려 있는 베이징의 천안문에는 그보다 더 큰 장개석의 초상화가 걸려 있던 시절도 있었다.


(천안문의 장개석 초상화)

https://news.joins.com/article/7030234


또 중국 본토에서 공산당에 패해서 중화민국이 대만섬으로 쫓겨난 이후에도 1971년까지 25년간 대만은 여전히 UN 회원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미국, 소련, 프랑스, 영국 등과 함께 절대적 권한을 행사하는 UN 5대 상임이사국 지위를 누리기도 했었다.


또한 전술한 바와 같이 인당 소득도 비록 명목 GDP는 이제 한국이 대만을 앞서가고 있지만 물가를 감안한 PPP 기준의 GDP는 대만이 약 5만 불로 한국보다는 여전히 1만 불 이상 높으며 독일, 호주와 유사한 수준이다. 대만의 외환보유고 또한 전 세계 6위권으로 9위 한국보다 많다.


(외화보유고 상위 10개국 순위)

https://blog.naver.com/zyung7910/221533205181


인구 역시 약 2천4백만으로 전 세계 238개 국가 중 56위에 등재되어 있을 정도로 결코 작지 않으며, 55위의 호주 인구 2천5백만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대만은 화려한 과거 역사를 갖고 있었고, 또 현재의 관점에서 봐서도 여전히 세계적으로 결코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국가다. 그럼에도 국가로도 대우받지 못하는 참담한 현실에 처해 있는 것이다.


타이베이에는 중정기념관이라는 건물이 있다. 대만이라는 국가가 존재하게 된 기반을 제공한 국부 장개석을 기념하는 기념관이다. 이 기념관에는 거대한 장개석의 동상이 있는 대형 홀이 있고 근위병들이 이 동상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그 근위병들의 교대식 장면이 이제는 장개석 동상 자체보다 더 유명해져서 장개석 동상보다는 오히려 교대식을 보러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더 많다고 한다.


교대식을 보면 근위병들은 마치 기계로 만든 로봇 병정들이 움직이듯 정교하고 엄숙한 모습으로 행진을 하는데, 행진할 때 그들이 만들어 내는 군화 소리는 천장 높이가 70 미터에 달한다는 웅장하고 넓은 홀 허공으로 종소리가 퍼지듯 울려 퍼진다.


그런데 장엄하게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조용히 듣다 보면, 마치 대만의 모든 아픈 현실이 그저 정면만 응시하고 있는 장개석의 힘없는 시선과, 16살 대만 소녀 쯔위가 사과하던 순간의 떨리는 목소리와 함께 그 소리에 뒤섞이고 함축되어 허공에서 비명 지르듯 메아리치는 것 같은 안타까운 느낌이 들기도 했다.


(중정 기념관 근위병 교대식, 03:11)

https://www.youtube.com/watch?v=W0Flw5HYI0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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