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걷고 또 걷다, 결국....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17)

by SALT

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17. 홍콩에서 걷고 또 걷다, 결국....


좌측) 대만과 홍콩에서 약 6년간 신었던 샌들이 너무 낡아 버리기 직전 찍은 사진 (2013. 6월)

우측) 이 샌들을 신고 홍콩 이곳저곳 헤매고 다니던 시절의 샌들 모습 (2010. 5월)


글 서두부터 꽤 불결하고 낡아 보이는 신발 사진부터 올려 죄송한 마음이다. 이 샌들은 무더운 아열대 지방인 대만과 홍콩 법인에 근무할 때 신었던 샌들인데, 주중에는 당연히 이런 샌들을 신고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했었지만 주말에는 오전에 사무실에 출근하거나, 오후에 시내 매장을 돌아다닐 때도 시원한 맨발에 이 샌들을 신고 다녔다.


법인 업무 특성상 우리가 제품을 판매하고 있는 국가 Retail 매장에서 우리 제품들이 어떻게 전시되어 있고 또한 어떻게 팔리고 있는 지를 언제나 긴밀하게 파악해야만 했기 때문에 주말 이틀간은 Retail 매장들을 돌아다니는 것이 당시 일상 생활처럼 되어 있었다.


본사 경영진이 홍콩에 출장을 와도 법인 사무실에서 자료로 업무 보고를 받는 것 외에 항상 Retail 매장을 직접 방문해 법인 사업 현황을 현장에서 다시 확인하곤 했었다. 그만큼 판매가 이루어지는 현장으로서의 Retail 매장은 우리에게 중요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유로 서울 면적의 약 1.8 배 정도 되는 결코 작지 않은 홍콩이라는 도시의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Retail 매장들을 홍콩 법인 근무 5년 반 기간 하염없이 돌아다녀야 했었다.


그런데 그렇게 홍콩의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니다 보니 물론 업무적 이유에서 했던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관광객이나 또 홍콩에 거주하더라도 굳이 홍콩 곳곳을 돌아다녀야만 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로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홍콩 구석의 숨겨진 모습들도 참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경험이 홍콩이라는 도시와 홍콩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좀 더 실제 모습 그대로 이해하는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도 했던 것 같았다. 단언하지만 홍콩에서 태어나고 자란 홍콩인조차도 그렇게 홍콩의 구석구석을 이 잡듯이 헤집고 다닌 사람은 결코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Retail 거래선 사장과 미팅할 때 100여 개에 달하는 그 거래선의 홍콩 내 Retail 매장은 단 한 곳도 빼지 않고 모두 방문했었다 하니, 눈이 동그래져서 신기한 듯이 그가 날 바라보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기를 쓰고 Retail 매장을 돌아다닐 때 신었던 신발이 바로 위 사진 속에 보이는 저 낡은 샌들이다. 이 샌들은 대만 타이베이 거리를 걸을 때 어느 허름한 매장에서 꽤 저렴한 가격에 팔길래 그저 싼 맛에 구매했던 샌들이었다. 하지만 실제 신고 다녀 보니 매우 견고해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6년여간 매주말 이틀 내내 이 샌들을 신고서 많은 거리를 걸어 다녔어도 낡기는 했지만 훼손되거나 망가진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샌들 바닥 앞부분에 5개 발가락 자국이 움푹 파여 있는 것이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오랜 시간 신고 다녔어도 찢어지거나 망가진 곳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게다가 이 샌들은 매우 편해서 이 신발을 신고 다니면 피곤도 좀 덜했던 것 같았다. 한마디로 최적, 최고의 샌들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너무 낡아 보여 2013년 결국 이 샌들을 버릴 수밖에 없었는데, 이후에는 이 샌들만큼 편하고도 튼튼했던 샌들은 아직까지는 구할 수가 없었다. 이 샌들을 구매했던 대만의 가게나 샌들 브랜드라도 기억이 나면 인터넷 구매라도 다시 해 보고 싶은데, 두 가지 모두 기억이 나지 않으니 그것 역시 불가능한 실정이라 매우 아쉽다.


대만에서 약 2년 홍콩에서 약 4년 간, 이 샌들은 내 온몸의 무게를 자신의 등에 지고 뜨거운 태양이 이글거리는 아열대 도시 타이베이와 홍콩의 온갖 구석구석을 나와 함께 누볐던 셈이다. 따라서 어찌 보면 과거 그 시절 약 6년여간에 걸친 타향 땅에서의 내 인생의 증인이자 전우이기도 했던 셈인데 그렇게 가깝게 느끼게 되다 보니 혼이 없는 사물이었음에도 버리기 전 이 샌들과 헤어지는 것이 안타까워 저렇게 이별 기념 같은 사진까지도 찍었던 것이다.




전체 면적이 1,104 ㎢로서, 서울의 약 1.8 배가 조금 넘는 홍콩은 18개 구(區, District)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리고 B사, F사, S사, W사 등 홍콩의 쟁쟁한 Retail 유통들은 이 18개 구 곳곳에 매장을 두고 우리 같은 제조업체들이 서로 경쟁하듯이 그 유통들도 상호 치열한 경쟁을 하면서 판매를 하고 있었다.


(홍콩의 18개 구)

https://ko.wikipedia.org/wiki/%ED%99%8D%EC%BD%A9%EC%9D%98_%EA%B5%AC#/media/%ED%8C%8C%EC%9D%BC:Map_of_Hong_Kong_18_Districts_en.svg


이러한 유통 중에서 매출로 보면 B사가 가장 컸다. 하지만 B사는 대형 매장 위주로 영업을 해서 점포수는 30여 개로 그다지 많지 않았다. 반면 F사 경우는 단위당 매장 면적은 작았지만 꽤 많은 지역에 그 작은 매장들이 흩어져 있어 총 매장 수가 B사의 3배 이상인 약 100여 개 정도 됐었다. 그 외 S사와 W사도 당시 약 20~30개의 매장을 갖고 있었다.


사진) 본사 경영진 홍콩 Retail 매장 방문 시 모습. 좌측 F사 매장, 우측 B사 매장 (2010. 3월)


전술했던 바와 같이 주말 대부분의 시간은 이러한 매장들을 방문하는데 소비했는데, 사실 모든 매장들을 방문하기에는 물리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한계가 있었던 바, 판매량이 많은 핵심 지역의 매장만 반복해서 가게 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다 보니 매장 전체의 모습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그러던 중 언젠가 한 번 며칠 날을 잡아서 홍콩에 있는 주요 Retail 매장 전체를 한꺼번에 모두 다 돌아다녀 보고 그런 과정을 통해 파악하게 되는 각 유통의 지역별, 매장별 특성을 향후 전시 및 판매에 활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침 홍콩 부활절 연휴가 다가오자 그때 그런 계획을 집행하기로 했다.


참고로 중국에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이 휴일로 지정되어 있지가 않다. 유물론을 신봉하는 공산당이 지배하는 국가인 중국이 기독교를 상징하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공식적 휴일로 정하기는 매우 어색할 것이다. 그런데 1997년 홍콩 역시 영국으로부터 중국으로 반환되어 이제는 중국 영토의 일부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홍콩은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법정 공휴일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었다.


홍콩이 중국에 반환돼도 영국 식민지 시절 적용되었던 기존 체제를 한시적으로 50년간은 유지한다는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합의가 홍콩에는 적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특히 부활절 연휴가 홍콩에서는 1년 중 가장 긴 연휴였는데 바로 이때 3~4일간의 날짜를 잡아 핵심 4개 Retail 유통의 매장 전체를 한꺼번에 싹 다 돌아보기로 했다.


사실 나는 원래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베이징, 타이베이 근무 시에도 각각 5㎞, 3㎞를 매일 걸어서 법인에 출근했고 그 이전 서울에서 살던 시절에도 휴일에는 용산동, 후암동, 아현동, 충현동 등 이제는 변한 곳도 있지만 당시만 해도 꽤 오래되고 낡은 주택과 골목이 많았던 그러한 동네들을 자주 찾아가서 하염없이 걸어 다니곤 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걷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하루에 걷게 되는 거리도 꽤 길었을 뿐 아니라 걷는 속도도 매우 빨랐는데 나 자신은 그런 사실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동료들과 같이 걸으면서 너무 빠르다는 지적을 반복적으로 듣게 되다 보니 나중에는 나도 그 사실을 깨우치게 되었다.



어떤 매장에서 어떤 제품이 잘 팔리는지 특성을 알려면 그 매장이 위치한 동네의 환경이나 소득, 생활수준 등 주변 환경 여러 가지를 파악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그러한 정보는 차를 타고서 매장만 덜렁 방문해서는 충분히 얻기가 어려웠고 비교적 먼 곳에서부터 걸어서 해당 매장에 접근해 가면서 그 매장이 위치한 동네 환경 전체를 파악하다 보면 좀 더 명확하게 파악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A라는 매장이 부자들이 밀집되어 거주하는 서울 강남 최고가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데 그런 사실을 잘 모르고 최저가 제품만 골라 그 매장에 전시하고 있다면 그 매장에서의 매출이 늘어나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촌이라는 환경적 특성을 갖고 있는 이런 매장에는 반대로 가격이 좀 비싸더라도 성능이 보다 우수한 제품을 전시하는 것이 매출 확대에 보다 효과적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판단을 하려면 우선 그 매장이 위치한 곳 주변의 환경부터 먼저 파악해야 했던 것이다.


부활절 연휴 기간에 매장을 방문할 때도 매장들이 위치하고 있는 지역의 특성을 파악하기 위해서 해당 매장에서는 다소 먼 거리에 있는 전철역에서 내려서 그곳에서부터 매장까지 걸어서 가곤 했었다. 한편 그해 부활절 연휴는 총 4일인가 그랬는데 그 기간 주재원들도 하루에 한 명씩 번갈아 가며 나와 같이 다녀 보기로 했었다.


관리담당을 제외한 4명의 주재원들 모두와 4일 연속 함께 다니고 싶은 생각도 물론 굴뚝같았지만, 가족과 함께 있는 주재원들에게 휴일, 그것도 연휴에 그런 요청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라 처음에는 연휴 동안 매장을 같이 다니자는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법인장 혼자 긴 연휴 기간 매장을 돌아다니는 것이 다소 미안했던지 주재원들이 스스로 한 명씩 하루를 정해 같이 다니겠다고 했던 것이다.


그런데 연휴 기간에 매장을 다니면서 주재원들 걸음 속도에 맞춰서 걷다 보니 영 걷는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하루에 방문하기로 계획한 매장 수 달성에 차질이 생기기도 했는데,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장시간 동안 걷는 것을 주재원들이 너무 힘들어했다는 것이었다. 빨리, 오래 걷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었던 나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인데 주재원에게는 그렇게 많이 걷는 것이 결코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어쨌든 결국 4일간에 걸쳐서 200여 개에 달하는 Retail 매장 전체를 모두 다 방문하기로 했던 당초의 목표는 우여곡절 끝에 달성하기는 했다.


좀 우스운 발상이지만 만일 하루에 걷는 걸음 수, 걷는 속도 기준으로 회사가 직원들을 평가했다면 아마도 나는 분명히 이미 십여 년 전에 사장의 자리에 승진해 있었을 것이다....



법인 주재원들과 홍콩 매장을 돌아다닐 때는 오해로 인해서 문제들이 생기게 되는 경우는 전혀 없었다. 왜냐하비록 직책상으로는 내가 법인장으로 주재원들의 상급자였지만, 해외 법인에 주재원이 몇 명 되지도 않다 보니 서로 그러한 것을 그렇게 심하게 따지지도 않았고 주재원들이 뭔가 애로 사항이 있으면 별 망설임 없이 바로바로 그런 상황을 내게 말하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즉, 예를 들어 매장을 보러 함께 돌아다니다 내 걸음이 너무 빨라 따라오기 힘들 때는 잠시 쉬자거나 아니면 중단하자는 의사를 즉시 표명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법인의 주재원들이 아니고, 우리와 계약 관계에 있던 외부 회사 사람들과 함께 매장을 다닐 때는 종종 오해로 인해서 전혀 예상치 못했던 문제가 생기기도 했었다.


아무래도 이런 회사들은 우리 법인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우리 법인으로부터 돈을 받는 입장에 있어서 그런지 매장 다니는 것이 너무나 힘들어도 그런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었고, 그러한 사정을 전혀 몰랐던 나는 그로 인해 결국 매우 난감한 입장에 처하기도 했었다.


매장에서의 우리 법인 마케팅 활동 일부분을 지원해 주었던 한국계 회사의 법인장과 함께 홍콩 매장들을 돌아다니게 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걷다 보니 그분이 너무 따라오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평소 친분도 있고 해서 조금 더 부지런히 걸어가자고 독촉을 하기도 했었는데, 그렇게 계속 걸어가다 보니 이제는 그분의 얼굴색이 창백해지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다.


창백한 얼굴에 식은땀까지 흘리는 모습을 보고는 무슨 일이 있냐고 물었는데, 그는 괜찮다며 아무런 일도 없으니 계속 가자고 답을 했다. 하지만 그분의 모습을 보면 전혀 이상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 자리에서 멈춰서 조금 쉬었다 가기로 했다.


그리고 다시 뭔 일 있냐고 물었더니, 그때서야 솔직한 답을 하는데 사실 자신이 얼마 전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또 그 수술도 처음 받는 수술도 아니었고 이미 그전에 두 차례나 디스크 수술을 받아서 그 수술이 세 번째로 받는 수술이라고 했다.


허리 상태가 그러니 전혀 걷지를 못했던 것인데, 그런 말을 듣고 나니 정말 너무 미안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솔직히 좀 원망스럽기도 했는데 그런 사실을 미리 알려줬으면 차를 타고 매장으로 바로 이동할 수도 있었고, 아니면 좀 천천히 쉬엄쉬엄 갈 수도 있었는데, 전혀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아 결과적으로 내가 우리 법인과 계약 관계에 있는 어찌 보면 '을'의 입장에 있는 회사의 몸도 온전치 않은 사람에게 소위 '갑질'을 했던 것처럼 되어 버린 그런 상황이 원망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분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우리 법인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대금을 받고 있었던 입장에서, 바로 그 서비스와 관련되는 매장 방문을 하고 있던 도중 고객 회사 법인장은 매장 주변 환경을 파악하기 위해서 그렇게 힘들게 홍콩 길바닥을 걸어가는데 자신은 그것이 편하니 편하게 차로 이동하면서 다니자고 제안하기가 매우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심할 정도로 빨리 걷는다는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진작에 사정을 내게 설명하고 차를 타고 가자는 제안을 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저 통상적인 속도의 걸음일 것이라고만 생각하고는 별다른 말을 안 하고 있다가 실제로 함께 걸어보니 내 걸음이 너무도 빨라서 꽤 힘들었지만 도중에 의견을 바꾸기도 '을'의 입장에서 다소 껄끄러우니 무리해서 가다가 그런 지경에까지 이르게 됐던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이 일은 여기저기로 소문이 나게 , 전혀 의도했던 바가 아니었던 내 입장에서는 좀 많이 억울했지만 나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무려 3번째 받은 사람을 끌고 미친 듯이 홍콩 거리를 돌아다녔던 나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히고 악명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그런 와중에 하필 아래 일까지 얼마 후에 추가로 터지게 되면서 나는 더욱더 '나쁜 놈'으로 업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나게 되었다.




그날은 우리 법인과 계약해서 우리 제품이 판매되는 홍콩의 매장 현황을 분석하는 리포트를 작성하기로 한 컨설팅 회사 직원 남녀 두 분과 매장을 방문하고 있던 날이었다. 이 회사 역시 한국계 회사였고 직원분들도 한국인이었다.


매장을 분석하는 업무였으니 그분들도 당연히 매장을 자주 그리고 또 많이 방문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따라서 정해진 시간에 되도록 많은 매장을 방문하고 또 그 매장이 위치한 주변 상권까지도 파악해야 했으므로 이날도 역시 부지런히 걸어 다녀야 했었다.


한편 이분들은 디스크 수술을 받았던 전술한 분과는 다르게 나이도 30대 초반으로 매우 젊어서 나는 별다른 부담 없이 통상 걷는 속도로 걸어 다녔다. 그런데 처음에는 어느 정도 따라오던 그들의 걷는 속도가 점차 느려지더니 언젠가부터 뒤돌아봐도 잘 보이지 않을 만큼 거리 차가 생겼다. 하지만 정해진 시간 안에 계획한 매장을 모두 보려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 그렇게 그들과 거리가 벌어진 상태로 계속 매장들을 방문했다.


결국 이처럼 따로 다니다시피 했던 상태로 다니긴 했었지만 어쨌든 예정된 매장들 방문은 모두 마쳤고, 이제 그들에게 저녁을 접대하려고 이동하려는데 컨설팅 회사의 직원 두 분 중 여성 분의 걸음이 좀 이상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었더니 역시 아니라고, 아무런 일도 없다고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좀 이상해서 몇 번 더 물어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발바닥을 들어 보여주는 데 물집이 잡혀 있거나 까진 곳까지 있었다.


그날 나를 따라서 장시간 무리하게 걷다 보니 발에 상처가 생긴 것이었다. 나는 정말 너무도 놀라고 미안해서 어쩔 줄 몰랐는데, 한편으로는 이번에도 역시 원망스러웠던 것이 도대체 발에 상처가 생길 지경에 이를 때까지 왜 쉬자거나 중단하자는 얘기를 하지 않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정말 그렇게 악독한 인간도 아니고, 힘들다든가 또는 상처가 생겼다고 단 한마디만 말했어도 매장 방문을 곧바로 중단했거나 아니면 휴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요청을 일절 하지 않고 이렇게 사람을 미안하게 만들고 또 나쁜 놈으로 만드는지 꽤 원망스러웠다.


결국 그들도 역시 아마도 컨설팅을 외뢰한 회사의 법인장과 다른 일도 아니고 바로 그 컨설팅과 관련된 일을 하는 도중 일이 중단되거나 차질이 생기면 혹 회사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까 부담이 돼서 그렇게 상처가 있는 상태에서도 얘기를 안 하고 무리하게 걷기를 계속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남성도 아닌 여성이 그 상처로 꽤 쓰라리고 아팠을 텐데도 아무런 말도 안 하고 계속 매장을 돌아다녔던 것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을 넘어서 그녀나 나 모두 그 시절을 살던 같은 월급쟁이 직장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직장에만 매인 똑같은 삶을 살고 있었던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까지 들기도 했다.


어쨌든 이 사건도 역시 업계에 파다하게 소문이 났고, 결국 이번에도 나는 '갑'의 입장에 있다는 이유로 '을'의 입장에 있는 기업체 직원에게 발에 물집이 생길 지경이 될 때까지 또다시 갑질을 했던 지독하게 나쁜 법인장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여성이었으며, 게다가 상처까지 생긴 경우라 받는 비난이 이전보다는 훨씬 더 다.


의도했던 바는 결코 아니었고 그분들도 그것을 익히 알고는 있으리라고 기대하지만, 어쨌든 '갑'의 입장에 있는 회사에 대한 부담 때문에 디스크 수술까지 받고도 장시간 걸어야만 했었고, 또 발에 물집이 생겨 까진 상황에서도 계속 걸어야 했던 그분들에게는 정말 죄송하고 차제에 용서를 빈다.


그리고 사실 곰곰이 다시 생각해 보면 그토록 빨리, 그것도 그렇게 오랜 시간 내 평소의 방식대로만 걸어 다녔던 것도 그 시간을 함께 하고 있던 주변의 사람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던 교만한 마음에서 온 것이고, 따라서 그러한 행동은 실제로도 일종의 갑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더 강하게 들기 때문에 그런 미안한 심정이 더욱 짙어지는 것 같다.


그분들 모두 이제 빠르게, 그리고 오래 걷는 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이상한 사람은 더 이상 만나지 않고 계신 곳에서 개인적으로나 업무적으로 더 큰 성공을 하고 풍성한 결실을 맺는 그러한 삶을 살고 있으시기를 기대한다.




글 서두 사진에 있는 그 낡은 샌들을 신고 홍콩 구석구석을 참 많이도 걸어 다녔다. 베이징 편에서도 이미 언급했지만 걸어서 보는 세상과 차 타고 차 안에서 보는 세상은 동일한 공간이지만 참 많이 다르다. 차 안에서 볼 때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많은 것들을 그 장면 안에 직접 들어가서 그 안에서 걸어 다닐 때는 느끼게 되는 것들이 매우 많았다.


물론 홍콩에서는 회사 업무의 연장선 상에서 매장들 분석을 위해 그렇게 걸어 다녔었다. 하지만 꽤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나서 보니 그때 그렇게 걸어 다녔던 것이 홍콩과 홍콩인의 좀 더 깊은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었던 귀한 계기가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뜨거운 아열대 지방의 태양을 머리에 지고서 5년 반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하염없이 홍콩의 여기저기를 헤매고 다녔던 돌아갈 수 없는 그 과거의 시간들이 이제는 참 많이 그립기도 하다.


사진) 홍콩에서 2009년 1월부터 2014년 여름까지 5년 반 동안 매장을 방문하러 다니면서 찍었던 사진. 이 사진들을 보면 지금도 저 공간 안에 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하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이미 최소 6년 이상 지난 과거 사진들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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