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의 인상적인 공간 (3-1)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6편 Taipei-19)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aipei



19. 타이베이의 인상적인 공간 (3-1)


2007~8년 타이베이에 약 2년간 거주하던 시절 마주쳤던 인상적이거나 아름다운 도시 공간의 모습을 그때 찍었던 사진들과 함께 글로 올린다. 미리 알고 의도적으로 찾아간 곳이라기보다는 대부분 거리를 걷다 우연히 마주친 그러한 공간들이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대만의 과거 역사와 깊게 관련된 나름 각별한 사연이 있는 공간들도 있었다.




[ 일본이 남긴 건축물 ]


타이베이 시내를 걷다 보면 대만이 과거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인 약 100여 년 전에 건축된 오래된 일본풍 건물들을 타이베이 거리 도처에서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서울에도 1925년 완공된 '서울역 구청사'나, 1928년 완공된 용산 '구 철도병원'처럼 일제 강점기 일본인에 의해 건축된 건물들이 여전히 일부 남아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일제의 잔재라는 이유로 1996년 철거된 중앙청(과거 조선 총독부 건물)처럼 의도적으로 철거시켜 버린 건물도 있고 또 재개발 등으로 사라진 건물도 꽤 많았다.


하지만 타이베이의 경우는 좀 달랐다.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음에도 일본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거의 없는 대만인의 특성 때문인지, 타이베이에는 일본 통치 시기에 건축된 꽤 오래된 일본풍 건축물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솔직히 식민 지배라는 부정적 역사적 사실을 논외로 하고 건물 그 자체만 보고 평가한다면 일본이 건축한 이런 건물 대부분은 꽤 많은 정성과 공을 들여서 만들어진 매우 아름답고 운치 있는 건물로 보였다. 바로 아래의 건물들이 그러한 건물들이다.



■ 대만 총통부 (1919년 건축)


우선 한국의 대통령에 해당하는 대만 총통의 집무실도 과거 일본의 대만 총독들이 사용하던 그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었다. 과거 일본의 대만 총독부 건물이 현재 대만의 총통 집무실로 사용되고 있는 것인데, 이 건물이 1919년 완공된 건물이라고 하니 주권이 일본에서 대만으로 넘어갔음에도 일제 강점기부터 100년 이상이나 같은 건물이 대만의 최고 권력기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아래의 사진이 바로 그 총통부 건물의 사진이다. 그런데 이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그러한 문구에 대한 기억이 없었는데 나중에 다시 보니 건물 중앙의 탑에는 '台灣加入聯合國', 즉 '대만 UN 가입'이라는 문구가 기록된 것이 보였다. 중국의 UN 가입과 동시에 UN에서 축출당한 대만의 아프고 쓰라린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그런 문구인 것 같다.


사진) 현재 대만 총통 관저 (2007. 12월).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K4xVcq5qBRVLEFZ47



■ 대만 대학교 병원 (1912년 건축)


타이베이에는 대만 최고 명문인 '대만 대학교' 병원이 있다. 이 병원은 '중샨난루(中山南路)'라는 거리를 기준으로 서쪽 구역과 동쪽 구역으로 분할되어 있는데 서쪽 구역은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 건축되었던 병원이고, 동쪽은 일본이 패전으로 대만에서 철수한 이후 1991년 완공된 병원이다.


바로 이 서쪽 구역에 꽤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이 하나 있는데, '곤도주로(近藤十郎)'라는 일본인이 설계를 해서 1912년에 완공된 건물이다.


(1912년 건축된 대만 대학 병원 서쪽 구역 건물)

https://www.travel.taipei/ko/attraction/details/1140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hh2usqyUCpvkHAQD9


아쉽지만 서쪽 구역의 이 건물을 찍은 사진들은 분실했고, 최근에 건축된 동쪽 구역의 '국립 대만 대학 의학원'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출입구 인근 사진만 아래와 같이 남아 있다. 서쪽 구역 건물만큼은 아니지만 동쪽 구역의 이 건물 또한 회랑식 구조가 나름 꽤 아름다웠다.


사진) 대만대 병원 동쪽 구역 출입구 사진 (2007. 12월).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Eizy9B6WnUbnukWj9



■ 화산 1914 (1914년 건축)


일제 강점기인 1914년에 조성된 양조장 단지가 현재는 그 용도가 완전히 바뀌어 타이베이의 유명 문화 예술 공간으로 변한 곳도 있었다. 어찌 보면 과거 공장이 다수 밀집해 있던 서울 성수동 거리가 카페와 문화가 가득한 공간으로 바뀌어 가는 것과 유사한 경우인 것 같은데, '화산 1914 문화 창의 산업원구(華山1914文化創意產業園區)'라는 지역이 바로 그곳이다.


이 단지는 1987년 양조장이 시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한때 철거가 검토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예술인들이 하나 둘 이곳으로 몰려들면서 이 구역을 보존하는 것으로 계획안이 변경되었고, 결국 오늘날 보는 것처럼 아름다운 문화 예술 공간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건물도 그 단지의 건물 중 하나인데, 꽤 독특한 모습이라 길을 걷다 우연히 찍었던 것이다. 이 사진 찍을 당시에는 이곳이 과거에 양조장이었고 이제는 유명한 문화 예술 공간이 되었다는 것 모두를 전혀 몰랐었다. 그저 건물이 오래되어 보이고 아울러 꽤 특이한 모습이라 찍었을 뿐이었다.


사진) 화산 1914 단지 내 건물 (2007. 12월).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s1ifTnYQVvrHbqB56


(화산 1914 소개 블로그 및 역사)

1. https://blog.naver.com/i-wifi/220578453956

2. http://blog.naver.com/8302yang/221413674122

3. https://www.huashan1914.com/w/huashan1914_en/History



■ 대만 감찰원 (1915년 건축)


아래 건물은 현재 대만의 감찰원(監察院)이란 정부기관이 사용하는 건물이다. 이 건물 역시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 일본인이 설계한 건물로 1915년 완공되었다. 건물의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전반적인 느낌이 이제는 철거된 서울의 중앙청(과거 조선 총독부)과 꽤 유사한 느낌이 드는 것 같은 건물이다.


대만의 감찰원은 한국의 감사원과 유사한 기관이다. 하지만 입법, 사법, 행정 등 3권 분립 구조를 가지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대만은 감사와, 인사가 추가로 더 분리되어 있는 5권 분립 구조를 채택하고 있는 국가다. 따라서 대만 감찰원은 기존의 3권과는 분리된 별개의 독립적 기관으로서 한국의 감사원보다는 그 위상이 좀 더 높은 것 같다.


(대만의 5권 분립 관련 내용)

https://namu.wiki/w/%EC%98%A4%EA%B6%8C%EB%B6%84%EB%A6%BD


아래 사진도 역시 감찰원 건물인지 모르고 찍은 사진이다. 길을 걷다 보니 특이하고 아름다운 건물이 있어서 찍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런 역사가 있는 감찰원 건물이었다.


사진) 대만 감찰원 건물 (2007. 12월).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87aWCtbtHqcx7MCp9



■ 푸타이지에 양로우 (1910년 건축)


'푸타이지에 양로루(Futai Street Mansion)'라는 좀 긴 이름을 가진 건물도 있었다. 이 건물이 소재하고 있는 거리 이름이 현재는 '앤핑(延平)'으로 바뀌어 있지만, 과거에는 '푸타이지에(撫臺街)'였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 한다. 뒷부분의 '양로우(洋樓)'는 '서양식 건물'을 의미하는 단어인 바, 결국 이 건축물의 이름은 '푸타이 거리의 서양식 건물'이라는 뜻이다.


서울 덕수궁 석조전과 같은 해인 1910년에 완공된 건물로 110년이나 된 오래된 건물이다. 이 건물을 찍은 사진 역시 아쉽게도 분실했지만 아래의 타이베이 사이트에 접속하면 언제든지 그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모습을 다시 볼 수 있다.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 일본의 한 건설회사 사무실로 사용되던 건물이었다 한다.


( '푸타이지에 양로우' 모습 )

https://www.travel.taipei/ko/attraction/details/1186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Hjrg2XaQBksBNoaf9



■ 베이먼 요우쥐 (1930년 건축)


'베이먼 요우쥐(北門郵局, Beimen Post Office)'는 '북문 우체국'이라는 의미다. 청나라가 건축한 북문의 바로 앞에 있는 건물인데 역시 일본이 대만을 통치하던 1930년도에 완공된 건물이다. 이미 90년이나 된 건물이지만 아직 실제 우편 업무가 이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한다. 마찬가지로 타이베이 정부 사이트에 접속하면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베이먼 요우쥐' 모습 )

https://www.travel.taipei/ko/media/audio-guide/details/330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VECgUCQfEMkT5KJ66


이 글을 쓰면서 검색해보니 일제 강점기 일본인들이 건축한 타이베이의 건축물 리스트가 사진과 함께 게재된 사이트도 있던데 참고로 주소를 아래와 같이 링크한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건축한 타이베이 건축물)

https://www.4corners7seas.com/taipei-japan-empire-of-the-sun/



일본풍 주택


타이베이에는 일본이 건축한 대형 건축물만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래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오래전 모습 그대로 방치된 폐가와 같은 일본풍 주택들 또한 타이베이 곳곳에서 너무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사진) 타이베이의 낡고 오래된 일본풍 주택들 모습.


서울에서 이런 폐가들은 바로 재건축되거나 재개발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타이베이는 인구 밀도가 세계 7위 km2 당 15,200명으로, 세계 6위 16,700명의 서울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을 만큼 매우 높은 실정임에도 사람이 거주하지도 않는 폐가 상태의 이러한 빈집들이 이상하게도 시내 곳곳에 방치된 채 남아 있었다.


(일구 밀도 상위 125개 도시)

http://www.citymayors.com/statistics/largest-cities-density-125.html


그런데 타이베이 거리를 거닐다 우연히 이런 일본풍 건물과 마주치게 되면 왠지 뭔가 묘한 감정이 들기도 했었다. 사실 타이베이만큼 다수가 남아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서울에도 과거 일본군 사령부가 있던 용산 같은 곳에는 간혹 오래된 일본풍 주택들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먼 서울 용산에서 봤던 바로 그 느낌과 너무도 흡사한 일본풍 주택들을 이역만리 아열대 지방 타이베이에까지 와서도 또 보게 되니 기분이 좀 묘했던 것이었다.


뭐랄까, "아 대만도 우리처럼 일본에게 당했던 아픈 역사가 있구나"는 하는 생각이 새삼 들기도 했고, 또는 일본인들이 2차 대전 기간 참 멀리까지도 와서 여기저기 많은 흔적을 뿌려 놓고 갔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진) 서울 용산 삼각지 인근에 있던 오래된 일본풍의 폐가 (2015. 1월). 타이베이에서 보던 일본풍 주택과 느낌이 꽤 흡사했다. 2015년까지도 이 주택은 남아 있었는데 최근에 확인해 보니 자리에는 오피스텔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그 사이에 이 주택도 철거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이역만리 타이베이에까지 와서 주택을 짓고 하나의 가정을 꾸리고 살았었을 일본인들은 이제는 모두 사라졌다. 하지만 오랜 기간 그들의 숨결이 오고 갔을 그들 삶의 터전이었던 사진 속의 주택들은 아직도 뜨거운 아열대 지방 타이베이의 태양 아래 폐허처럼 남아서 오래전 그들의 역사를 나지막이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았다.


검색해 보니 일제 강점기 시절 건축된 타이베이와 서울의 일본풍 주택 사진을 모아 놓은 사이트도 있어 역시 참고로 링크한다.


(일제 강점기 건축된 타이베이의 일본풍 주택)

https://www.aristeon.net/2018/12/old-decayed-japanese-houses-in-taipei.html

(일제 강점기 건축된 서울의 일본풍 주택)

1. https://m.blog.naver.com/tazan00009/221228244540

2. https://news.joins.com/article/23412477

3. http://egloos.zum.com/nardoldol/v/2951991




[ 청나라가 남긴 건축물 ]


50년, 즉 반세기 간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기 직전에 대만은 청나라의 지배도 약 200여 년 받았다. 청나라가 대만섬을 통치하던 그 시절 타이베이 성벽 등이 완공되기도 했는데, 청나라풍 느낌이 완연한 그러한 건축물 또한 타이베이에는 일부 남아 있어서 주변의 일본풍 건물과는 묘하게 대비되는 특이한 분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과거 서울이 8개의 문이 있는 성벽들에 의해서 둘러싸여 있었듯이 타이베이도 한때 북문, 남문, 동문, 서문, 소남문 등 5개 대문들이 있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이러한 성벽과 대문들모두가 1800년대 말에 청나라에 의해서 건축되었다 한다.


그런데 서문과 타이베이 성벽은 일제 강점기 시절에 일본의 타이베이시 재개발 과정에서 완전히 소실되었고 또한 동문, 남문, 소남문은 장개석 정권에서 보수가 진행됐는데, 원래 청나라 시절 건축된 모습과는 너무도 다른 모습으로 보수가 되어 현재의 대문은 원형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고 한다.


결국 1800년대 청나라가 대만을 통치하던 시절 완공된 5 대문 중 오직 북문만 초기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셈인데, 하기 링크에서 그 사진을 봐도 청나라 초기 양식이 느껴지는 북문과, 이후 다른 양식으로 보수된 나머지 3개의 대문은 그 건축 양식이 확연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사실 타이베이 북문 규모는 그다지 크지 않아 중국 본토에 있는 자금성과 같은 거대한 성문을 보면서 느꼈던 그러한 웅장함은 느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온통 붉은색 석재로 마감된 북문을 보다 보면 청나라 초기 왕성한 정복 전쟁을 치르며 급속도로 영토를 확장해가던 강한 대륙 국가 청나라의 힘이 그 작은 건물에서조차도 온전히 느껴지는 것 같기도 했다.


(타이베이의 4대 성문)

※ 하단 'Gallery'를 클릭하면 4대 성문 사진이 있다.

https://en.wikipedia.org/wiki/Walls_of_Taipei

(북문 모습을 볼 수 있는 사이트)

https://blog.naver.com/sysbre/221627041658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n3pPA9US1tyYoMJe9


그 외에도 영화 속 장면처럼 1800년대 청나라 시절 느낌이 남아있는 것 같은 그런 독특하고 오래된 거리 역시 있었다. '보피랴오(剝皮寮)'와 '싼샤라오지에(三峽老街)'등이 바로 그런 곳인데, 두 거리 모두 청나라 때 만들어지고 번성했던 거리지만 이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적지 않은 개보수가 이루어져서 그 모습이 많이 변형되었다 한다. '보피랴오'와 '싼샤라오지에'는 모두 그 거리의 이름으로 고유 명사다.


이 거리 안으로 들어가 보면 현재와는 시간과 공간이 다른 수백 년 전 과거의 청나라나 일본 어느 마을로 순간적으로 이동해 간 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도 했다.


(보피랴오 소개 블로그)

https://blog.naver.com/mitin8688/221660554623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8HFNxjW8nrVVvnERA


(싼샤라오지에 소개 블로그)

http://blog.naver.com/socuripass/221773039815

(최근 거리뷰)

https://goo.gl/maps/5vSRyxpvGYQaLCFd6




[ 유럽인들남긴 건축물 ]


타이베이는 아니고 대만섬 북부와 남부의 건축물들이지만, 대만에는 1600년대 초반에 유럽인이 건축한 고풍스러운 유럽풍 요새도 남아있다. 청나라 통치 이전으로 역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대만섬 북부와 남부 일대가 한때 스페인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던 시절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남부 타이난에는 네덜란드의 Zeelandia라는 요새가, 북부 단수이 지역에는 스페인의 San Domingo란 요새가 있었는데, 그 요새 유적 일부가 4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San Domingo 요새는 네덜란드인에게 점령을 당한 이후에는 중국어로 '홍마오청(紅毛城)'이라고 불리기도 했는데, 이 말은 '붉은 머리털의 성'이라는 의미로 네덜란드인의 머리털이 백인을 처음 대하는 대만인들에게 붉은색에 가깝게 보였기 때문이라 한다.


홍마오청의 바로 옆에는 외벽이 역시 온통 붉은색 벽돌들로 치장된 또 다른 아름다운 건물이 있는데, 이 건물은 영국이 1891년 완공한 건물로 한때 영국 영사관으로 사용되었던 건물이다.


(타이난 요새 Zeelandia 모습)

https://blog.naver.com/koreakm1106/221211738590


(단수이 요새 San Domingo 및 영국 영사관 모습)

※ 스페인은 목재로 요새를 건축했으며, 현재 보는 붉은색 석재의 요새는 네덜란드가 다시 건축한 것이라 한다.

https://blog.naver.com/himawari_tw/221581302575


스페인의 San Domingo 요새는 네덜란드의 공격을 받아 점령되고 스페인은 대만섬에서 축출됐다. 물론 이 과정에서 적지 않은 스페인 병사가 희생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후 중국 본토에서 온 정성공 군대가 Zeelandia 요새를 공격할 때는 그 피해가 훨씬 더 심해서 무려 10배가 넘는 병력으로 공격하는 정성공 군의 9개월 간에 걸친 공격에 네덜란드는 총 병력 약 2천 명의 80%에 달하는 1,600여 명의 주검을 뒤로한 채 대만섬을 떠나야만 했었다.


승리한 정성공은 'Antonius Hambroek'라는 네덜란드의 민간인 선교사를 죽였을 뿐 아니라, 그 선교사의 어린 10대 딸을 자신의 첩으로 삼기까지 했다 한다. 대만에 남아 있던 다른 네덜란드 여인들 처지도 비슷해서 대다수가 정성공의 수하 병사들 첩으로 팔려갔다고 한다.


유럽인으로서는 끔찍한 이 사건이 'Antonius Hambroek, or the Siege of Formosa'라는 이름으로서 네덜란드인에 의해 출간되었고 이후 이 글이 유럽인에게 널리 전파되면서 비유럽인에 대한 유럽인의 인종적인 적개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정성공의 행태도 매우 비인간적으로 분명히 문제가 있지만, 엄밀히 따지고 보면 영국의 아편 장사, 원주민 학살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유럽인이 전 세계 과거 그들의 식민지에서 저지른 만행들 또한 묵과하기 어려운 잔혹하고 비인간적 행위였다는 것도 역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네널란드의 인도네시아인 학살)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3091201030132273002


그런데 이처럼 수많은 생명이 소실되고 또 비극적 사건들이 발생했던 장소가 바로 이 요새들이 있는 곳이었지만, 이미 수백 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이 흘러서 그런지 그런 비극적 사건 현장에 남아 있는 요새의 잔해를 보는 관광객들에게는 이제 그 잔해는 그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기억의 잔해로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았다....




대만 정부가 지정한 대만 전역의 유적지 리스트가 있는데, 나 역시 가보지 못한 곳이 많지만 참고로 링크한다.


(대만 정부 지정 대만 유적지 리스트)

https://view.boch.gov.tw/NationalHistorical/Default_en.aspx




다음 편 "20. 타이베이의 인상적인 공간 (3-2)"으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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