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유럽인의침략으로 무참하게 무너지기는 했지만, 원래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 인구는 당시 유럽 국가 전체 인구보다도 더 많았다는 분석도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은 유럽과의 전쟁에서 결국 패하고 정복당하게 되는데 인구도 더 많았던 그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무너질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총과 같은 우수한 무기를 갖고 있는 유럽인과의 무장력 차이에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큰 원인은 유럽인들이 그들과 함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져온 천연두와 같은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으로 원주민들이받은 피해가 워낙에 컸기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한다.
즉 유럽인에의해 유입된 천연두라는질병으로 100여 년간 남미 원주민 약 90%가 사망해서 기존 대비 인구가 10%로 줄었다는것이다. 재앙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 발생했던 셈인데 인구가 이렇게 급감을 했다면 원주민들은 유럽인들과의 전쟁에 신경 쓸 여력은 도무지 없었을 것이고 결국 전쟁의 결과는 불을 보듯 뻔했을것으로 보인다.
결국 유럽인들이 그렇게 의도했던 바는 결코 아니었겠지만 천연두 바이러스가 존재하지 않았던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에게는 그들이 가져온 천연두가 일종의 독한 생화학 무기와 같은 역할을 했고 그럼으로써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무력 정복하는데 결정적인 도움이 되었던 셈이다. 어찌 보면 최근 일부 국가가 탄저균 같은 세균을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기로 개발하는 것 같은 일이 역사상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그런데 최근의 코로나 상황을 보면 이번에는 유럽이 아니라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이는 바이러스가 전 세계로 이미 확산되어 수백만 명에 달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으며 또한 이 바이러스로 인해 인류는 경제, 문화, 보건, 일상생활까지 거의 전 분야에 걸쳐 매우 큰 시련과 변화를 겪고 있다.
하지만 세계 인구를 약 78억 명으로 본다면 코로나로 인한 사망자는 여전히 0.1%도 안 되는 상황으로 불과 이 정도의 수치에서도 전 세계가 이토록 큰 영향을 받고 있는 사실을 보면, 전체 인구의 90%가 천연두라는 질병으로 사라졌던 16세기 아메리카의 상황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지 충분히 짐작이 될 것 같다.
한국도 요즘 코로나 사태로 인해 부득이하게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 마스크 착용은 일상생활이 되었고, 건물의내부로 들어갈 때는 체온 확인을 받아야 하며, 때로는 신상 정보도 제출해야 한다. 또 곳곳에는 손 소독제가 놓여 있어 수시로 사용하기도 한다. 2009년에 신종 플루가 유행할 때 또한 2015년 메르스가 유행할 때는 그래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만큼 코로나 감염자가 많고 또 사망자 역시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신종 플루, 메르스, 코로나 등이 유행하기 이전이미 2003년에 전 세계를 강타했던 SARS와 관련해서는 한국은 이 질병에 별 영향을 받지 않았던 국가 중 하나로 간주된다. 그 이유로는 한국인이 즐겨서 먹는 김치 덕분이라는 이유가 제기되기도 했는데 그 주장의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어쨌든 유독 한국은 SARS 감염자가 극히 적었고 또 사망자는 아예 없었다.
한편 SARS가창궐하던 그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이 SARS가 중국 남부 지역에서 시작되었으며 또한 감염자의 상당수가 홍콩 등 중국 남부지역의 주민들이었기 때문에, 당시 전 세계적으로 인종 차별 수준에 달하는 동양인 특히 중국인에대한 기피 현상이 매우심했다. 코로나 발생 초기 중국인 등 동양인들이 전 세계적으로 기피와 모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과 동일한 현상이 당시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 SARS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2003년 공교롭게도 나는 Canada 법인에서 주재 근무하고 있었다. 법인에 있는 직원들이야 당연히 내가 유난히 SARS 환자가 적었던 한국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으니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법인 밖으로 나가서 마주치는 캐나다인들이야 내가 한국인인지 중국인인지 외모로는 전혀 판단할 수가없었을 것이고 또 구태여 판단하려고도 하지 않고 단순히 SARS가 창궐하는 동양에서 온 사람으로만 간주하곤 했었기 때문에 식당에 식사하러 들어가야 한다든가 할 때는 캐나다인들의 꽤 차갑고 따가운 시선을 감수해야 하기도 했었다.
물론 실제로는 당시 캐나다의 SARS 감염자가 251명이나 됐었고 그중 43명이나 사망했던 반면, 한국 경우 감염자는 불과 4명이었으며,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한마디로 Canada의 SARS 상황이 한국보다 훨씬 더 안 좋았던 것이 현실이었지만, 외모에서는 중국인과 구분이 안되니 어쩔 수 없이 그런 수모를 당하곤 했었던 것이다.
당시 홍콩을 포함한 중국의 SARS로 인한 피해는 수천 명에 달했던 감염자는 논외로 하더라도 사망자들 수만 600명이 넘었다 하니 한국과는 꽤 큰 차이가 있었고 그런 면에서 볼 때 캐나다인 입장에서는 사실 식당 같은 곳에서 중국인들을 경계해야 할 만한 이유가 나름 있었던 셈이었다.
지금도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시절 식당에 들어설 때, 특히 나이가 좀 있는 캐나다 백인들이 때로는 다분히 의도적으로 동양인인 내게 던지곤 했던 그 차디 찬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다.
2003년 SARS가 지나가자 2009년에는 또 다른 바이러스 질병인 신종 플루가 역시 전 세계적으로 유행했다. 그런데 이 질병은 SARS와 달리 북미 대륙에서 최초로 시작되어 전 세계로 전파되었기 때문에 해외에서 동양인이라고 냉대를 받는 일은 없었다. 그렇지만 2009년에는 나는 이미 캐나다 법인을 떠나서같은 동양인이 거주하는 홍콩 법인에서 근무 중이었으므로 이런 차이가 내게가져다주는 실질적 실익은 전혀 없었다.
홍콩 경우 이 신종플루로 인해 총 3만 명 이상이 감염되었고 그중 80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됐다. 299명이 사망했던 홍콩의 SARS 사태와 비교하면 치사율도 낮고 사망자 또한 상대적으로 경미하게 보인다. 하지만 홍콩이 유독 혹독하게 당했던 SARS에 대한 공포의 기억이 남아있어서 인지, 당시 홍콩에서 근무하면서 체험했던 홍콩인의 신종 플루에 대한 경계는 일반적인 예상을 훨씬 초과하는 수준이었다.
홍콩 최초 신종플루 감염자 사례로 확인된 멕시코인이 잠시 체류했었다는 이유로 어느 날 갑자기 홍콩의 호텔을 통째로 봉쇄해버린 것도 전 세계적으로 익히 알려진 그런 사례 중 하나였다. 당시 호텔에는 홍콩인뿐 아니라 미국, 일본, 한국 등 전 세계에서 온 사람들 포함 354명이나 되는 투숙객이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봉쇄 조치로 그들 모두가감금되었던 것이다.
마침 이 호텔은 법인에서 도보로 약 10분 정도의 꽤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한국인들도 감금되어 있어서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던 사건이라 출퇴근 시 이 호텔 근처까지 가서 현장 상황을 직접 구경해 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호텔 외부에는 경찰이 진입을 차단하고 있었고, 또 호텔 1층 로비 유리는 모두 종이로 가려져 있어 내부는 전혀 볼 수가 없었다. 결국 호텔 앞에 가 봐도 호텔 주변에 진 치고 있는 기자들과 경찰 외에는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
그런데 자국 국민이 갑자기 감금된 것에 대한 외국 정부의 항의가 이어지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당시 홍콩 행정 최고 책임자인 행정장관이갑작스러운 봉쇄 조치로야기된 감금 사태로 피해를 본 수백 명의 호텔 투숙객들에게 사과까지도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봉쇄는 해제되지가 않았고 결국 추가적인 감염자는 없다는 것이 최종 확인됐던1주일 후에야 마침내 투숙객들은 호텔에서풀려 나올 수 있었다. 그만큼 당시의 홍콩 정부는 SARS에 호되게 당했던 기억으로 신종 플루에 대해서도 초기 단계에서부터 매우 강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다소 과민하다 싶을 정도의 홍콩 정부 대응 조치에도 불구하고 홍콩의 신종 플루 감염 사례들은 마침내 확산되기 시작했고 이제 홍콩 곳곳의 건물 입구에는 체온을 측정하는 사람들이생겨서 체온이 정상 범위에있는 것으로 확인된 사람만 출입을 허용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에도 코로나가 확산하는 요즘에는 마트에 물건을 사러 갈 때꽤 흔하고 당연하게 보게 되는 모습이지만 2009년도 홍콩에근무하던 당시만 해도 홍콩에서 보던 그러한 해괴한 모습을 약 10여 년 뒤에 서울에서 또다시 보게 될 것이라는 것은 전혀 상상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결코 내 일은 아니고 남의 일처럼만 여겨지던 홍콩 신종 플루 사태가 마침내 내 일이 돼버리는 사건이 결국은 터졌다. 법인에 온 출장자가 방역 당국에 잡혀가는 사건이 발생했던 것이었다.
그는 감염자로 확인된 사람과 동일한 항공기를 타고 홍콩에 도착했고, 또 그의좌석이 그 감염자와 가까운 곳이었다는 이유로 방역 당국으로부터 격리 조치 통보를 받고서 그들이 보내온 구급차에실려서 잡혀가게 된 것이었다.
그 출장자가 있었던 사무실과 회의실에 대해서도 모두 소독 작업이 진행됐다. 하지만 왜인지는 기억이 명확하지 않은데 그 출장자가 일했던 사무실에 꽤 많은 다른 직원들이 함께 있었음에도 그 직원들이 그의 경우처럼 격리되지는 않았다.만일에 그들 모두가 격리됐다면 법인의 업무가 마비되는 등 사태는 더 심각했을 것인데 다행히 그러한 일까지는 없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도코로나 유행 이후 감염자와 접촉한 것이 확인이 되면 격리되는 것이 이제는 일상 생활화되어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현상이지만, 2009년 그 당시만 해도 질병때문에 사람이 그렇게 잡혀갈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봤고 그러한 상황에 꽤 당황했었다.
그 출장자가 잡혀 가던 2009년 그날을 다시 회상해 보면,점심을 먹고 사무실로 돌아온 직후 서비스 주재원으로부터갑작스러운 연락이 왔는데 며칠 전에 한국에서 온 출장자가신종 플루에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니 구급차에 태워서 보내라는 연락을 홍콩 방역 당국으로부터방금 막 받았다는 것이었다.
출장자가 수행해야 할 업무에 차질이 생기는 문제를 떠나서 법인의 홍콩인 직원도 아니고 홍콩의 물정이나 언어를 전혀 모르는 한국에서 온 출장자가 잡혀가게 되었다니 그 소식을 듣고 우리도 꽤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외에도 또 다른 문제도 있었는데 홍콩 방역 당국에서 한국어가 가능한 홍콩인까지 같이 그 출장자와 함께 보내달라는 협조 요청을 해 왔던 것이었다.
물론 홍콩 법인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홍콩인이 몇 명 있기는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에게 이미 신종 플루에 감염되었을지도 모르는 출장자와함께 다니면서 통역을 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SARS로 인한 피해를 다른 어느 국가보다 가장 심하게 받았던 기억이 남아있는 홍콩인에게는 더욱 그랬다.
하지만 출장자가 영어가 능통한 것도 아니어서 통역 없이는 도저히 일이 진행될 수가 없는 상황이었고, 결국 한국어가 가능한 법인 직원 중 한 명에게 어렵게 의사 타진을 했는데 다행히 그녀의 승낙을 받았다.
그런데 승낙을 하기는 했지만, 그녀가 승낙한다고 말하면서 보여주었던 다소 공포에 젖은 것 같았던 그 눈빛과 표정은 지금도 잊을 수 없을 만큼 강렬했었다. 요즘 코로나 사태로 우리도 역시 일부 겪게 되는 공포지만 SARS의기억이 있는 홍콩인들은 그만큼 신종 플루에도 그렇게나 깊은 공포심을 갖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방역 당국에서 코로나 확진자라는 통보를 받고서 너무 놀라 대성통곡하는 중국 여인의 모습이 담긴 아래 동영상을 보면 SARS를 혹독하게 치렀던 중국인들의 Trauma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상황을 좀 더 정확히 파악하고 또 본사에도 보고해야 했기 때문에 그 출장자가 근무하고 있던 건물로 향했다. 그 당시 법인 사무실은 홍콩섬 Wan Chai 지역의 Central Plaza 빌딩에 있었지만, 법인의 서비스와 물류 부문은 홍콩 북쪽 지역 신계 Kwai Chung의 MTL이라는 건물에 따로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건물로 가야 했었던 것이다.
MTL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리니 연락받은 그대로 구급차가 한 대 왔다. 그리고 뉴스에서 봤던 것처럼 흰색 방호복으로 완전히 중무장한 사람들이 차에서 나와 출장자를 기다리고 있었고, 출장자는 원래부터 유난히 하얀색이었던 얼굴이 더 하얗게 질린 채로멀리 떨어져서 내게 꾸벅 인사를 한 후에 밖으로 나가 그 구급차에 올라탔다. 그의 입장에서는 단지 홍콩에 잠시 출장 왔을 뿐인데, 도착해서 얼마 되지도 않아 갑자기 그렇게 격리 시설로 잡혀 가게 되는 신세가 되니 꽤 황당했을 것이다.
통역을 담당하기로 한 여직원도 그 출장자와 함께 구급차에 올라탔는데, 본사에서 온 그 출장자나 통역을 하기로 했던 홍콩인 직원 모두 20대의 젊은이로그러한 일을 당해보는 것은 아마 그때가 생애 처음이었을 것이다.따라서 그만큼 더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인장인 나를 포함해서 주변의 그 누구도 당시에는 그들에게 어떤 도움도 줄 수 없었고 그저 감염이 안됐기를 간절히바랄 수밖에 없었다. 코로나로 한국에서도 요즘 몇 만 명이 격리되어 있다고 하는데 그렇게 격리된다는 뉴스를 접하면 2009년 신종 플루 홍콩 유행 그 당시에 격리장소로 끌려가던 그 출장자와 통역 담당 여직원의 긴장되고 절박한 표정이 다시 떠오르기도 한다.
어쨌든 출장자는 그렇게 잡혀 갔고 이후 한동안은 격리되어 있었는데 다행히 감염되지는 않은 것으로 최종 확인이 돼서정해진 격리 기간을 마친 후 사무실로 무사하게 복귀했다. 아울러 너무도 고맙게도 별도로 보상을 하겠다고 했던 것도 아닌데, 감염되었을 가능성이 있는 출장자를 따라다니면서 통역하는 역할을 해 주었던 홍콩인 직원도 역시 아무런 탈 없이 무사히 돌아와 평상시처럼 근무를 시작했다.
사진) 출장자 통역을 담당했던 홍콩 법인 서비스 직원 모습. 사진 속 흰색 상의를 입고 있는 여성이 그 용감하고 고마운 직원인데, 이 사진은 2009년 홍콩 신종 플루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직전 빅토리아만 바다 위의 선박에서 서비스 부서 단합 대회를할 때 찍은 사진이다 (2009. 6월)
2003년에 SARS가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시절에는 캐나다 법인에서 근무하면서 SARS 본산지인 중국에서 온 중국인으로 오해받아 캐나다 백인들로부터 따갑고 차가운 눈총을 받으며 상점이나 식당을 다녀야 했었다.
또 2009년 북미에서 시작된 신종 플루가 유행할 시기에는 홍콩 법인에서근무하면서 홍콩의 신종 플루에 대한 경기에 가까운 대응을 목격했었고 결국에는 본사에서 출장 온 회사 동료가 격리 장소로 잡혀가는 모습까지도 옆에서 지켜봐야 했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돌아오니 이제는 2003년이나 2009년의 감염병과는 비교가 안될 정도로 전 세계적으로 훨씬 더 큰 파장과 피해를 몰고 온 코로나라는 강력한 전염병으로 인한 고통을 또다시 목격하고 있고 또 지인들도 잘 만나지 못할 정도로 나 스스로도 그 피해를 직접 겪고 있다.
13세기 유럽의 흑사병으로 유럽인 1억 명 이상이 사망했다 한다. 그 이후 16세기에는 그 유럽인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전파한 천연두 등의 질병으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 인구의 90%가 100여 년 만에 사라지는 천재지변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21세기에접어든 현시점에도 코로나라는 또 다른 바이러스성 질병으로 이미 100만 명도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음에도 사태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오히려 확산되는 중으로 전 세계는 또다시 공포와 혼돈에휩싸여 있다.
그런데 현재 당면하고 있는 이 코로나가 과연 종식될 수가 있을지도 의문이고 또한 전 세계를 공포에 빠뜨리는 마지막 전염병이 될 수 없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