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7년 대만 법인 사무실은 타이베이 네이후(內湖)의 'Liberty Times Square(自由時報廣場)'라는 지상 16층 건물 10층에 있었다.
이 건물은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내부 벽이 모두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마감된 매우 고급스러운 건물이었다. 따라서 임대료도 꽤 높아 당시 실적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법인 입장에서는 부담되는 상황이었는데, 이 건물 10층에 같이 입주한 관계사가 훨씬 넓은 면적을 사용하면서 비용의 상당 부분을 지불했던 덕분에 이처럼 아름다운 건물에서도 2년 가까이 근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건물 자체만 멋진 것이 아니라, 건물에서 보이는 경치 또한 꽤 아름다웠다. 10층에서 보이는 경치도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탁 트여 있었으니 실제 올라가 보지는 않았지만 건물 최상층인16층에서 바라보는 경치는 이 보다 훨씬 더 장관이었을 것이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 앞 강은 타이베이를 관통하는 지룽(基隆) 강이다.
사진) 10층 사무실에서 보이던 주변 경치. 저 멀리 101층 빌딩도 보인다. (상단 2007. 8월, 하단 2007. 9월)
하지만 이처럼 아름답고 또 주변의멋진 경치까지도 볼 수 있는 사무실에서 근무했음에도 마음은 항상 편치 않았는데, 법인 실적이 부진했기 때문이다. 부임 이후에 법인 매출이 조금씩 개선되기는 했지만 인근 지역의 다른 법인들 매출과 비교하면 여전히 턱없이 낮은 숫자였다.
당시 법인 인력은 약 160여 명이었는데, 이 건물에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별도 사무실을 사용하던 서비스 쪽 인력 20여 명, 또 타이베이가 아니라 지방 도시에 근무하던 인력 20여 명을 제외하면 이 건물 사무실에는 약 120명 정도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었다.
160여 명에 달하는 법인 직원들은 당연히 대만인들이 거의 대부분이었다. 한국인 주재원수는 나 포함 5명뿐이었으니 법인 인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3% 수준에 불과했다. 주재원은 아니지만 대만에 거주하시던 한국인으로 채용된 인력도 두 분이 계셨는데 내가 근무하던 기간 퇴사하셨다.
그런데 대만 법인에는 주재원이나 한국인 직원들 이외에도 한국어를 너무도 완벽하게 구사하는 인력들이 또 있었는데, 바로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을 떠나서 대만으로 와서대만인으로 살고 있는 화교 출신 직원분들이었다.
당시 대만 법인에는 이러한 화교 출신분들이 인사, 서비스, 영업, 물류 등 부서에 모두 4분 계셨다. 한편 이분들은 모두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이후 성인이 돼서 대만으로 오셨던 분들이어서 한국어는 당연히 한국인과도 구분되지 않을 만큼 완벽했다. 한국에 거주하시는 화교분을 한국어만 듣고 구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중국 베이징에 근무할 때는 현장 판매조직이 아니라 지역 본사 스태프 조직에 근무했던 터라 한국 본사와의 교류가 많았고 그러다 보니 중국어보다는 한국어 문서 작성이 더 많았다. 그런데 그렇게 한국어 문서 작성이 필요한 곳이다 보니 채용되는 직원도 한국어를 구사하는 우리 동포 조선족 직원들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직원 대다수가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국인이거나 또 이렇게 채용된 조선족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니 큰 단점도 하나 있었는데 하루 온종일 사무실에서 한 마디도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고서 일과를 마치는 경우가 허다했다는 것이다. 결국 근무지는 비록 중국의 베이징이었지만 직장에서마저 그렇게 한국어로만 대화를 하다 보니 중국어 실력은 도통 향상되지 않았다.
하지만 대만으로 오니 상황이 달랐다. 기본적으로 대만에는 조선족이 존재하지 않아, 전술한 것처럼 전체 직원 160여 명 중 한국어가 가능한 인력은 모두 합쳐도 10명도 안됐고 현지인들 중에는 영어 구사가 아예 불가능한 직원도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중국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았다.
결국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면 법인에서 도대체 소통을 할 수가 없는 현실이니 실력이 안돼도 꾸역꾸역 중국어를 자주 사용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다 보니 다행히 중국어 실력은그나마 조금씩 개선되기 시작했다.
나중에 홍콩 법인에 근무할 때 보니 홍콩인 직원들은 서로 대화할 때는 홍콩의 언어인 광둥어로 대화를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사내 이메일을 주고받을 때만은 광둥어보다는 영어로 주고받는 경우가 좀더 일반적이었다. 즉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언어와 문서에 사용되는 언어가 달랐던 셈이다.
그런데 홍콩과 달리 대만 법인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문서와 대화 구분 없이 언제나 한국에서처럼 딱 한 가지 언어였다. 바로 '구오위(國語)'라 불리는 언어다. '구오위'라는 언어는 일부 어휘와 사용법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중국 본토의 표준어와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언어였다. 국민당이 대만을 통치하기 시작하던 1940년대부터 오랜 기간 중국 표준어를 대만의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교육하도록 해왔기 때문에 70여 년이 경과한 이제는 거의 대부분의 대만인이 이 '구오위'를 모국어로 사용해서 상호 소통하게 된 것이다.
이 '구오위' 외 또 다른 언어가 대만에는 존재하는데, 바로 '구오위'가 유입되기 이전 대만에서 모국어처럼 사용되었던 '타이위(臺語)'라는 언어였다. 이 언어는 중국 남부에있는 푸젠성의 언어 민난위(閩南語)와 기본적으로 같은 언어로 17세기중반 명나라 장수 정성공에 의해서 대만이 정복될 즈음 푸젠성에서 대만으로 이주해 왔던, 즉 현재 대만인의 약 85%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오랜 시간 사용해 왔던 언어다. 2차 대전 후 국민당이 대만으로 들어와서 '구오위' 사용이 강요되기 이전에는 바로 이 '타이위'가 수백 년간 대만인의 언어였던것이다.
하지만 법인 사무실에서 이 '타이위'가 사용이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집에서는 '타이위'를 사용하는 직원들도 간혹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직장에서 사용되는 경우는 없었는데 이제는 젊은 사람들 중심으로 '타이위'를 아예 구사하지도 못하는 대만인들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중국 본토에서도 표준어 이외의 지방 언어들은 점차 사어화 돼가는 추세라고 하는데 대만에서도 유사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물론 '타이위' 사용이 보다 강한 대만의 남부 지역은 여전히 '타이위'가 직장에서도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는 한다.
영어역시 사무실에서는 좀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없었는데 나이가 좀 있는 직원분들은 일본어는 구사해도영어는 아예 구사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인근의 홍콩과는 꽤 다른 현상이었는데, 대만 직장인도 홍콩인처럼 대부분 영문 이름을 가지고 있었지만 영어 구사 능력에서는 홍콩과는 확실히 좀 차이가 있었던 것 같다. 물론 미국으로 유학을 다녀온 젊은 직원들도 간혹 있었는데 그들의 영어는 당연히 매우 유창했다.
한편 일본 통치를 반세기나 받았을 뿐 아니라, 또 일본에서 해방된 이후에도 일본인과 일본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대만인들이 많아서 그런지 법인 직원 중 일본어를 구사하는 직원들은 꽤 많았다. 심지어 나이가 좀 있는 직원분중에는 자신의 중국식 본명 외에 영어식 이름 대신 일본식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을 정도였다.
앞부분에서도 잠시 언급했던 바와 같이 당시의 법인 실적은 주변국 법인 대비 매우 부진했다. 실적이 부진했던 이유는 법인 차원의 문제도 일부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법인에서는 해결하기어려운 본사 차원의 공급 문제도 있었다.
그렇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 모든 것은 법인에서 책임지는 구조였고 그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는 적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에서 한국 본사에 출장을 갔을 때 인천 공항 매장에서 마침 거북선 모형을 팔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 그걸 하나 사 가지고 대만으로돌아왔다. 그리고 그걸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놓고 방으로 들어오는 직원들에게 거북선이 일본군의 침략을 물리친 과거의 화려한 역사를 설명해주곤 했었다.
비록 일본과 일본 제품에 대한 호감이 워낙 강한 곳이 이곳 대만이었지만, 실제 그보다 더 어려운 여건에서도 거북선이 일본군을 물리쳤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의 일본 경쟁사들을 물리치자는 의도에서 그런 설명을 하곤 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의도가 직원들에게는 결과적으로 좀 이상하게 전달되기도 했는데, 새로 부임해온 법인장이 법인의 실적이 개선되지가 않으면 표백제 마시고 자결할 것 같은 각오라는 다소 황당한 농담 같은 소문이 직원들 사이에 퍼져 있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실제로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내 책상 위 거북선 모형이 있는 곳 바로 옆에는 항상 표백제가 있었다. 이 표백제도 분명히 내가 사서 책상 위의 그 자리에 두었을 것인데, 왜 표백제를 샀는지 그리고 왜 하필 거북선 모형 옆에 그것을 올려 두었는지는 아무리 생각해도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진) 내 책상 위에 있던 거북선과 표백제 (2007. 11월)
어쩌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법인장 사무실에만 가면 언제나 잘하지도 못하는 중국어로 꽤 특이하게 생긴 배를 보여주며 이상한 잔소리를 하는데, 그 배 바로 옆에는 표백제한 통이통째로 놓여 있으니 직원들이 그러한 오해까지 하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 입장을 바꿔서 내가 생각을 해 봐도 직원들 오해가 충분히 이해되는 것 같았다. 내가 근무하는 회사 대표 방에 들어가 보면 책상 위에는 언제나 대형 락스 통 하나가 놓여 있다면 정말 얼마나 이상하겠는가? 회사에서 빨래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직원들이 근무하던 법인 사무실 공간을 찍었던 사진들은 몇 장이 남아 있는데, 아쉽지만 내가 근무하던 사무실 사진은 위의 거북선과 표백제가 놓여 있는 사진밖에 없다. 하지만 대만의 모 방송사에서 참고 자료로 활용한다고 해서 자리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찍은 짧은 동영상은 하나 남아 있는데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사진이다. 물론 방송사 직원 역시도혹 이상한 오해를 할까 걱정돼서 이 동영상을 찍기 전에 책상 위에 있던 표백제와 거북선은치워 두었다.
사진) 법인 사무실에 앉아서 찍은 동영상 (2007. 5월).
법인 사무실에는 출장을 가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한, 일 년 365일 출근했었다. 휴일에 잠시 1~2시간 정도 매우 짧게 머물더라도 어쨌든 사무실에 잠시라도 출근을 해야 마음이 놓이는 그러한 심정이었다. 어차피 독신으로 휴일에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도 아니라 마땅히 꼭 해야 하는 일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것보다는 일종의 직업병 같은 강박 관념으로, 사무실에 잠시라도 가 보지를 않으면 왠지 불안했기 때문이었다.
아래 사진도 그렇게 휴일에 출근했을 때 아무도 없는 텅 빈 사무실 공간을 찍은 것인데 휴일이라 직원들이 없어서 사진 속 모습은 적막감까지 흐르는 모습이지만 사실 주중에는 이 공간은 온갖 다양한 일이 끊임없이 벌어지는 아수라장 같은 곳이었다. 2007~8년 2년 여간 정말 많은 일들이 바로 이 공간에서 발생했었다.
사진) 2007~8년 대만 법인 사무실 모습. (상단 2007. 2월, 하단 2007. 6월)
법인에는 대만의 대학에서 한국어과를 졸업한 직원들이나, 한류에 빠져 스스로 한국어를 습득한 직원들도 꽤 있었다. 아래 사진은 그런 직원 중 한 분의 자리인데, 책상 위에 적힌 한글 문구가 너무 재미있어 사진으로 찍어둔 것이다. '과식 금지'라고 한글로 적혀 있는데, 사실을 솔직히 있는 그대로 얘기하면 실제 몸무게가 좀 있는 여성 직원분이었다.
'과식 금지'라는 문구 아래 매우 작은 글씨로 적힌 또 다른 문구가 있는데 자세히 보니 '닭똥집 디자인'이었다. 아마 이 팻말을 만든 업체 이름인 것 같은데 업체 이름도 역시 꽤나 재미있었다. 그런데 '닭똥집 디자인'이라는 이 업체는 정작 자신이 만든 팻말이 어쩌다 먼바다 건너서 대만에까지 와서 대만 회사 사무실 어느 책상 위에 한글 상태 그대로 올려져 있게 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것 같다.
사진) 직원 책상 위 '과식 금지'라는 팻말 (2007. 2월)
1년에 한 번씩 법인 인근의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법인의 전직원들이 참여하는 체육대회를 하기도 했었다. 일종의 단합 대회 개념으로 진행했던 행사였는데, 이 행사를 하는 날은 대다수의 직원들도 매우 좋아했지만 나 역시도 마치 오래전 학창 시절 소풍 가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들곤 했던 기억이 있다.
아래 사진이 바로 그 체육대회 모습인데, 사람들 모습이나 학교 모습은 한국과 꽤 유사해 어찌 보면 한국의 초등학교 같은 느낌도 든다. 하지만 운동장에서 자라는 큰 나무들이 야자수 같은 열대 나무인 것을 볼 때는 여기가 결코 한국이 아니라아열대 지방 타이베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사진) 대만 법인 체육대회 모습 (2008. 11월).
2008년 하반기 사정이 생겨 사무실을 다른 건물로 옮겨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런데 급하게 진행해야 했던 상황이라 서둘러서 새로 이사 갈 건물을 찾아야 했는데, 타이베이에 근무하는 법인 직원들만 140여 명 수준이었으니 적지 않은 그 인력 모두가 들어갈 마땅한 공간을 찾는다는 것이 그리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사는 가야 하는 상황이었으므로 약 2~3달간 영업 총감, 관리담당, 그리고 나 이렇게 세명이 거의 매 주말에는 사무실을 보러 다녔었다. 그런데 솔직히 나야 어차피 혼자 사는 처지라 주말을 그렇게 밖에서만 보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가족이 있던 그 두 분은 몇 달간 연속으로 그렇게 주말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사실 꽤 부담됐을 것이다.
그 두세 달 기간 적어도 40~50 군데 이상 사무실 건물들을 방문했던 것 같은데, 아래 사진은 그때 방문했던 건물들 중 일부의 모습이다.
사진) 사무실 찾아 헤매던 시절 방문했던 오피스 건물들.
사진) 신규 사무실을 찾을 때 같이 다녔던 분들. 관리담당과 현지인 영업 총감인데 휴일에 사무실을 보러 다녔기 때문에 두 분 모두 매우 편한 복장이다 (2008. 8월).
그렇게 두세 달에 걸쳐 수많은 오피스 건물을 방문한 이후 마침내 마땅한 공간을 찾았다. 물론 최적이라고 할 수만은 없었지만, 어쨌든 계획된 예산 범위 안에서는 그나마 가장 적합한 건물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은 우리 법인이 최초로 입주하는 신축 건물이라 건물만 있었지 그 안 내부 설비는 아무것도 없었다. 결국 문짝을 새로 다는 것부터 시작해서 또다시 한두 달간의 대대적인 공사를 해야 했었다.
마침내 모든 공사가 끝이 났고 2008년 12월 10일 수요일드디어 새로운 사무실로 첫 출근하는 날이 다가왔다. 그해 6월 말 입주할 건물을 찾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무려 반년 여만에 드디어 새 사무실로 출근하게 된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새 사무실 첫 출근하는 그날이 내게는 그 사무실 즉 대만 법인에 출근하는 마지막 날이되었다. 바로 그즈음갑작스럽게 홍콩 법인에 가라는 인사발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새 사무실 입주 약 1 주전 베이징에서 회의가 있어서출장을 갔었는데 그기간 중에 중국 본사 사장님으로부터 홍콩으로 부임하라는 지침을 받았던 것이다. 게다가 알고 보니 당시 홍콩 법인에좀 각별한 사정이 있어서 바로 부임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그날 출장 중에 그렇게 지침을 받고는 약 1 주일만에 홍콩에 부임했다. 반년 여간 고생을 해가며 새 사무실입주 준비를 어렵게 모두 마쳤더니 입주하는 그날이 대만 법인을 떠나야 하는 날이 되어버린셈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회사의 인사 명령은 명령이었고, 결국 대만 법인 사무실에서의 생활은 이렇게 만 2년도 채우지 못하고 뭔가 좀 덜 마무리된 것 같이 아쉽고 어정쩡한 여운을 남긴 채 그렇게 끝을 맺었다. 새 사무실을 열심히 준비해 갈 때는 물론 영원히는 당연히 아니겠지만 적어도 2~3년은 새로운 그 공간에서 많은 일들을 하게 될 것으로 나름 기대했는데, 결과는 그런 기회가 전혀 주어지지 않는 것으로내 운명은 결정되어 있었던 셈이다.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에 있는 법인들을 이전에 떠나야 했던 것처럼, Taipei에 있는 법인 사무실도 이렇게 떠나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