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기억에 남는 단편들 (3-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24)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24. 타이베이, 기억에 남는 단편들 (3-1)



1) 장례식장에 등장하는 반라의 여성 댄서


대만 법인 근무 시 집에서 회사까지 약 30분 거리를 매일 걸어서 출퇴근했다. 그러다 보니 거리의 좀 특이한 장면을 가까이서 목격하기도 했는데, 하루는 항상 지나던 길 어느 주택 앞에 대형 텐트가 쳐 있는 모습이 보였다. 호기심에 그 텐트 안을 살짝 들여다봤더니 돌아가신 어느 분의 장례식을 치르고 었다.


그런데 이상했던 것은 그 상갓집 텐트 안에는 짧은 치마를 입은 젊은 여성들이 짙은 화장을 한 상태로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는 모습도 보였던 것이다. 상을 치르면서 선정적 복장을 한 무희들이 춤추며 노래하고 있던 상황이었는데 도대체 이런 상황이 무슨 상황인지 잘 이해가 안 됐다.


회사로 출근해서 대만인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정말 의외의 답을 들을 수 있었는데 대만에서는 돌아가신 망자의 마지막 길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그러한 의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상을 치르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했다.


(대만 장례식 여성 댄서, 01:17)

https://youtu.be/c0Gr5CWwLgc


그런데 좀 더 찾아보니 그러한 특이한 장례 의식은 오로지 대만섬에서만 행해지는 것은 아니었, 중국에서도 때로는 그러한 의식으로 장례를 치르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 17세기 중국인이 대만으로 대거 이주할 때 이러한 개념이나 풍습도 중국에서 대만으로 함께 넘어온 것 아닌가 싶다.


(중국 장례식 스트립쇼)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2/22/2018022200229.html


한국에서는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운 장례 풍습을 대만에서 경험했는데, 어찌 보면 슬픔을 승화시키려는 그러한 의미가 이런 풍습의 배경에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2) '종이' 달라했더니 '' 불쑥 내미는....


예전에 프랑스 파리에서 불어를 배울 때 v와 b 발음 교정을 받는 반에 들어가 보면 항상 단골처럼 만나게 되는 국적의 학생들이 있었는데 바로 한국, 일본, 그리고 중남미 국가의 학생들이었다. 독일이나 영국 등 기타 유럽 국적의 학생은 전혀 없었는데 왜냐하면 독어나 영어에는 불어처럼 v와 b 발음이 구분되어 있지만, 한국어와 일본어는 그 구분이 꽤 불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같은 유럽의 언어지만 특이하게도 스페인어에서도 이 두 발음의 구분이 분명치 않아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중남미 학생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교정반에 단골로 불려 왔었다.


유사한 현상이 중국에도 있는데, 중국 남부 지역은 북부와 달리 권설음 발음이 분명치 않은 지역이 많다. 그런데 현재 대만인의 약 85%가 중국 남부의 푸젠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사람들이라, 대부분의 대만인 역시 푸젠성 사람에게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권설음 발음 구분이 분명하지 않다. 즉, 중국 표준어의 sh, zh, ch, r 등 발음이 대만섬에서는 다소 다르게 발음된다는 의미다.


예를 들어 '언제'라는 말은 중국 표준어로는 '什么时候'라 하는데, 한글로 발음을 한글로 적으면 '션(sh)머스호우'에 가깝다. 그런데 권설음 발음이 분명하지 않은 대만인들이 이 단어를 말할 때 들어보면 '선(s)머스호우' 처럼 들린다.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이다.


대만 법인 근무 시, 이런 발음 차이로 인해 야기되는 재밌는 장면을 직접 보기도 했는데, 부모님이 중국 북방의 산둥성 출신 즉 외성인인 법인의 총감이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给我纸' 즉 '종이(zhi, 纸)'를 달라고 했더니, 본성인 출신인 직원이 매우 천연덕스럽게 '자(chi, 尺)'를 턱 건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권설음에 약하다 보니 zhi와 chi 발음 구분이 잘 안됐던 것인데, 황당한 그 모습에 잠시 멍하고 있던 우리 모두는 상황을 파악하고 난 후 동시에 함께 빵 터져서 한참 웃었다.



3) 대만인돌변하기도 하는 날 '웨이야(尾牙)'

중국 본토에서 근무할 때는 거래선들과 술 마셔야 하는 것 때문에 매우 시달리기도 했다. 왜냐하면 당시에는 거래선과 술을 마시면, 한쪽이 거의 실성할 정도로 마셔야 하는 것이 일종의 관례이고 또 예의로 인식되었기 때문이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과거 한국의 술 문화와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런데 대만에 오니 대만은 너무도 더운 지방이라서 그런지 그렇게 술을 죽도록 많이 마시는 문화가 거의 없었다. 물론 한국에도 잘 알려진 대만의 유명한 금문고량주는 그 도수가 58도 짜리도 있지만, 이 술을 마실 때는 얼음이나 물을 함께 넣어서 조금씩 마시기 때문에 중국에서처럼 도수 높은 독주 그 자체를 그대로 퍼 마시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이처럼 대만의 술 문화는 중국 본토와 달리 꽤 합리적이라 대만에 부임해서 술 마실 때는 크게 부담이 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술에 대해 합리적인 대만인들이 1년에 한 번 완전히 돌변하는 날이 있었는데 바로 대만의 송년회인 '웨이야(尾牙)'를 할 때였다. 웨이야는 원래 민속 신앙 속 신에게 사업 번창을 기원하면서 드리는 한 해의 마지막 제사를 의미했다 하는데 나중에 그 내용이 송년회라는 의미로 변하게 되었다 한다.


한국에서도 기업체마다 송년회를 하기도 하지만, 전 인원이 모여서 하는 경우보다는 부서 단위로 적은 인원을 대상으로 하는 경우가 보다 일반적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만 경우 이와 달라서 회사 전 인원이 모두 모여서 진행하는 경우가 보다 일반적이었다.


따라서 대만 웨이야는 그 행사 규모에서도 매우 컸지만, 그 외에도 파격적일 정도로 푸짐한 경품이 주어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경품은 참석하는 인원 규모와 회사 상황에 따라 달라졌지만 통상 전체 참가자의 최소 10% 이상은 받을 수 있도록 준비되곤 했는데, 대만의 모 유명 대기업은 웨이야 경품으로 아파트 한 채나 고급 외제 승용차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 한다.


웨이야 행사가 일 년간 고생한 직원들에게 회사에서 감사를 표시하는 개념에서 진행하는 행사이다 보니 이처럼 파격적 경품도 주어지는 것이었는데, 행사 중 제공되는 식사 또한 매우 고급 음식이 제공됐다. 결국 웨이야 행사가 진행되는 날은 직원들 입장에서는 회사로부터 그해 일 년 중에 가장 푸짐한 대접을 받는 그런 날이었던 셈이다.


따라서 웨이야 행사 시에는 전반적인 분위기도 매우 들뜨게 되는데,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는 과음을 하지 않던 대만인 직원들도 이날만은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처럼 끊임없이 술을 마시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웨이야는 구정을 기준으로 해가 바뀌기 직전에 실시됐는데, 2006년도 대만 법인의 웨이야는 내가 대만에 막 부임했던 2007년 1월에 진행되었다. 그런데 행사 준비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내용을 보니 남녀 합쳐서 약 4, 5 명 정도의 직원을 선발하여 이 인력들은 일체 술을 마시지 않고 화장실 근처에서 대기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는 대만에 막 부임했던 시기여서 웨이야의 성격이나 또 의미를 아직 잘 몰라 도대체 이 직원들은 왜 그런 일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더니, 이야 행사 도중 과음으로 화장실에서 토하거나 심하면 실신하는 직원들도 매년 있어왔기 때문에 그런 직원들에게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이 직원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 남자 화장실에서 뿐만 아니라 여자 화장실에서도 역시 동일한 상황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일부 인력은 여자 화장실 출입이 가능한 여직원으로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평소 웬만해서는 결코 과음을 안 하는 대만 직원들이 설마 그렇게까지 완전하게 돌변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는데, 막상 웨이야가 진행되던 날 화장실에 가서 보니 행사를 준비하던 인력들의 말대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상당수의 대만인에게는 이와 같이 매우 예외적인 모습을 보일만큼 웨이야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사이었던 것 같다.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한국의 음주문화가 매우 많이 바뀌어 온 것처럼 대만에서도 요즘은 그런 풍조가 좀 바뀌었을지도 모르겠다.



4) 장개석(蔣介石)이란 이름의 발음


현재의 대만 정부를 설립한 사람은 '장개석(蔣介石)'이다. 그는 1948년에 61세의 나이에 대만 초대 총통이 되었고, 1975년 88세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무려 27년간 대만 총통으로 군림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대만인 사이에서도 엇갈리는데, 대만의 경제적인 성공을 주도해 온 것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장기간의 독재 행태에 초점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도 꽤 있다.


어쨌든 잘잘못을 떠나서 그가 그렇게 대만 정부를 수립하고 장기간 집권하다 보니 그를 상징하는 기념물들이 대만에는 아직도 꽤 많다. 그런데 그런 기념물들을 보면 그의 또 다른 이름이던 '중정(中正)'은 논외로 하더라도, 장개석이라는 이름의 중국어 표준어 발음인 '장지에스(Jiang Jie Shi)'가 아니라 '창카이섹(Chiang Kai Shek)'으로 표기되어 있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장개석이 대만에 온 이후에 강제적으로 중국 표준어를 보급해서, 현재 대만인의 중국어 이름 역시 모두가 중국 표준어와 같거나 비슷하게 표기되고 있음에도 유독 그의 이름만 다른 방식으로 표기되고 있었던 것이다.


(장개석 이름 영문 표기)

https://www.google.com/amp/s/www.history.com/.amp/topics/china/chiang-kai-shek


대만에 부임해서 초기에는 이러한 차이가 장개석이 태어난 저장성(浙江省) 방언에 근거하는 것으로 생각을 했다. 즉, 그가 태어난 지역인 저장성 방언의 발음으로는 '장제스'가 '창카이섹'으로 읽히기 때문에 그 흔적이 남아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우연한 기회에 알게 되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창카이섹'은 광둥 지방 언어인 광둥어 발음이었다. 손문(孫文)이 이끄는 혁명군의 주 근거지가 초기에는 광둥 지방이었기 때문에 손문을 따르던 장개석도 한때 그와 함께 광둥 지방에 있었고, 그때 사용되던 그의 광둥어식 발음의 이름이 중국의 여타 지방뿐 아니라 서구 사회에도 알려지고 굳어졌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蔣介石의 표준어/광둥어 발음)

https://fanyi.baidu.com/translate?aldtype=16047&query=%E5%85%89&keyfrom=baidu&smartresult=dict&lang=yue2zh#zh/yue/%E8%94%A3%E4%BB%8B%E7%9F%B3



5) 아름다운 대만에도 역시 조직폭력배가....


대만에 거주하던 기간에 다행히(?) 조폭과 마주치게 됐던 경우는 없었다. 하지만 한국, 일본, 중국, 미국 등 대부분의 나라에 조폭이 있는 것처럼 대만에도 역시 조폭이 있었다.


한국의 조폭들은 군사 정부 시절 여러 차례 반복된 강력한 조치들 때문인지 같은 조직이 수십 년 동안 와해되지 않고 존재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대만 조폭은 일본이나 중국의 경우처럼 수십 년간 동일한 조직이 존속해 오고 있는 경우가 흔한데, 죽련방(竹聯幇), 사해방(四海幇) 같은 이름을 가진 조폭이 바로 그런 조폭이었다.


이러한 조폭은 워낙 오래된 역사적인 조직이다 보니 법인의 대만 직원들 대다수도 그 조직의 이름을 잘 알고 있었는데, 의외로 대만 조폭은 그 규모도 크고 또 삼합회, 야쿠자 등 동 아시아의 국제적인 조폭 사회에서도 나름 유명하다고 한다.


(대만의 5대 조폭)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80204

(대만 정부, 조폭 두목 장례식에 경찰 400명 투입)

https://nowformosa.blogspot.com/2019/03/400-5.html


대만 조폭들의 매우 잔인한 살인, 폭행 등 각종 범죄 행각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찾을 수 있는데, 그런 대만의 조폭들이 최근에는 한국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넓히고 있다는 기사도 있었다.


(대만 조폭, 500만 명분의 마약 한국에 반입)

https://www.donga.com/news/article/all/20190216/94130455/1


대만의 별칭이 포르투갈어로 아름답다는 'Formosa'이고, 실제로 거주해 봐도 너무나도 매력적이고 또 아름다운 곳이 대만이었지만, 대만 역시 사람 사는 곳 어디나 마찬가지로 어두운 면 또한 갖고 있었던 셈이다.




다음 편 "25. 타이베이, 기억에 남는 단편들 (3-2)"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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