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18. 타이베이 출근길 걸어서 3km
베이징, 광저우에서 그랬던 것처럼 타이베이에서도 집에서 회사까지 매일 걸어서 출근했다. 출근길 거리는 대략 3km 정도였는데 한참 무더운 한여름에도 또 비가 와도 변함없이 걸어서 출근했다.
게다가 이전 근무지 베이징과 광저우에서는 저녁에 퇴근할 때는 승용차를 이용했던 것과 달리 타이베이에서는 출근뿐 아니라 퇴근할 때도 걸어서 집으로 갔다. 회사 근처에서 술 한잔 하고 좀 늦게 집에 갈 때도 마찬가지로 걸어서 집으로 갔다. 대만 경우는 중국 대비 치안이 상대적으로 좋아 치안 문제에 대한 걱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아침저녁 같은 길을 오고 가다 보니 아침에 마주친 사람을 저녁에 다시 마주치는 경우도 있었는데, 서로 무슨 인사를 나눈 것은 아니었고, 민족과 언어도 역시 달랐지만 그래도 나름 꽤 친근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사실 출근길에 마주치는 타이베이의 주택과 건물을 보면 대체적으로 낡고 오래된 것들이 많아 외관상 그다지 깔끔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대만인들이 청결을 신경 쓰지 않아서 그랬던 것은 결코 아니었고, 보편적으로 대만인의 성향이 외관이나 외모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꽤 검소한 성향이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았다.
같은 중국 남부 지역 출신의 중국인들이 거주하는 곳이지만 영국 통치를 받았던 홍콩이 화려함의 상징이었다면 일본의 통치를 받은 대만은 검소함이 흠씬 느껴지는 곳이었는데 왜 그러한 차이가 만들어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외관상 낡고 허름해 보이는 주택도 실제 내부는 꽤 깔끔한 경우가 많다고 했다.
하지만 사실 출근길 거리에서 마주치는 그런 허름한 주택들 모습이 내게는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졌었다. 80~90년대 서울의 오래된 주택가가 꼭 그런 모습이었는데 오랜만에 그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은 향수를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응답하라 1988'에 나오는 것과 같은 예전 서울의 주택가 모습 말이다.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서 2007~8년 약 2년간 매일 걸었던 타이베이의 그 아침 출근길 모습을 집에서부터 걸어가던 그 순서대로 글로 옮긴다.
사진) 2007~8년 타이베이 거리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주택 모습. 출근길 주변의 주택 모습이 꼭 이런 모습이었고 이런 주택들 사이 골목길로 걸어서 출근하곤 했었다.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서 1층으로 내려가면 아파트 단지의 중앙에 있는 꽤 아름다운 정원이 가장 먼저 출근길을 반겨 주었다. 이 정원 안에는 그리스 신전의 기둥들과 같은 멋진 모습의 기둥으로 꾸며진 회랑이 있었는데 이 회랑을 따라서 걸어가면 단지 출입구 겸 경비실이 나왔다.
사진) 아파트 단지 중앙 정원 (2007. 4월)과, 정원 주변의 회랑과 경비실 (2007. 7월)
경비실을 벗어나면 곧바로 '싱윈지에(星雲街)'라는 거리가 나오는데, 이 거리에는 아래 사진에서도 볼 수 있는 것처럼 열대 나무가 조경수로 심어져 있었다. 그런데 열대 나무가 가로수로 자라고 있는 것이 신기해 나무를 한번 만져봤더니 그 나무껍질이 얼마나 단단한지 마치 돌덩어리를 만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열대 나무 중에는 돌덩이처럼 꽤 단단한 나무들이 있다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는데 타이베이에서 직접 체험했던 셈이다.
사진) 아파트 출입구 주변 거리의 열대 나무 (2007. 10월)
이 싱원지에 거리를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면 '캉닝(康寧)' 초등학교가 있었다. 이 동네에 같이 살던 법인 화교분 직원 자녀도 이 학교에 다니고 있어 운동회 때 함께 구경가기도 했던 그런 학교다.
사진) 캉닝 초등학교 운동장. 사진 중앙이 내가 거주하던 아파트, 우측 낮은 건물이 학교 교사다. (2008. 10월)
(캉닝 초등학교 정문 거리뷰)
초등학교를 지나 100여 미터쯤 더 걸어가면 건물과 건물의 사이 빈 공간에 끼어있는 꽤 작고 앙증맞은 초미니 공원이 보였다. 아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폭이 불과 2m도 안돼 사실 공원이라고 부를 수가 있는지조차 다소 헛갈리는 공간이었는데 어쨌든 내부를 꽤 정성스럽게 구역별로 나눠 각각 다른 화초들로 심어 놓았고 또 그 주변은 깔끔한 목재 데크로 만든 벽으로 둘러져 있었다.
누가, 무슨 용도로, 왜 만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이 공간을 볼 때마다 대만인들의 독특하고 섬세한 미적 감성을 새삼 느낄 수 있었는데, 최근 구글 거리뷰로 다시 확인해 보니 이후에 철거됐는지 거리뷰에서 찾을 수가 없었다. 꽤 묘한 감흥을 느낄 수 있었던 공간인데 사라져 버린 것이 안타깝다.
사진) 싱윈지에 거리 건물과 건물 사이 공간에 있던 초미니 공원. (2008. 8월)
더 내려가면 중고등학교가 3개나 몰려 있는 지역이 나온다. 대만 중고생들도 한국에서처럼 교복을 입고 다녔는데 내가 출근하는 시간이 학생들의 등교 시간과 겹쳤는지 이 거리를 지나갈 때는 항상 교복을 입은 수많은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걷곤 했었다.
또 좀 늦은 시간에 출근할 때는 지각을 면하기 위해서 남녀 학생 구분 없이 모두 기를 쓰고 학교로 뛰어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는데, 그러한 모습을 볼 때는 너무도 오래전에 같은 이유로 학교를 향해 뛰어가던 내 모습도 떠오르곤 했었다. 너무 오래 잊고 있던 사실이지만 내게도 그런 시절이 분명 있었다....
그런데 재미있었던 것은 대만의 중고등학교에서도 과거의 우리와 비슷하게 등교시간 교문 앞에는 선생님과 완장을 찬 학생들이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한국에서 한 때 그랬던 것처럼, 선도부가 교문에서 등교하는 학생들의 복장 등을 검사하는 것 같았는데 한국의 학교에서는 이제 사라진 관습이지만 2007~8년 당시 대만에서는 여전히 볼 수 있던 모습이었다.
또 등교 시간이 막 지나서 이 길을 걷다 보면 벌을 서고 있는 건지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만 학교 담장 너머로 여러 명의 학생들이 뭔가 알 수 없는 구호를 매우 큰 소리로 반복해서 복창하는 것도 들을 수가 있었다. 아마 지각생들이나 교문 통과 시 지적받은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기 전에 별도로 모여 벌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선도부가 교문 앞에 나와 서 있거나, 지각 등으로 벌을 받는 모습들이 예전 한국의 학교 모습과 너무 흡사해 의외였는데 대만, 한국 모두 일본의 식민 통치를 받은 적이 있는 바, 혹 그 시절 일본이 두 나라에 공통적으로 남긴 흔적은 아닌지 모르겠다.
사진) 출근길에 있는 '원더(文德)'라는 여자 고등학교 담. 이 길을 걸을 때 때로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담 너머에서 다수의 여고생들이 고래고래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것이 들리기도 했었다. (2007. 4월)
계속 더 걸어가면 3~4층 정도 되는 그다지 높지 않은 빌라 같은 주택들이 여러 채가 밀집되어 있는 거리로 이어졌는데 이곳에서는 12~13살쯤 되어 보이는 소년과 중년의 여인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을 거의 매일 볼 수가 있었다. 아마도 학교 통학 버스를 기다리는 학생과 그 학생을 배웅하려는 어머니 같았는데, 아주 어린 나이도 아닌 학생이 버스 기다리면서 항상 하도 정신없게 이리저리 왔다갔다해서 출근길 기억에 남아있었던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루는 그날도 변함없이 그 학생과 어머니의 앞길을 지나가는데, 그 학생이 나를 보더니 갑자기 막 뭐라 하면서 인상을 쓰고 달려드는 것이었다. 나는 좀 당황해서 급하게 뒤로 피했는데, 근처에 있던 그 학생의 어머니가 그 장면을 보고서 황급히 다가오더니 학생을 붙잡으며 "아이가 정상이 아니니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하며 연신 내게 죄송하다고 했다.
한국에서도 보통의 아이와는 다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님을 종종 봤지만, 타이베이에서 본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는데, 전 세계 어디를 가든 어머님들의 마음은 모두 한결같은 것 같았다. 제대로 통제가 안 되는 아이가 한두 번 그런 행동을 한 것도 아니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자신의 아이가 정상이 아니라고 반복적으로 고백해야 했을 어머님의 쓰린 심정은 정말 그러한 아픔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헤아리기가 어려울 것 같다.
(출근길에 마주치던 아이와 어머님이 서 있던 거리)
이 주택가를 지나면 작은 시장 같은 공간이 있었다. 출근할 때는 시간 여유가 없어서 그 시장 안을 구경하지 못했지만, 퇴근할 때는 이따금 시장 구석구석을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구경을 하기도 했었는데, 시장 모습이 마치 90년대 한국의 정겨운 시골 시장을 다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단, 한 가지 한국과 좀 다른 점이 있었다면, 판매하는 물건 중에는 유독 육류가 많았다는 것인데, 중국과 대만 음식에 육류가 많이 사용되다 보니 그랬을 것이다. 지금도 이 시장 모습이 눈에 선한데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그런 공간이었다.
시장을 지나 횡단보도를 건너면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과 같은 흰색 건물의 '네이후 스포츠 센터'가 보인다. 이제 이 거리부터는 오래된 주택가에서 벗어나 신축 건물이 꽤 많은 깔끔한 오피스 지역이 시작됐다.
'네이후 스포츠 센터'는 11층짜리의 건물인데 내부에 실내 수영장도 있는 등 전 층이 모두 다양한 스포츠 시설로 가득 찬 꽤 큰 스포츠 센터였다. 주말에는 부부가 아이들과 함께 가족 단위로 이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었다. 이런 시설을 보면서 대만인의 삶의 수준이 역시 꽤 높다는 것도 느낄 수가 있었다.
사진) 우측에 보이는 하얀색 건물이 네이후 스포츠 센터 (2008. 5월). 법인에서 도보로 10여분 거리에 있었다.
이 스포츠 센터 건물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걸으면 이제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멀리서 법인이 있는 건물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건물이 Liberty Times Square라고 불리던 건물인데, 법인은 이 건물 10층에 있었다.
사진) Liberty Times Square 건물 모습 각각 2007. 6월, 2008. 10월, 2007. 7월에 찍은 사진.
법인이 있던 이 지역은 '네이후 과학원구(內湖科學園區)'라 불리는 곳이었는데, 이곳에는 내가 근무하던 대만 법인뿐만 아니라, Compal, BenQ 같은 대만의 전자 업체나, 방송사 TVB, 언론사 Liberty Times 같은 유명한 대만 기업들이 다수 위치하고 있었다.
법인 건물 바로 앞에는 꽃시장도 있었는데, 시장 규모가 꽤 커서 이곳에 가면 아열대 지방 대만의 온갖 다양한 화초도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최근에 구글 거리뷰로 확인해 보니 꽃시장은 철거되고 광장으로 변해 있었다.
사진) 법인 바로 옆에 있던 꽃 시장 모습. 각각 2008. 3월, 2008. 10월에 찍은 사진.
(꽃 시장이 헐리고 광장으로 변한 모습)
https://goo.gl/maps/n4KQqrp74TQHSMj28
법인 사무실은 '루이광루(瑞光路)'라는 거리에 있었다. 이 거리 이름 '루이광'은 한국어로 '서광(瑞光)이 비친다'라고 말할 때의 바로 그 서광이다. 그런데 한글로 '루이광루'라고 적었지만, 사실 이 한자의 첫 글자인 중국어 '루'의 발음은 한글에는 없는 발음으로 한국인이 발음하기는 꽤 어려워서 택시 타고 법인으로 갈 때는 기사가 내 발음을 못 알아듣는 경우가 적지 않아 꽤 고생을 하기도 했다. 한글의 '루', '후', '수' 세 발음이 한꺼번에 섞여 있는 것 같은 그런 발음이다.
('瑞'자의 중국어 발음)
(법인 앞 '루이광루' 거리 모습)
※ 거리뷰 오른쪽에 보이는 건물이 법인이 있던 건물
베이징의 지하철 노선이 더 늘어나고 훨씬 더 보편화되면서 요즘은 꽤 바뀌었겠지만, 2005~6년에 베이징에서 아침에 걸어서 출근할 때는 내 주변은 온통 자전거 천지였다.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전거로 출근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베이징의 출근길이 자전거로 가득했다면 이제 타이베이의 출근길은 오토바이로 가득해서 출근길 내내 내 주변은 온통 오토바이 천지였다. 타이베이에서는 그만큼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는 말이다.
남자는 말할 것도 없고 꽤 짧은 치마를 입은 직장 여성들도 치마는 전혀 개의치 않고 당당하게 오토바이 타고 출근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그렇지만 타이베이 역시 이후 지하철 노선이 대폭 확장되면서 이제는 2007~8년 그 시절에 보던 것만큼 수많은 오토바이는 더 이상 출근길에서 볼 수 없게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타이베이의 오토바이 행렬)
한편 대만과 중국에서는 오토바이를 '모투어처(摩托車)'나 '지처(機車)'로 원래 영어단어와 뜻 또는 발음에서 나름 꽤 비슷하게 번역해서 부르는 반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원래 영어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소 엉뚱한 단어인 '오토바이'라 부르게 되었는지 궁금했는데, 알고 보니 이것 역시 일본식 영어인 'オートバイ(오토바이)'에서 온 것이라 한다.
팬티를 '빤스'라 하고, TV를 '테레비'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일본식 엉터리 영어였던 셈이다.
2007~8년 약 2년여간, 아침에 약 3~40여분 정도를 이런 같은 거리의 모습을 매일 반복적으로 보며 걸어 출근했다. 또 비록 잠깐 법인에 머물더라도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일단 법인에는 항상 출근했던 바 출장을 빼면 1년 365일 그렇게 같은 이 길을 걸어서 출근했던 셈이다.
그렇게 계속 걷고 또 걸었던 이유는 오직 건강만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다. 그보다는 내가 주재하고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들 즉 대만인들이 사는 공간과 삶의 현장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어서 그렇게 걸었던 것이었다.
그토록 집착하고 매달렸던 대만에서의 법인 업무는 이제 다 잊어버렸고 아무런 관심도 없다. 그렇지만 대만에 체류하던 그 시절 뜨거운 남국의 태양 아래 매일 아침 걸으며 느꼈던 타이베이 거리의 모습과 마주치던 대만인들에 대한 선명한 기억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시절 나의 눈에 담겼던 그런 모습들이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제는 더욱 많이 그립다.
한때 유행했던 말이지만, '무엇이 중헌디?'라고 묻는다면, 일보다는 내가 살던 세상을 그렇게 느끼면서 살았던 시간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다 지나고 나서야만 할 수 있는 말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