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에 거주하면서 특히 초기에는 짧은 내 중국어 실력 때문에 고생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발음, 문법, 독해 모두가 문제였는데, 혹 어쩌다 이 세 가지가 완벽한 경우도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나 같은 한국인에게는 생소할 수밖에 없던 '성조(聲調)'라는 의외의 복병을만나 곤경에 처하기도 했었다.
한국어에는 없지만 중국어에는 서로 다른 4개의 성조라는 것이 있다. 즉 각각의 한자(漢字)마다 음의 높낮이가 4가지 방식으로 다른 것이다.
비록 발음이 같더라도 이 성조가 다르면 전혀 다른 의미의한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성조가 틀리면 전혀 다른 의미의 말이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책', '쥐', '나무' 등은 중국어로 각각 '书', '鼠', '树'인데, 이 세 한자의 발음은 모두 'shu'로 같다. 하지만 세 단어의 성조는 전부 다 달라서, '书'는 1성, '鼠'는 3성, '树'는 4성이다. (아래 링크에서 스피커 모양을 클릭하면 각 단어의 성조 차이를 들을 수 있다)
예를 들어서 "我喜欢树(나는 나무를 좋아한다)"라는 말은 중국어로 "Wǒ xǐhuān shù"라고 발음하는데, 이러한 말을 하면서 발음이 모두 정확했더라도 마지막 'shu'라는 한자 성조를 4성 [shù]가 아니라 1성 [shū]로 잘못 발음하면 상대방은 "我喜欢书 (Wǒ xǐhuān shū)", 즉 '나무'가 아닌 '책'을 좋아한다는 엉뚱한 의미로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성조는 우리에게는 매우 생소한데, 알고 보니 의외로 중국어 외에도 동남아 언어등 여러 언어에도역시이처럼 성조가 존재한다고 한다. 중국 남부의 광둥어 및 인접 지역 베트남어에는 모두 6개 종류의 성조가 있으며, 티베트어와 태국어에도 5개 성조가 있고 버마어에는 3개 성조가 있다 한다. 과거 홍콩 영화를 보면서 듣던 영화 속 대사가 중국의 표준어보다 좀 더 높낮이가 심하고 노래처럼 들리는 이유도 이처럼 홍콩 지역의 언어인 광둥어의 성조가 6개로 중국의 표준어 4개보다 더 많아서 그렇게 들렸던 것 같다.
실제로 중국인과 대화하면서 성조가 틀려서 당황했던 적도 있다. 베이징의 코리아타운 격인 왕징(望京)에서 동료들을만나기로 해서 집에서 나와 택시를 타고 기사에게 '왕징'에 가자고 했다. 그런데 기사가 뒤돌아 보면서 하는 말이, 너무 황당하게도 "베이징에 왕징은 없지만, 왕징은 있다!"라는 것이었다.
왕징은 없는데 왕징은 있다니? 나는 이게 무슨 말장난인가 싶어 다시 한번 조용히 '왕징' 가자고 똑같이 말했는데 역시 같은 답이 돌아왔다. 혹시 이 기사가 나를 놀리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들었는데, 택시 기사 자신도 빨리 이동해서 나를 보내고 또 다른 손님들을 태워야 돈을 벌 수 있으니 그럴 이유는 없을 것 같았고, 또 너무 진지한 표정을 보니 그런 의도는 아니었던 것 같았다. 그래서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아마 내가 말한 '왕징'이란 단어의 성조가 틀려 못 알아듣는 것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베이징에 오기 전 회사에서 중국어 배울 때도 성조가 틀리면 중국 현지에서는 상대방이 단어를 못 알아들을 수가 있으니 확실히 배워야 한다고 교육을 받기는 했다. 하지만 실제 베이징에 와서 지내다 보니 일반 대화처럼 긴 문장을 말할 때는 앞뒤 단어를 듣고 그 문맥 속에서 특정한 단어를 접하기 때문에, 특정 단어 발음이나 성조가 좀 틀리더라도 앞뒤 문맥 속에서 어느 정도 그 단어를 추정해서 알아들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택시 타고 목적지를 말할 때처럼 짧은 지명만 달랑 얘기할 때는 앞뒤 문장이전혀없다 보니 문맥으로 단어를 추정할 수가 없고 그러다 보니 성조가 조금만 틀려고 다른 단어로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온 어떤 외국인이 "어제 본 영화 참 '주'미 있었다"라고 '재미'를 '주미'로 잘못 발음하더라도 대부분의 한국인은 앞뒤 문맥을 듣고 그 말이 '재미'를 의미한 것으로 쉽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앞뒤 문맥 없이 단순히 '주미'라고 말하면 웬만한 한국인들은 그 말이 무슨 말인지이해하기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다양한 방법들을 동원해 어렵게 목적지를 설명하고 간신히 왕징에 도착하기는 했다. 그리고 다음날 회사에 출근한 후 사무실에 있는 조선족 직원에게 택시에서 경험했던 전날의 상황을 하소연했더니, 그들의 말은 비록 같은 중국인이라도 상해나 광동처럼 표준어와 발음이나 성조가 다른 지역 출신 사람들도다수 섞여 있어 같은 중국인들 사이에서도 그러한 문제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이었다.그리고 그러한 경우에는 그 한자가 들어간 단어 예문을 같이 불러주어 단어를 보다 명확히 한다고 했다.
즉, 왕징은 한자로는 왕징(望京)이라고 적는데, 이 단어를 못 알아들으면 "리아오(瞭望, 높은 곳에서 감시한다)의 望, 베이징(北京)의 京" 이런 식으로 다시 풀어서 말을해 주면 상대방이 좀 더 쉽게 알아듣는다는 것이었다.
이런 방식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방법을 배우고 난 이후에는 택시 타고 목적지를 말할 때처럼 짧은 지명만 얘기해야 할 경우에도 과거와 같은 문제가 실제 재발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사실 이런 방식은 중국에만 있는 것은 아니고, 한국어나 또 영어에서도 이미 같은 방식으로 말을 해서 단어의 혼동을 피하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즉, 한국어로 말할 때에도 상대방이 잘 못 알아들으면, 예를 들어 '밤'이 아니라 "비빔밥 할 때의 밥"이라고 다시 말하는 것이나, 영어에서도 'R'이나 'A'등 알파벳 철자를 혼동 없이 좀 더 명확히 전달하고자 할 때 '알', '에이'라고 하지 않고, '로미오(Romeo)', '알파(Alpha)'라고 말하는 것처럼 좀 더 긴 단어로 말하는 것과 같은 방식인 것 같다.
성조가 아닌 발음부터 틀려서 좀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기도 했었다. 한국인이 운영을 하는 단골 이발소가 왕징에 있어 이발은 항상 그 이발소에서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발하러 가 보니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그날은 문이 닫혀 있었다. 할 수 없이 주변의 다른 이발소를 찾아봤는데 마침 멀지 않은 곳에 한글로 간판이 적혀 있는 이발소가 있었다.
간판이 한국어로 적혀 있으니 당연히 한국인들이 이발을 해 줄 것으로 기대하고 들어갔다. 그런데 막상 들어가서 보니 정작 한국인 이발사는 1명밖에 없었고, 대부분의 이발사는 모두 중국인이었다. 게다가 한국인 이발사는 너무도 바빠서 나를 상대할 시간도 없어 보였다.
하지만 어쨌든 그날 이발은 꼭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일단 들어온 이상 그곳에서 중국인 이발사로부터 이발을 받기로 했다. 이발소 안에는 이발사들의 사진과 이름이 벽에 붙어 있었는데, 종업원이 다가오더니 그중에서 원하는 이발사를 지정하라고 했다. 중국 안마소 가면 같은 방식으로 사진을 보고서 안마사를 지정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것과 유사한 방식이었다.
그렇지만 그 이발소는 그날이 처음 방문하는 날이니 사진을 봐도 누가 이발을 잘하는지 알 수 없었고, 그저 사진에 있는 이발사 중에서 가장 예뻐 보이는 장(張)씨 성을 가진 여자 이발사를 보고 '짱시엔셩(张先生, 장선생)'이라고 말했다. 당시 중국에서는 이발사를 선생이라고 불렀다.
종업원은 알았다고 하더니 지정된 자리로 나를 안내해주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다. 나는 잠시 후면 미모의 이발사에게 이발받을 생각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는데, 얼마 후 이발소 2층에서 웬 남자가 또 자기를 찾는 손님이 왔냐는 듯이 아주 거만한 걸음걸이로 천천히 걸어서 내려왔다. 하지만 나와는 관련이 없는 사람이니 그러려니 하고 관심을 두지 않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는 다른 사람에게 가지 않고 내 자리로 오더니 걸음을 멈추고 이내 곧 내 머리를 만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너무나 황당했다. 내가 지정했던 사람은 이 남자가 아니고 아름다운 여성인데.... 하지만 이 사람이 아니라고는 차마 말을 하지 못했고 그냥 그렇게 그 남자로부터 이발을 받았다.
실망 속에서 이발을 받으며 내가 왜 지정했던 사람과 전혀 다른 엉뚱한 사람에게 이발을받아야 하는지 이유를 곰곰이 되짚어 보니, 필경 '장(張)'에 대한 발음이 틀려서 상대방이 다른 한자로 잘 못 알아들었던 것 같았다. 이발사를 지정할 때 글로 정확하게 적어서 준 것도 아니고, 사진을 콕 찍어서 알려준 것도 아니며, 그저 말로 '짱시엔셩'이라고 했는데그 발음이 틀려 잘못 전달되었던 것이다.
신라의 장군 장보고(張保皐)나 대만 총통 장개석(蔣介石) 두 사람의 성은 한국어로는 그 발음이 구분되지 않는 모두 '장'이라는 같은 발음이다. 그렇지만 중국어에서는 '張'과 '蔣'은 발음은 물론 성조까지도 꽤 큰 차이가 있다.
중국어 발음기호로 적으면 張은 'zhāng'으로 표기가 되며 성조는 높은 음을 내는 1 성이다. 반면 蔣 경우 발음기호는 'jiǎng'이고 성조는 내려갔다 올라가는 3 성이다. 한마디로 한국어로는 구분이 안 되는 똑같은 '장'이지만 중국어로는 두 글자가 발음뿐 아니라 성조까지 다른 글자인 것이다.
발음과 성조가 모두 틀려, 필경 내가 '짱'선생이라고 말했을 때 그들은 'zhāng'이 아니라 'jiǎng'으로 들었고, 손님들이 자주 찾는 나름 그 이발소에서는 꽤나 유명했던 그 '거만한' 남자 이발사를 찾는 것으로 오해했던 것이다.
서울 사투리도 있다는 말이 있기도 하지만, 그 정도를 훨씬 능가하는 베이징 사투리 때문에 고생을 하기도 했다. 표준 한국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의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서울 사람들 말을한국 표준어의기본으로 삼는다는 뜻이다.
정의가 다소 복잡하기는 하지만,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話)도 역시 "베이징의 어음을 표준음으로 하는 북방화를 기초 방언으로 하고, 모범적 현대 백화문을 어법 규범으로 하는 현대 한(漢) 민족의 공통어"라고 규정되어 있다. 다소 길긴 하지만 어쨌든 결론적으로 베이징 언어를 원칙적으로 기본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말만을믿고 베이징에 도착해서 서울에서 배웠던 중국 표준어로 베이징 토박이들과 대화를 하려면 기대와는 달리 적지 않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배운 그대로 중국의 표준어 발음대로 성조까지 맞추어서 또박또박 발음을 하면 베이징 토박이들은 대부분 알아듣는다. 그런데 이와 반대로 베이징 토박이들이 구사하는 말은 서울에서 중국 표준어를 열심히 배웠던 사람들도 알아듣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바로 베이징 사람들의 습관인 발음 끝을 흐리는 그 '儿(얼)' 발음 때문이었다.
또 다른 동영상에는 베이징인에게 강제적으로 '얼' 발음을 못하게 하고 말을 해 보라고 한 것도 있는데, 그 결과는 아래 동영상에서 보는 것처럼 아예 말 자체를 못할 만큼 더듬는 우스운 장면도 연출된다. 그만큼 베이징 사람들의 '얼' 발음 습관이 뿌리 깊고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다.
당시 중국 담배 중에는 같은 브랜드지만 니코틴 함량 별로 가격이 다른 담배가 있었다. 회사 건물 옆에는 담배 가게가 하나 있었는데, 거기에 가서 니코틴 함량 0.5 짜리 담배를 달라고 '링띠엔우(零点五)'라고 말을 하면, 그 가게 주인은 담배를 꺼내 주면서 "그래, 링띠얼우얼"이라고 역시나 '얼'발음을 섞어서 답을 하곤 했었다. 그 당시는 담배를 피웠던 시절로 하루에 한 갑 정도는 피웠으니, 거의 매일 그로부터 똑같은 '링띠얼우얼'을 무한 반복하듯이 들었던 셈이다.
'얼'이라는 발음으로 단어를 애매하게 흐리는 이런말투는 베이징 이외에 중국 북방지역몇몇 곳에도 역시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아무래도 가장 심한 곳은 베이징 지역 아닌가 싶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베이징에 본사가 있는 CCTV 등 중국의 주요 방송 뉴스를 보면 어느 아나운서도 그런 '얼' 발음이 섞인 말투로 방송을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현재 중국에서 가장 표준적인발음들이 구사되는 곳이 중국 최북단 러시아 접경 지역인 헤이룽장성(黑龍江省) 지역인데, 뉴스 방송에 진출하려는 아나운서들은 필히 이 지역에 가서 장기간 발음 교정을 받은 후 방송에 나오기 때문이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