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 교포와 조선족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3편 Beijing-10)

by SALT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Beijing



10. 재중 교포와 조선족

'칼리닌그라드(Калинингра́д)'라 불리는 러시아 도시는 과거 '쾨니히스베르크(Königsberg)'라고 불리던 엄연히 독일 영토 안에 있던 독일 도시였다. 독일의 유명한 철학자 '칸트(Kant)'도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 이곳에서만 활동했다 한다. 하지만 이제 이 지역은 러시아 영토가 되어 있고 그 땅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러시아의 국민이 되었다.

폴란드 북부에 있는 '그단스크(Gdańsk)'라는 도시도 역시 과거에는 '단지히(Danzig)'라 불리던 독일의 도시였지만 이제 폴란드 영토 안의 폴란드 도시가 되어버린 것과 같은 상황인 셈이다.


독일 또는 당시 명칭으로 프로이센에 속했던 이러한 독일의 영토는 과거 독일이 러시아, 폴란드 등 주변국과 여러 차례 전쟁을 치러 오면서 그 주권이 바뀌기도 했는데 최종적으로 2차 대전에서 패전하면서 주변국에 빼앗긴 영토들이다.


(1919-1945년 사이 독일이 상실한 영토)

https://en.wikipedia.org/wiki/File:German_territorial_losses_1919_and_1945.svg


그런데 그렇게 과거 독일 영토가 주변국으로 흡수되어 독일 영토로부터 떨어져 나가게 되면서, 그 땅에 거주하고 있던 독일계 주민 상당수도 그들의 조국 독일로부터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가게 되었다. 즉, 독일 영토가 지속 팽창하던 시절 영토의 팽창과 함께 동구권에 진출했던 수많은 독일인들이 영토 상실과 함께 줄어든 독일 영토 내로 모두 돌아오지는 못했고 결국 이제 더 이상 독일 영토가 아닌 러시아, 폴란드 등 동구권 국가 여러 나라에 흩어진 채 살게 되었던 셈이다.


국경 경계가 불분명했던 간도(間島) 지역이 일제에 의해서 청나라 영토로 넘어가는 것이 확정되면서 연변 자치주 등 그 지역에 거주하고 있었던 수많은 한국인들이 중국 영토가 되어 버린 그 땅에 남아 중국인이 되고 한국과는 멀어지게 된 것과 유사한 상황이 독일에서도 발생했던 셈이다.


회사 교육 프로그램으로 프랑스에서 해외 연수를 하고 있을 때 만난 Torsten이라는 독일인 친구가 있었다. 이 친구는 전술한 러시아 영토인 '칼리닌그라드'에서 태어났고 국적도 원래 러시아 국적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독일인 후손이었던 그는 독일 국민이 되기를 희망했고, Torsten 같은 독일인 후손을 대상으로 독일 정부가 적용하고 있던 국적 회복법에 의해서 다시 독일인이 될 수 있었다고 했다.


그리고 그가 다시 독일인이 돼가는 과정에서 직접 경험했던 바에 의하면 독일은 이처럼 자신의 의사와 관련 없이 영토 상실로 인해서 어쩔 수 없이 독일 영토 밖에서 외국인이과거 독일인의 후손들에 대한 국적 회복에 책임을 지고 꽤 적극적이었다고 했고 또 그는 그것을 너무나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곤 했었다.


'디아스포라(Diaspora)'라 불리며 전 세계에 흩어져 사는 이스라엘의 해외 거주 유대인들에 대한 국적 회복 프로그램 귀환법(Law of Return)도 독일 경우와 마찬가지로 매우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스라엘 귀환법 관련 기사)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53958




중국의 민족이라면 당연히 한족(漢族)이 떠오르지만, 사실 중국은 중국 정부 공식 통계 기준만으로도 한족(漢族) 이외 55개의 소수민족이 존재하는 다민족 국가다. 물론 민족별 인구의 점유율에서 볼 때, 한족이 전체 인구의 약 92%를 점유하여 압도적으로 많고 소수민족은 불과 8%밖에 되지 않는다.


하지만, 영토 기준으로 보면 상황이 크게 달라지는데, 소수 민족이 원래 거주하던 영토가 중국 전체면적의 약 60%를 점하고 있어 현재 중국 영토의 반이 넘는다. 한족 국가였던 명나라를 정복한 만주족의 청나라가 인근 국가를 정복해서 명나라 시절 대비 중국 영토를 2배 이상 확대시켰고 이것을 중국 공산당이 그래로 물려받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과거 소련 붕괴 시 민족별로 소련 영토가 분리되어 해체되었듯이 청나라 이전에는 독립국이었던 중국의 소수 민족들이 다시 독립한다면 중국의 국토는 현재의 반조차 안 되는 수준으로 급격하게 줄어들 수 있다.


(원래 한족 영토와 청나라가 확장해준 영토 비교)

https://m.fmkorea.com/best/2891781333


그만큼 소수민족과 그들의 원래 영토는 중국 정부에게는 꽤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도 중국의 공산당은 소수 민족의 어떠한 분리 독립 움직임에 대해서도 초기부터 너무도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철저히 대응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중국에서는 우리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거민신분증(居民身分證)'에도 자신이 속한 민족이 표기된다. 즉, 자신이 조선족이면 신분증에는 '조선(朝鮮)'이라고 명기가 되고, 만주족, 장족, 회족, 묘족 등 다른 소수 민족도 마찬가지다. 인구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한족도 예외가 아니어서 자신이 속한 한족이라는 민족이 역시 신분증에 표기된다.


(중국 신분증)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luperbbk&logNo=220761333801&proxyReferer=https%3A%2F%2Fwww.google.co.kr%2F


신분증에도 공식적으로 표현되는 용어일 만큼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에 어떠한 부정적인 의미도 없다. 족(族)이라는 단어가 마치 원시 부족을 지칭할 때 사용되는 단어 같은 어감으로 한국어에서는 느껴지기도 있지만, 이와 달리 중국어에서는 단순히 민족이라는 의미를 갖는 단어로 일본에서 '조센징(조선인, 朝鮮人)'이라고 말하면 그 단어 자체에 이미 비하의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과는 다르다. 전체 인구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한족에 대해서 '한주(한족, 漢族)'라고 말하는 것이 중국에서는 어색하지 않은 것처럼, '챠오시엔주(조선족, 朝鮮族)'라 표현하는 것 또한 어색한 것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다소 부정적인 어감을 갖는 단어로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중국에서도 때로는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다소 불편하거나 부자연스러운 느낌이 들어 혼란스러운 경우가 생기곤 했다.


이런 문제로 고민하다 결국 가까운 조선족 친구나 후배에게 어떻게 부르는 것이 좋은 것이냐고 대놓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는데, 의외로 그들의 의견은 다양했다. '교포''동포'라 불러야 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그저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베이징에서 주재 근무하던 시절인 2006년 말 북한이 처음으로 핵폭탄 실험을 했을 당시 베이징에서도 그 사건이 당연히 큰 화젯거리가 됐었다. 그때 베이징 법인 인사부에 근무하던 조선족 직원과 이러한 북핵 이슈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직원은 중국은 북한과 혈맹관계로 북한에서 진행한 핵실험은 중국에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고, '당신들' 한국에만 문제 되는 일이라고 완전히 남의 일처럼 미소까지 지으며 얘기하는 것을 보고 좀 놀란 적이 있다.


조선족의 호칭에 대한 그녀의 의견 또한 자신들은 한국인의 동포나 교포가 아니라 그저 중국 55개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일 뿐으로, 중국에서 자신들이 조선족이라고 불리는 것처럼 한국인들 역시 자신들을 '조선족'이라 부르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조상은 우리의 동포였는데, 바로 그 동포의 후손인 그녀는 동포가 아닌 100% 완벽한 중국인으로 변해 있었던 셈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이스라엘이나 독일이 어쩔 수 없이 외국 국적을 갖게 된 해외 교포들을 자국민으로 다시 받아들이려는 노력을 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로 그러한 차이에서 만들어진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반면 비록 같은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지만 한국이나 북한의 문제를 자신들의 문제처럼 생각하는 조선족 직원들도 역시 있었다. 이런 직원들 의견은 대부분 중국에서는 조선족이라 불리더라도 한국인은 자신들을 '교포' 또는 '동포'라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었다.


결국 한국을 현재 자신이 속한 국가는 아니지만 고국 같은 국가로 생각하는 조선족들은 교포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는 의견이고, 이젠 자신을 한국이나 북한과는 완전히 분리된 100% 중국인으로 인식하는 조선족은 중국에서의 호칭과 마찬가지로 조선족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다는 그런 인식인 것 같았다.





한편, 또 다른 인접국가인 일본 거주 한국인 교민들 호칭과 비교해 볼 때 일본에서 일본인들이 일본 거주하는 한국인을 '조센징(朝鮮人)'이나 '강꼬구징(韓國人)'으로 부른다고, 우리도 그들처럼 일본에 살고 있는 교포들을 '조센징'이나 '강꼬구징'이라고는 부르지 않고 '재미교포'나 '재독교포' 같은 방식으로 '재일교포'라 부르고 있는 것을 보면,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 교포만 유독 중국에서 사용되는 명칭 그대로 조선족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이 사실 꽤 특이한 현상이기는 한 것 같다.


미국, 일본, 독일에 거주하는 교포들도 이미 현지의 국적을 받았든 아니든 관계없이 다 일관되게 재미교포, 재일교포, 재독교포라 부르는데, 왜 중국의 교포만 재중교포가 아니라 현지에서 부르는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여 조선족이라고 불리게 되었는지....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조선족의 경우처럼 한국인들이 '교포'라 부르지 않고, 현지에서 사용되고 있는 호칭 그대로 자연스럽게 부르는 해외교포가 또 있는데 바로 고려인이다.


고려인(高麗人)이란 이제는 러시아의 영토로 포함돼버린 연해주(沿海州)에 거주했던 한국인들로, 스탈린의 명령에 의해 당시는 소련 연방의 일원이었던 중앙아시아 지역으로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그 고려인들 스스로가 자신들을 '고려 사람'이라고 불렀던 것에서 그러한 명칭이 유래했다고 한다.


1937년 18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한국인이 러시아 극동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송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목포 인구가 약 22만이라 하니 거의 목포시 인구에 가까운 수의 한국인이 80여 년 전에 강제로 이주된 것이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강제 이주될 우발적으로 발발할 수도 있는 소요를 우려했던 소련 공산당은 저항할 가능성이 있거나 소요를 주도할 위험성이 있는 지식인 및 지도자급은 강제 이주 전 제거하라는 지시를 내렸고, 그 결과 수천 명의 지도자급 한국인들이 강제 이주 직전 학살되었다 한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 이후에도 기차를 타고 30~40일간 그 기나긴 시간을 중앙아시아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열악한 위생시설과 환경으로 또다시 수많은 고려인들이 목적지에 도착도 하지 못하고 이동 도중에 질병으로 사망했다 한다.


지금 들어도 생소한 국가 이름이 많은 곳이 중앙아시아인데 80여 년 전 그 당시에는 더더욱 들어 보지도 못했을 미지의 중앙아시아 땅으로 그러한 참혹한 강제이주를 당했음에도 현재 약 50만 명 정도의 고려인 후손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탄 등과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에 흩어져 살고 있다 한다.


얼마 전 일본군과의 전투를 승리로 이끈 만주 독립군 관련 '봉오동(鳳梧洞) 전투'라는 영화가 상영된 바도 있다. 바로 그 전쟁을 승리로 이끈 지도자 '홍범도 장군'도 1937년 그 당시 중앙아시아로 끌려간 18만 명의 고려인 중 한 명이다. 그는 1943년 10월 카자흐스탄에서 사망했다 하는데, 결국 위대한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도 '고려인'이라는 신분으로 이역만리 중앙아시아에서 독립운동가 생을 마감한 셈이다.


뿐만 아니다,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윤동주 시인과 문익환 목사 모두 출생지는 중국 연변 자치주이고 그곳 용정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중국은 이분들을 조선족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우리들은 이분들을 한국인 또는 동포로 받아들이지, 그 누구도 '고려인'이나 '조선족'이라는 호칭과 연계시켜서 생각하거나 기억하지 않는다.


조선족이 다수 거주하는 대림동 폭력조직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도 있을 뿐 아니라, 언론에서도 국내 거주 조선족이나 고려인의 범죄에 대한 기사를 자주 접하게 되는 것 역시도 사실이다. 실제로 한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이나 고려인 중에 범죄인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인 중에 조폭, 도둑 등 범죄자가 있다고 한국인 모두가 그런 범죄자는 아닌 것처럼 조선족이나 고려인 중에 그런 문제 인물이 있다고 조선족과 고려인 모두를 다 그렇게 볼 수는 없을 것이다.


얼마 전 젊은 한국인 남자가 서울을 방문한 일본인, 그것도 여성에게 정말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 장면이 여기저기 전파되면서 한국인에 대한 일본인의 비난이 급등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한국 남자가 그처럼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결코 아닌데 일본인들이 그런 영상을 보면서 대부분의 한국인 남자는 그렇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답답하기도 했다.


(한국인의 일본 여성 폭행 관련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lhPm29qV2SU

한국에 사는 한국인이 각각 개인으로 평가받고 판단돼야 하는 것이 타당하듯이, 중국이나 중앙아시아에 거주하다 온 조선족이나 고려인도 각각 그들 개인의 성향이나 인품으로 평가받고 판단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해외에 살 수밖에 없었던 우리 동포들은 일본에서는 차별과 수모 속에 살면서 '조센징'이라는 이유로 수천 명이 학살된 관동대학살(關東大虐殺)이란 사건까지 겪어야 했다.


(관동 대지진과 조선인 학살)

https://m.terms.naver.com/entry.naver?docId=1008012&cid=62089&categoryId=62089


또 중국에서는 마적단에게 약탈당하거나 '까오리방즈(高麗棒子, 고려 몽둥이)'라고 불리는 멸시와 모멸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일본군으로 징용되어 만주에도 한때 계셨던 아버님은 중국인으로부터 한국인은 일본인의 앞잡이로 간주되어서 그런 이유로 중국인들의 죽창에 찔려 죽는 한국인들을 직접 보기도 하셨다 했다.


(중국 조선족 고난사)

https://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108554


심지어 역사적으로 별다른 접촉도 없었던 러시아에서조차 전술한 것처럼 18만 명에 달하는 동포들이 마치 짐짝처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당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수천 명이 학살당하거나 질병으로 사망하는 끔찍한 일도 겪었다.


(고려인 강제 이주)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9419989?sid=103


일본,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에 거주하는 우리의 동포들은 모두 이처럼 당할 만큼 당했다. 그런데 만일에 동포들이 미국인이었거나 소련인이었다면 그렇게까지 학대당하지는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미국이나 소련과 같은 강력한 국가로부터의 보복이 두려워서라도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을 책임질 국가가 식민지배를 받아 없어졌거나, 혹 있어도 당시 너무나도 약한 한국이라는 국가의 국민으로 태어났기에 그들은 그렇게 뿔뿔이 흩어지고 당하면서 살게 된 것이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25년 평안북도 정주에서 태어나신 아버님께서 돌아가시기 전 이런 말씀을 하셨다....


"내가 일제 강점기 북한에서 태어나 일본군으로 징용되어서 만주에 끌려갔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대학을 다니려고 서울로 오는 바람에, 서울에서 살던 네 엄마를 만나 결혼해 너를 낳은 것이다. 그러다 보니 네가 한국사람이 된 것인데, 만일에 내가 북한 고향에서 결혼했으면 너는 북한 사람이고 만주에 있을 때 결혼해서 거기에서 살았으면 너는 조선족이 되었을 것이다. 또 일부 친구들처럼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살았으면 넌 조센징이 되었을 것이고, 연해주에 살았으면 너는 중앙아시아로 끌려가서 고려인이라고 불리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약하고 한때는 주권조차 없었던 불쌍한 한국인의 후손으로, 나 역시 아버님의 과거 선택에 따라 북한 사람도, 조센징도, 조선족도, 고려인도 될 수 있었다. 어쩌다 보니 한국 사람이 되었을 뿐이다.


재중교포, 조선족, 고려인, 그들을 어떻게 부르는지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부정하려고만 해도 어차피 뿌리가 같은 한국인일 뿐이다.


한국의 어떠한 역사과정 속에서 그들이 어떻게 그러한 곳에 거주하게 되었고, 어떤 시련을 겪었으며, 왜 명칭으로 불리는지에 대해 조금만 관심을 갖고 어떤 호칭을 택할지를 결정한다면 사실 그 호칭 자체는 별 의미가 없는 부수적인 문제일 뿐일 수도 있는 것이다.


중앙아시아로 끌려가서 이국 땅에서 '극장 수위'로 살면서 생을 마감해야만 했던 봉오동 전투의 영웅 '홍범도 장군'은 고려인이었고 윤동주 시인, 문익환 목사는 코미디 방송에서 어눌한 말투를 사용하는 대표적인 지역으로 자주 묘사되는 중국 연변 자치주에서 태어나고 자라신 분들이다.


우리 중에 누구도 이분들과 이분들 후손이 포함된 조선족과 고려인을 뭉뚱그려 너무 편하게 비하하거나 폄훼할 자격은 없는 것 같다....


(홍범도 장군 고려인 외손녀 언론 인터뷰)

https://www.hankookilbo.com/News/Read/201904091509020272


(윤동주 시인 호칭 관련 논란)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524901

https://www.yna.co.kr/view/AKR20190801108100371



keyword
팔로워 270
이전 09화'Gong Chan Dang'이란 단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