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병원의 지옥과 천국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7편 HK, Macau-15)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Hong Kong, Macau



15. 홍콩 병원의 지옥과 천국


사무실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 관리담당이 황급하게 들어왔다. 한 주재원의 부인으로부터 방금 전화를 받았는데 남편이 한밤중에 심장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급하게 집 근처에 있는 병원에 서 입원해 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서둘러 인사과의 홍콩인 직원과 함께 그 주재원이 입원해 있다는 병원으로 갔다.


병원에 도착해 보니 그 주재원 부인은 병원 건물 앞 벤치 넋을 잃은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그런 일 당한 것 자체에도 정말 놀랐겠지만, 객지에서 병원 입원 및 수속 등 그 모든 일을, 그것도 한밤중에 혼자서 처리해야 했으니 얼마나 당황했겠는가? 그런데 막상 심장 통증이 있었던 당사자인 주재원은 병원에 와서 응급처치를 받은 후 통증이 사라졌는지 병상에 누워 꽤 편한 모습으로 잠을 자고 있었다.


부인은 밤새 남편 입원시키고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텐데 당사자인 주재원은 밤새 통증으로 너무 긴장하고 힘들어서 그랬는지 곤하게 잠을 자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만약에 그날 밤 주재원 혼자 집에 있어서 결정적인 순간에 부인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면 적시에 응급처치를 받지 못해서 정말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그날의 일이 전개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한마디로 부인이 남편을 살린 셈이다.


한편 정말 드문 우연이지만 그 주재원의 부인은 어린 시절 나와 같은 동네에 살던 동네 후배였다. 초등학교도 신용산 초등학교라는 그 동네 같은 학교에 다녔고 또 내 친동생과 친구여서 어느 정도 안면도 있는 사이였다. 그런데 세월이 한참 흐른 이후 홍콩에 주재 나와서 보니 그녀 남편이 나와 함께 홍콩 법인에 근무하는 주재원이었던 것이다.


그 부인과는 그렇게 초등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다 보니 대화도 조금편하게 나눌 수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자초지종을 좀 들어 보니 여느 날과 같이 남편과 잠자리에 들었는데 한밤중에 갑자기 비명 같은 소리가 들려서 깨보니 옆에 있던 남편이 심장 부근을 움켜쥐고 너무나도 아프다며 통증을 호소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놀라서 황급히 집에서 나와 근처 병원으로 갔는데, 당직 의사가 진단을 해 보더니 심장 바로 옆에 있는 혈관이 상당 부분 막혀 있으며 더 늦기 전에 급하게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병원은 시설과 환경이 너무도 열악해 보여 정말 이런 병원에서 그렇게 중요한 심장과 관련된 수술을 받아도 되는지 자신이 없어 선뜻 수술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도 그 부인의 그러한 망설임이 이해되는 것 같았다. 병원 건물 자체도 매우 낡아 보였지만 병원 안의 시설이나 장비 대부분이 너무 낡아서 한국의 80~90년대의 병원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주재원이 누워있었던 병실은 마치 군용 병실 같아서 한 병실에 누워있는 환자가 20명도 넘어 보였다. 병실뿐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그 병원 규모에 비해 입원해 있는 환자수가 너무 많아서 병동 자체가 무슨 수용소 같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게다가 또 어디에서 나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근처에 응급실이 있었는지 통증으로 비명을 지르는 것 같은 소리도 병동 안에는 가득했었다. 당시 내가 꽤 당황했었고 또 겁을 먹기도 해서 더욱 그렇게만 느꼈을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홍콩에서 지옥의 아비규환을 경험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이러한 병원에 있다 보면 질병이 치료되기보다는 오히려 없는 질병도 새로 생길 것 같은 그런 분위기였었다. 결국 나는 그 주재원 부인과 상의한 후 인사과에 연락해서 다른 병원을 알아봐 달라고 했고 얼마 후 인사과에서는 'Matilda'라는 병원을 추천해 주었다.


그 연락을 받고 우리는 바로 그 병원에서 퇴원 수속을 한 후, 법인 차량을 타고 Matilda 병원으로 향했다. 물론 병원의 퇴원 수속은 유창한 현지어가 가능한 홍콩인 인사과 직원이 알아서 해줬다. 해외에 살 때 병원 같은 곳에서 의사소통이 원활히 안되면 꽤 피곤하고 힘들 텐데 주재 근무 중이었던 덕분에 법인의 홍콩인 직원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 큰 다행이었던 것 같다.


한편 내게는 이 이 홍콩 병원 내부를 처음으로 보게 되는 날이었는데, 사실 이런 말을 하기에홍콩의 그 병원에서 근무하거나 치료받는 분들에게는 많이 죄송하지만 전술한 것처럼 그 병원의 모습을 보고 있다 보니 솔직히 지옥을 내 눈앞에서 보고는 것 같은 그런 기분까지 들었다. 게다가 병동 가득 울려 퍼지는 그 비명 소리들이 공포심을 한층 더 강하게 자극했던 것 같다. 오죽하면 그곳이 다른 곳도 아닌 병원이었음에도 없는 병도 그곳에서 생길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겠는가?


그런데 그날의 그런 느낌이 유독 더 진하게 기억에 새겨져 있는 이유는 아마 아래 언급하는 새로 입원한 Matilda라는 병원 모습과 그 병원이 모습이 마치 전혀 다른 국가에 있는 병원처럼 너무도 큰 비교가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환자인 주재원, 부인, 인사과 직원 그리고 나 이렇게 4명이 8인승 법인 밴을 타고서 Matilda 병원으로 향했다. 그런데 차가 가는 방향을 보니 예상외로 관광지로 유명한 홍콩섬의 정상 Peak라는 산꼭대기로 올라가고 있었다. Peak는 홍콩 일대 및 구룡반도까지 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어서 관광객 필수 방문 코스가 될 만큼 유명한 관광명소였고, 나 역시도 출장자들과 여러 번 방문했던 곳인데 그런 관광지에서 대형 병원을 봤던 기억이 전혀 없어 꽤 의외였다.


사진) 홍콩섬 Peak 인근에서 내려다본 경치. 바다 건너로 보이는 육지가 구룡반도다. (2013. 7월)


한편 Peak 일대는 과거 영국이 홍콩을 지배하던 시절에는 당시의 지배층인 영국인들이 많이 몰려 거주했었다. 무더운 아열대 지방에 있는 홍콩이라는 같은 도시지만 그 무더위가 그대로 전달되는 산 아래의 평지에는 중국인들이 거주했던 반면, 좀 더 서늘한 홍콩섬 산의 정상 부근에는 영국인들이 몰려서 거주했었던 것이다.


한편 영국인들이 그렇게 몰려서 집단적으로 거주하다 보니 영국의 홍콩 정부는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중국인들은 아예 그 지역에 접근조차 하지 못하도록 1904년 법까지 제정해 The Peak라 불리는 홍콩섬 정상 인근 지역은 중국인들이 들어올 수 없는 구역으로 막아버렸다. 이 법은 1930년까지 30년 가까이 지속 유지되었다 한다.


(중국인 Peak 접근 금지법)

https://en.m.wikipedia.org/wiki/Peak_District_Reservation_Ordinance_1904


산 정상쯤 오니 기사가 목적지에 다 왔다고 하는데, 주변을 보니 우리 시야에는 병원이라기보다는 유럽의 대저택이나 호텔처럼 보이는 크고 아름다운 건물만 덜렁 보였다. 게다가 아침에 퇴원했던 병원과는 너무도 달라서 조용하고 사람 또한 통 보이질 않아 여기가 정말 병원이 맞는지 내심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50대 후반 기사나 30대 초반 인사과 직원 모두 홍콩인이었음에도 자신들도 처음 와 보는 이라 좀 생소하긴 하지만 어쨌든 주소는 이곳이 맞다고 했다.


(너무도 멋진 Matilda 병원 건물 모습)

https://en.wikipedia.org/wiki/Matilda_International_Hospital#/media/File:Matilda_International_Hospital.jpg


주소가 맞다니 결국 그곳에서 내려 호텔처럼 보이는 건물의 입구로 걸어가기는 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뭔가 미심쩍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보고 있었는데 그 건물 주변의 경치가 정말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병원이 홍콩섬 중앙 산 정상의 관광지로 유명한 Peak 지역 안에 있으니 이곳에서도 홍콩 주변의 넓고 파란 바다가 그대로 내려다 보였던 것이다.


병원에 들어와서도 역시 도서관처럼 조용했고 환자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환자가 그렇게 없으니 당연히 줄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었고 인사과 직원과 주재원은 곧바로 병원 사무실을 찾아 입원 수속을 시작했다. 수속하는 곳도 분위기가 매우 좋아서 마치 고급 호텔에 두 사람이 편하게 앉아서 Check-In 하고 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느낌까지 들었는데 역시 아침에 퇴원했던 병원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이었다.


사진) Matilda 병원에서 입원 수속하던 모습. 우측이 환자 주재원이고 좌측은 법인 인사과 직원이다 (2011. 5월)


입원 수속을 마치고는 주재원과 함께 한동안 머무를 병실로 이동했는데, 1인용 병실은 아래 링크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정말로 병실이라는 설명을 별도로 하지 않으면 호텔방으로 오해할 정도로 아늑하고 고급스러웠다. 게다가 창밖으로는 홍콩의 관광 명소에서조차도 쉽게 보기 어려울 것 같은 탁 트인 홍콩 앞바다를 모두 내려다볼 수 있었다.


(Matilda 병실 모습)

https://www.alux.com/most-luxurious-hospitals-to-give-birth/2/


병실까지 확인한 후 부인은 좀 더 남아 있겠다 해서 인사과 직원과 나만 먼저 병원을 나오기로 했는데, 인사과 직원은 병실을 빠져나오기 전 그곳에서 보이는 주변의 경치와 병원 사진을 찍기에 꽤나 바빴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홍콩에서 태어나서 홍콩에서 30년도 넘게 살아왔지만 자신도 이렇게 아름답고 멋진 병원이 홍콩에 있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고 했다. 홍콩에서 자란 홍콩인에게도 그렇게 생소할 만큼 이 병원의 시설과 환경은 대단했던 셈이다.

사진) Matilda 병원 병실에서 내려다 보이는 멋진 바다와 그 경치를 찍고 있는 인사과의 홍콩인 직원 (2011. 5월)




한마디로 Matilda 병원은 천국에 있는 병원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정말 천국에도 병원이 있다면 꼭 이 Matilda 병원 같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국 되돌아보면 그날은 환자 당사자인 주재원이나 그분의 부인이나 또 나도 단지 하루 만에 홍콩의 지옥 같은 병원과 천국 같은 병원을 동시에 경험했던 그런 날이었던 셈이다.


그날 농담처럼 말하기도 했지만 먼저 입원했던 병원이 없던 병도 오히려 그 병원에서 새로 생길 것 같은 분위기였다면, Matilda 병원은 그와 반대로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산속의 멋진 고성이나 아름다운 호텔과 같아서 오히려 그 병원에서 퇴원하기 싫어 질병이 치료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까지도 생길 같은 병원이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두 병원 간에 이토록 큰 차이점이 있었던 이유는 바로 병원 운영 방식과 진료비가 서로 크게 달랐기 때문이었다. 아래 링크에도 언급돼 있지만 홍콩에는 동일한 질병이라도 입원비로 150 홍콩달러(약 2만 3천 원)를 지불하는 병원이 있는가 하면, 수십만 홍콩달러까지 지불해야 하는 병원도 있다는 것이다.


(홍콩의 병원비 차이)

http://www.okja.org/saseol/123570


홍콩 병원은 크게 두 종류의 병원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정부 재정 지원을 받는 '공공 병원(Public Hospital)'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의 재정 지원이 없는 '사설 병원(Private Hospital)'이었다. 그런데 공공 병원은 정부 지원으로 진료 비용이 저렴하다 보니 환자들이 많이 몰리게 되었고 따라서 대기해야 하는 시간도 길고 또 입원을 해도 좁은 공간에서 많은 환자들과 함께 생활해야 했다.


하지만 홍콩의 모든 공공 병원이 우리가 먼저 방문했던 그 병원만큼 그렇게 심하게 열악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이후 내가 방문했던 Ruttonjee라는 병원도 역시 공공 병원이었지만 그럼에도 제반 환경이나 시설이 그 공공 병원만큼 열악하지는 않았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사설 병원은 입원비나 진료비 등이 전술한 바와 같이 공공 병원과는 비교하기도 어려울 만큼 상당히 고가였지만, 병원비가 비쌌던 만큼 고품질의 장비, 친절한 의사, 쾌적한 환경 속에서 진료를 받을 수 있었다.


(홍콩 병원 체계도)

https://www.gov.hk/en/residents/health/hosp/overview.htm


여기에서도 또다시 체험하게 되는 사실이지만, 병원들 간의 이처럼 극명한 시설 및 환경 차이도 역시 홍콩의 매우 심한 빈부차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셈이었다.


돈 많은 홍콩인들은 법인 주재원이 얼떨결에 모르고 급하게 찾아갔던 그런 열악한 환경의 병원에는 결코 찾아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Matilda 병원처럼 오직 돈 많은 소수만이 접근할 수 있는 환경도 좋고, 쾌적하며, 의료시설도 완벽한 그런 병원만을 다닐 것이다.


하지만 법인 인사과 직원처럼 홍콩의 대다수 일반 시민들은 그렇게 비싸고 호화스러운 병원의 존재조차 인지하지 못한 채 살고 있는 것이 현실이었으, 30년이 넘도록 홍콩에서 살았어도 Matilda 병원이 신기하다며 기념사진까지 찍는 홍콩인이 되기도 했던 것이었다.


한국에도 유명 대학 병원이나 아산병원, 삼성병원 같은 꽤 우수한 시설과 의료진 그리고 환경을 구비하고 있는 쟁쟁한 병원들이 꽤 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그 병원의 존재를 잘 알고 있으며 또 누구나 국가의 의료보험 제도를 통해 그런 병원들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의 현실과 전술한 홍콩의 현실을 비교해 보면 홍콩의 현실이 우리들의 현실과는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를 새삼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Matilda 병원의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병원 건물은 영국이 홍콩을 통치하던 시절인 1906년에 완공된 건물이라 한다. 1925년에 완공된 구 서울역 역사처럼 일제 강점기 시절에 지어진 건축물도 꽤 오래된 건축물인데 이 건물은 그보다도 수십 년이나 이전에 지어진 건물로서 114년이나 됐으니 오래된 건물인 셈이다. 그런데 이처럼 오래되고도 아름다운 이 병원에는 또 다른 아름다운 러브스토리도 남아 있었다. 바로 병원 이름에도 들어 있는 'Matilda'라 불리는 여인과 그녀의 남편 간의 러브스토리다.


1829년 영국에서 출생한 Matilda는 인도의 Bombay에 있던 Granville Sharp라는 같은 영국인 남성과 1858년에 결혼을 했다. 이후 남편의 직장이 홍콩으로 변경되자 같은 해 그녀도 남편을 따라 홍콩으로 이사해 홍콩에서 35년을 함께 살다가 1893년 64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사망했다.


그녀가 사망한 지 6년이 지나서 남편은 영국 여행을 갔다가 영국에서 74세로 사망하게 된다. 그런데 그는 사망하면서 유언을 남겨 자신의 재산 상당 부분을 자신의 부인 이름이 들어간 병원을 그들이 살았던 홍콩 Peak 지역설립하는 데 사용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그런 유언대로 Peak 지역에 Matilda라는 이름의 병원이 결국 설립이 됐다. 한편 영국 여행 중 사망한 남편의 유해도 화장 이홍콩에 이송되어 홍콩의 Happy Valley 묘지에 먼저 안장되어 있던 부인과 합장하게 되었다.


(사후 합장된 Matilda 부부의 비석에 적힌 글)

https://www.findagrave.com/memorial/14437978/granville-sharp


그런데 영국인으로 고향이 바로 영국이었음에도 영국에서 사망한 그의 유해가 굳이 홍콩에까지 이송되어 부인과 함께 합장되게 된 점이라든지, 또한 부인이 사망한 지 6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 경과했음에도 그가 유언을 남길 때 자신의 이름도 아니고 6년 전에 사망했던 부인의 이름으로, 그것도 그들이 35년간 함께 생활했던 Peak 지역에 병원을 설립해 달라는 그러한 유언을 남겼다는 사실을 보면 부인에 대한 그의 사랑이 유독 깊었던 것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요즘처럼 이혼이 흔하고 부부관계도 다소 각박하게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그 남편의 그런 애틋한 사랑의 감정은 마치 오래전 소설에나 존재했을 것 같은 러브스토리처럼 들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랑과, 홍콩에 시신이 묻히길 희망할 만큼 깊은 홍콩에 대한 애착에도 한계가 있었다. 그들의 홍콩에 대한 애착은 홍콩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홍콩에 거주하는 백인 사회에만 국한된 애착이었다고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Matilda 병원 설립에 관한 그의 유언은 "홍콩에 거주하는 가난하고 어려운 유럽인들에게 바친다"라는 결정적인 단서 조항이 있었던 것이었다. 즉, 홍콩을 위한 병원인 것은 맞는 말이지만 홍콩에 거주하는 백인만을 위한 것이지 결코 홍콩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당시의 홍콩 거주 중국인을 위한 것은 결코 아니었다는 말이다.


(Matilda 병원 설립 목적)

"The hospital was dedicated to poor and destitute Europeans – including missionaries, deckhands and so forth – and all treatment and accommodation was to be free."


실제로 과거에는 전술한 것처럼 1904년부터 1930년까지 무려 30년 가까이 중국인들에게 Peak 지역은 접근 자체가 법으로써 금지되어 있던 시절이 있었다. Matilda의 남편이 사망한 시점도 이런 법이 시행되기 불과 3~4년 전이었므로 실질적으로 Peak 지역은 이미 백인들의 전용 거주지 같은 곳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애당초 백인들만이 몰려 거주했던 Peak에 병원을 설립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것 자체가 이 병원이 홍콩 거주 중국인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셈이기도 하다.


물론 Matilda 병원도 이제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홍콩인을 대상으로 무료 치료도 시행하고 또 여러 가지 자선 활동을 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Matilda 병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과거에는 중국인에게는 접근이 안 되는 백인들만을 위한 병원이었고, 최근에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접근이 어렵고 부자들만이 그 병원의 모든 안락함을 향유할 수 있는 그런 특별한 계층만을 위한 병원이었던 셈이다.


(Matilda의 생애)

https://beyondthehighrise.com/matilda-mums/




어쨌든 한밤중에 급하게 입원한 공공 병원의 너무도 열악한 환경에 극도로 위축되어 있었던 법인 주재원은 매우 쾌적한 환경의 Matilda 병원으로 옮겨져서 그 병원에서 심장 근처 좁아진 혈관에 Stent를 삽입해서 혈관을 확대하는 수술을 무사히 잘 받았고 이후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해 오늘날까지 잘 살고 있다.


그날 일은 내게도 적지 않은 충격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였던 그 주재원과 그의 부인에게는 홍콩 법인에 주재하는 동안에 지옥과 천국 같았던 두 병원을 하루 만에 몰아서 경험했던 잊을 수 없는 기억이었을 것이고, 특히 너무도 아름다웠던 Matilda 병원은 그들의 기억 속에는 매우 특별한 병원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좀 아이러니 하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사실인데 재미있는 점은 홍콩의 이 Matilda란 병원은 혈관 수술보다는 아이를 출산하는 산부인과로 홍콩에서는 가장 유명한 병원 중 하나로 알려지고 있다고 한다.


(Matilda 병원에서 출산했던 한국인의 경험담)

https://blog.naver.com/allabouthk/100160968572

(출산에 가장 적합한 홍콩의 병원들)

https://hongkongliving.com/private-hospital-maternity-packages/



keyword
팔로워 270
이전 14화내가 경험한 홍콩의 식당 (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