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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Jun 12. 2022

이촌동 연가 (16)

■ 70년대 이촌동 살던 한 여학생의 인생

1970년 누님이 초등학교 5학년이던 시절 우리 가족은 서울 성북구 돈암동에서 용산구 이촌동으로 이사를 왔고 누님은 이촌동의 유일한 초등학교인 신용산 초등학교에 편입해 그 학교를 졸업했다. 그리고 중고등학교 시절을 이촌동에서 보내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누님은 운동 실력이 워낙 대단해60~70년대 그 어렵던 시절에도 초등학생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기도 했다. 게다가 운동만 잘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았, 공부 역시 너무 잘해서 초중고 시절 전교 일등을 여러 차례 하기도 했었다. 사실 나도 공부는 좀 했던 편이었지만 마디로 그 시절 누님의 출중함에는 비교도 되지 않았고 어린 시절은 집에서 누나를 좀 닮으라는 부모님 말씀을 귀가 닳도록 들으며 살아야 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뿐만 아니었다. 학교에서도 마찬가지 신세였는데 오죽하면 신용산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내내 선생님들이 부르는 내 이름이 '미라 동생'이었다.... 누님 이름이 '미라'인데 그 유명한 학생의 동생이라는 것이 내 이름이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너무도 대단한 누님을 둔 덕분에 내 이름도 없이 그저 누군가의 동생이란 희한한 이름으로만 초등학교를 다니다 졸업해야 했었다.


사진) 초등학교 시절 피겨스케이팅 선수로 활약하던 누님.


사진) 누님이 상을 받는 모습 및 학생 대표 선발돼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 주관 행사에 참석한 모습.


우리가 한강 맨션에 살던 시절에는 방이 3개 있었다. 그 3개 방 중 부모님께서 한 방을 쓰셨고, 누님이  혼자  방을 사용했으니, 동생과 나는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남은 한 방에서 같이 지내야만 했었다. 그런데 물론 누님이 우리 삼 남매 중 유일한 여자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 외에도 누님의 권위우리 집에서는 워낙 고해서 동생과 나는 항상 한 방을 써야만 했던 것에 대해 어떠한 불평도 제기할 생갓조차 지 못했다. 그저 너무도 당연한 것으로만 받아들였던 것이다.


아래 사진은 그 대단한 누님이 70년대 중학생 시절 한강 맨션 누님의 방 커다란 책상 앞에 앉아서 찍은 사진이다. 사진 속 분위기에서도 느껴지는 처럼 당시 누님은 못하는 것이 없는 정말 똑 소리 나는 수재로 나와 동생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대단한 소녀였다.


사진) 누님 방 책상에 앉아 찍은 누님 모습. 1970년대 한강 맨션 17동 403호 방 안의 모습은 이렇게 생겼다. 사진 속 지구본과 책장, 전등 등 모두가 아직도 기억에 너무나 생생한데 이 모든 것들은 세월과 함께 다 사라져 버렸다. 


이촌동에는 1969년 개교한 용산 여중이란 학교가 있는데 70년대 당시 중학교 입학은 거주지 인근 학군에 소속된 학교 중에 추첨으로 결정되었다. 누님과 부모님은 당연히 집에서 너무도 가까운 이 용산 여중에 입학되기를 간절히 희망했었다.


하지만 추첨 결과 누님이 배정된 학교는 의외로 이촌동에서는 정말 먼 곳에 있는 관악구 신림동 신림 여중이었다. 당시 우리에게는 꽤나 생소한 지역이었던 한강 건너 지역의 중학교를 다녀야 했던 것이었다. 참고로 압구정동 현대 아파트가 1982년, 반포동 반포 아파트가 1974년 완공되었으니 누님이 한강 건너 신림 중학교 다니던 70년대 초에는 한강 이남에 이런 아파트들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그 지역은 그저 허허벌판이었을 뿐이었다.


사진) 한강 맨션에 살던 시절 가족과 함께 찍은 누님 사진. 당시 여중생들은 무조건 단발머리를 해야 했는데 누님도 신림 여중에 입학한 단발머리로 학교에 다니던 시절이었다.


사진) 신림 여중에 막 입학했을 때 한강 맨션 우리 집 앞에서 찍은 사진. 1971년 경 사진이다.


사진) 한강 맨션 옥상에서 찍은 누님 사진. 1972~3년 경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 한강 맨션 우리 집 베란다에서 누님이 동생과 찍은 사진 1972~3년 경 사진이다.


사진) 2000년 경 철거되어 사라진 이촌동 한신 아파트에 살던 시절의 누님 모습. 1973년 경 사진이다.


한편 중고등학교 시절 사진 거의 모두를 분실한 내 경우와 다르게 누님의 70년대 중고등학교 시절 사진은 꽤 많이 남아있다. 아래 사진들이 바로  사진들인데 70년대 여학생의 당시 학교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


사진) 교복 하복을 입고 찍은 누님의 독사진과, 동복을 입고 교실에서 도시락을 먹는 모습. 1971~2년 사이의 사진으로 보인다. 정말 오랜만에 보는 70년대 여중생 교복이 꽤나 반갑다.


사진) 누님이 학교에서 사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체육대회 같은 행사가 열리는 날 찍은 사진인 듯하다. 한편 사진 속 학교 주변은 온통 숲과 허허벌판 그 자체인데 현재 산림동 이 학교 주변이 온통 고층 아파트 단지로 바뀐 것을 생각하면, 상전벽해,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사진) 교내 체육대회를 하면서 이러한 가장무도회도 같이 개최되었던 것 같다. 첫 번째 사진에 누님과 함께 정면을 보고 있는 여학생은 나중에 '미스코리아가 진'이 되어 유명 인사가 된 김 OO라는 분이다. 사진에 1972년이라고 적혀 있으니 50년 전, 즉 반백년 전 사진이다.


사진) 1972년 신림여중 여중생들 모습. 한국 베이비부머 세대가 한참 학교를 다니던 시절이라 학생수가 매우 많아서 한 반 학생이 60명이 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사진) 담임 선생님과 함께 사진 찍은 여중생들. 내 기억에는 없는데 여학생들이 이렇게 모두 바지만 입고 다니던 시절도 있었던 모양이다. 사진 좌측 키 큰 학생이 누님.


누님은 다행히 고등학교는 이촌동에서 멀지 않은 중구 정동 이화 여고로 배정받았다. 중고등학교 연속으로 이촌동에서 꽤나 멀리 떨어져 있는 보광동, 대방동의 학교를 다녀야만 했던 내 경우와는 그나마 좀 달랐던 것이다.


사진) 한겨울 눈과 함께 이화여고 교정에서 찍은 누님 사진. 이제는 60대 중반의 할머님이 된 누님에게도 이렇게 풋풋한 사춘기 여고생 시절이 있었다.


사진) 꽃 피는 봄날 교정에서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과, 요리 실습을 하는 모습. 70년대 누님의 찬란한 여고생 시절 모습이다.


사진) 꿈 많은 여고생 시절....


누님은 이화여고를 다니던 도중 정부에서 진행하는 프랑스 교환학생 제도에 선발되어서 프랑스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70년대 후반에는 해외로 여행한다는 것조차도 매우 드물던 시절이었는데 당시에는 한국과 비교해 너무도 선진국이었던 유럽의 프랑스에까지 유학 가서 공부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사진) 프랑스 유학 시절 찍은 누님 사진. 1978년 경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 프랑스에서 같은 반 학생들과 교실에서 함께 찍은 사진의 앞면과 뒷면. 사진 뒷면에는 사진에 등장하는 학생들 이름 모두가 불어로 적혀있다, 크리스틴, 엘리자베스, 니콜 등등....


그런데....

이런 누님의 인생 앞에는 정말 너무도 청나고 끔찍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꿈 많은 삶을 살던 누님이 20대 나이 들어서면서 정신병 중 하나인 조현병에 걸리는 운명을 맞이하되었던 것이었, 그리고 6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지금까지 무려 40여 년간 성인이 된 이후의 인생 거의 전부를 누님은 병으로 시달리는 살아가고 있다.  


사람운명은 아무리 생각해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렵고 또 때로는 받아들이기도 어려운 것 같은데, 수십 년간 지속된 병으로 이제는 거의 폐인이 다 된 누님이지만 그래도 한때는 이렇게 멀쩡한 정신과 모습으로 미래에 대한 온갖 꿈과 기대가 가득했던 소녀 시절이 누님의 인생에도 분명있었던 것이. 전혀 멀쩡하던 그 시절로 결코 다시 돌아갈 수 없으니 그저 애통할 뿐이다.

                     

사진) 70년대 초 수재로 불리며 이촌동에 살던 꿈 많은 10대 시절의 누님 모습과, 세월이 흘러 60대 나이가 되어 40여 년째 조현병에 찌든 삶을 살고 있는 최근의 누님 모습.


믿기지 않을 정도지만 이 두 사진은 분명 같은 사람의 사진이다. 그런데 이렇게 허망하게 변모한 누님의 모습을 보면 인생 자체가 원래 참 허망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어쩔 수 없이 갖게 된다....


일장춘몽(一場春夢)....

호접지몽(胡蝶之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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