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여느 도시마다 나름 매력이 있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타이베이도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전편에 기술한 것과 같은 역사적 의미가 있는 공간은 아니었지만 나름 독특한 매력이 있는 공간을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기간 중 도시의 곳곳에서 마주치기도 했었다. 아래는 그때 찍었던 그 공간의 사진과 당시의 느낌을 정리한 내용이다.
■ 번잡한 상가 한복판에 있는 정원 같은 공간
서울의 용산 전자상가와 유사한 곳이 타이베이에도 있었다. 바로 '광화 상장(光華商場)'이라 불리는 곳인데, 마침 내가 타이베이에 근무하던 시기인 2008. 8월에 이 전자 상가의 6층짜리 새 건물이 완공되었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상가는 용산의 상가보다 더 작은 매장이 대부분이었는데따라서 내부는 당연히 꽤 혼잡했고 또 전자 부품 대국이라 불리는 대만의 수도에 있는 IT 상가인 만큼 건물 내부는 항상 수많은 인파로 붐볐다.
그런데 이 건물은 'ㅁ'자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그 중앙부 천장은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뚫려 있었다. 따라서 창공에서 내리쬐는 강한 태양빛이 1층 바닥에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모습을 볼 수도 있었는데, 그 1층 바닥을 깔끔한 목재로 마감을 하고 또 한쪽 구석에는 잎이 무성한 거목을 심어 놓아서 이 건물 1층 중앙의 공간은 마치 건물 안에 조성된 조용하고도 또한 아름다운공원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너무도 혼잡하고 정신없는 IT 상가 내부를 돌아다니다가도 이곳에만 오면 갑자기 순간 이동을 해서 타이베이의 조용한 공원에 와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건물 내부에 큰 나무가 자라고 있는 것을 상상하기 어려운 삭막한 용산 전자상가와 비교하면 매우 다른 모습이었는데, 이 건물 안의 작은 정원을 접할 때마다 대만인들의 심미적 감각이 꽤 남다르다는 것을 새삼 느끼곤 했었다.
사진) 광화 상장 6층에서 내려다본 1층 정원 모습, 잎이 꽤 무성한 거목과 그늘이 보인다 (2008. 8월).
사진) 1층 바로 옆에서 나무를 찍은 모습 (2008. 8월)
위 사진을 찍은 지 정확히 12년이 지난 2020년 8월 기준의 사진이 구글 거리뷰에 있던데, 반갑게도 이 나무는 사진 속 같은 장소에서 잘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12년이라는 짧지 않은 세월이 지나는 동안 나무가 너무도 잘 자라서 이제는 'ㅁ'자 형태의 중앙 공간이 마치 과거보다는 훨씬 더 좁아진 것과같이 느껴졌다. 자신의 주변이 온통 시멘트로만 둘러 싸여 있었음에도 이 나무가 매우 잘 자랐던 것이었다.
대만인의 종교를 보면 약 70%가 불교나 도교를신봉하고, 기독교를 신봉하는 사람은 총인구의 4%도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기독교도가 인구의 1% 수준도 안된다는 일본에 비하면 그나마 많은 수이긴 하지만, 전체 인구의 약 30%가 기독교인으로 집계되는 한국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필리핀이나 동티모르처럼 꽤 오랜 기간 기독교 국가의 지배를 받은 경우를 제외하면 아시아에서는 한국의 기독교인 인구 비중이 유난히 높다. 따라서 대만이 특이하게 기독교인 비중이 낮은 것이 아니라, 반대로 한국 기독교인 비중이 특이하게 높다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게 현상을 이해하는 길일 것 같다.
기독교를 신봉하는 인구가 적으니 당연히 타이베이의 교회 수는 서울과 비교하면 크게 적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역시 타이베이 거리에서도 때때로 교회를 볼 수가 있었는데 아래 사진에 보이는 교회도 시내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교회였다 이 교회는 동문(東門)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회였는데,건물 폭이 매우 좁아서 유독 눈에 띄는 모습이었다.
타이베이 외곽에는 별로 많지 않았지만, 도시의 중심부에는 행인들이 지나다니는 인도가 아래 사진에서도 보는 것처럼 회랑식으로 되어 있는 구간이 꽤 있었다. 한편 이런 회랑식 인도를 통해 걸어 다니면 비 오는 날 우산도 필요 없었고, 또 맑은 날에는 아열대 지방 타이베이의 너무도 뜨거운 태양도 피할 수 있어서 여러모로 매우 편리했었다.
사진) 타이베이 시내 거리 곳곳에 있는 회랑식 인도
이런 회랑식 인도는 서울의 거리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던 구조라 처음에는 그저 서울과 꽤 다르다고만 생각했었는데, 타이베이에 살면서 좀 더 자주 접하게 되다 보니, 아래, 위, 좌, 우 4면의 공간 중 오직 한 면만 트여 있는 이 회랑이라는 구조가 꽤 묘한 운치가 전해지는 그런 공간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오래된유럽의 대형 건축물 중에 아름다운 회랑으로 둘러싸인 건축물이 적지 않은데, 그러한 건축물의 회랑에서 느껴지던 감흥과 비슷한 느낌의 감흥을 타이베이 거리의 이 회랑들을 걸으면서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건축물 공간에서 묘한 심리적 감흥을 느끼는 경우는 나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신설 학문으로 부상하는 학문들 중에는 '신경 건축학(Neuroarchitecture)'이라는 학문도 있는데, 이 학문은 인간이 거주하고 있는 건축물의 공간과 디자인이 인간의 심리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사실을 전제로, 그 영향과그를 통해정서적 문제까지도 치유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라 한다.
결국 타이베이의 이러한 회랑식 인도 역시 타이베이인들의 심성 형성에 필경 일정 부분 기여를 하였을 것이다.
■ 남유럽의 햇살과 모습이 연상되는 호텔
타이베이에 오기 전,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의 도시들과 중남미 카리브해의섬나라들을 출장 등의 사유로 여러 차례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이런 지역은 아무래도 더운 지역에 위치해 있거나 또는 적도 가까이 있다 보니 당연히 태양이 매우 강열했다.
그런데 타이베이 또한 위도가 약 25도로 카리브해에 접해 있는 미국의 도시 마이애미의 위도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남쪽에 위치해 있다. 따라서 타이베이의 햇살도 그만큼이나 강열했는데, 주변 모습까지도너무도 이국적이라서 실제는 타이베이에 있었지만 마치 시간을 거슬러서 프랑스 남부나 또는 카리브해의 섬으로 돌아간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그런 공간이 있었다.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빅토리아(維多麗亞)'라는 이름의 호텔이 있던 공간이었다.
사진) 빅토리아 호텔 외관 및 테라스 모습 (2008. 11월).
온통 붉은색 석재로 마감된 이 호텔은 도심에 있는 최고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비교적 합리적인 가격에 상당히 깔끔한 시설이었고 또 무엇보다 법인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호텔이라 출장자가 오면 이곳에서 숙박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출장자들이 그렇게 자주 숙박을 하다 보니 법인에서 근무했던 나도 출장자들 만나러 자주 이곳을 방문할 수밖에 없었다.
이 호텔에는 또한 건물 외관과 테라스만큼 아름다운 공간이 실내에도 있었는데 바로 아래 사진에 보이는 곳이다. 1층에 있는 프런트 데스크 앞에 있던 공간인데, 사진 우측 파란색 문이 있는 곳은 공중전화가 설치된 곳이었고 정면에 보이는 문을 열고 나가면 찬란한 햇살이 가득한 테라스가 있었다.
사진) 빅토리아 호텔 테라스 출입구 근처 (2008. 11월)
그런데 사실 뭐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는 공간이었지만, 이 공간을 보면 공중전화 박스의 파란색과 실내로 들어오는 긴 햇살 또 그 햇살로 인한 그늘이 꽤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아름다운 한 폭의 정물화를 보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했었다.
어느 직장이나 마찬가지겠지만, 대만 법인에서 근무할 때도 일하다 보면 열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제는 담배를 끊은 지 10년도 넘었지만 당시에는 담배를 피웠는데,그렇게 열 받을 때면 곧바로 담뱃갑 챙겨서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와서 건물 뒤편에 있던 광장 한 구석에서 하얀 담배 연기를 연신 내뿜으면서 뻑~뻑 담배를 피우고는 했었다. 그러면 열이 좀 식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래 사진에 보이는 광장이 그 당시 그렇게 담배를 피우던 공간이다.
사진) 회사 건물 뒤편의 조용한 광장 (2007. 6월).
이 광장이 열을 식히기에 꽤 좋았던 이유는, 일단 이 공간이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멋진 대리석과 가로등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공간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사람이 없었다는 점이다. 이 넓은 공간에서 담배 피울생각을 했을 사람이나 말고도 적어도 한두 명은 더 있을 수도 있었을 텐데와 보면 신기하게도언제나 이 광장에 서 있는 사람은 나 혼자였다.
왜 유독 이 공간만 그렇게 항상 사람이 없었는지는 지금도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그런 덕분에 전쟁터처럼 정신없는 사무실에서 나와 잠시나마 한적하고 조용한 공간의 정막을 나 홀로 온전히 즐기며 열을 식힌 후 다시 사무실로 올라갈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