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사라졌지만 70년대 초등학교에서는 매주 한 번 아침 일과 시작 전에 전교생이 모두 운동장에 모여 조회'라는 것을 실시했었다. 조회가 있는 날은 교장 선생님께서 운동장에 있는 연단에 오르셔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장 훈시를 하시곤 했었는데 훈시가 좀 길어지는 날에는 체력이 약한 아이들은 갑자기 픽픽 쓰러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신용산 초등학교에서도 역시 그 시절 조회가 실시되었는데 아래 사진은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에서 실시되었던 바로 그 조회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얼굴 모자이크 처리를 하지 않은 어린이가 내 동생인데, 반장이라서 맨 앞으로 나와 서있는 모습이다.
사진 속 동생 신발에 흙이 잔뜩 묻어 있는 것을 봐도 알 수 있지만, 이제는 보기 좋은 파란 인조잔디가 깨끗하게 깔려 있는 신용산 초등학교 운동장도 70년대 모습은 그저 이렇게 흙바닥이었다. 그런데 사실 학교 운동장뿐만이 아니었다. 그 당시는 이촌동 동네 곳곳에도 그저 맨 흙바닥이었던 공간이 꽤 있었다. 한편 자세히 보면 왠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유독 내 동생 신발만 더 흙이 더덕더덕 묻어있는 것 같다....
사진)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아침 조회모습.1974년 경 사진으로 보인다.
사진) 조회가 끝나고 담임 선생님 및 학급 간부들과 함께 찍은 사진. 동생 왼쪽의 키 큰 친구는 신용산 초등학교 야구부 선수로 1루수였다.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에 다니던 아이들 모습이다.
사진)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졸업식 모습.1972년 10대의 나이에 신용산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이렇게 졸업 사진을 찍던 누님은 5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이제는60대 중반 할머님이되었다.
사진) 졸업식에서 누님이 상을 받는 모습.요즘 신용산 초등학교 교실 모습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70년대 모습은 이랬다.
사진) 신용산 초등학교 친구들과 함께 소풍 갔을 때 찍은 사진들. 1972년쯤 아닌가 싶은데 요즘 아이들과 다른 70년대 아이들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사진 속에는 지금도 기억나는 얼굴들이 보이는데 이제는 그들이나 나나 모두 퇴물 취급받는 신세가 됐지만 그런 퇴물들에게도 이렇게 파릇파릇한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세대에게도 이런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왠지 꽤 생소하게만 느껴진다....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녔던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겠지만, 초등학교 시절 매년 갔던 소풍을 생각하면 지금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음식이 두 개 있다. 바로 '바나나'와 '김밥'이다.
특히 바나나는 당시 너무도 비싸서 소풍과 같은 정말 특별한 날이 아니면 평상시에는 결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과일이었다. 그 시절 소풍 전날,어머님께서는소풍날 아침에 만들 김밥 재료를미리 준비해 놓으셨고 또 바나나도사놓곤 하셨는데 그 바나나의 달콤한 향기에 취해서 전날 밤부터 이미 그 바나나 먹을 생각에 온통 마음이 설레곤 했던기억들이 지금도 떠오른다.도대체 그 시절 그리도 비싸고 귀했던 바나나는 왜 그리도 맛있었는지....
그런데 그렇게 귀하고비싸던 바나나가어느날 갑자기너무도싼 과일로 전락하는대사건이 있었다. 바로91년 수입자유화 조치가 시행되면서부터저가바나나가 동남아 등해외에서 대거 유입되었던 것이었다. 그 이후 바나나는 신세가 완전히 바뀌어 70~80년대 최고급 과일 대접받던 신세에서 요즘처럼 그저 흔하고 비싸지 않은 여러과일 중 하나로인식되는 그런 신세로 처지가 완전히 역전되었다.
70년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일 년에 한 번 소풍 때에나 겨우 바나나 한두 조각 구경할 수 있었던나 같은 세대의 사람들에게는 나름 꽤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사진) 졸업 앨범에 실린 70년대 신용산초등학교 학생들모습. 조회하는 모습도 보이고 또 학교 운동장 주변으로 이제는 사라진 5층짜리 공무원 아파트 모습도 보인다.
사진)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뒷마당에 있던 작은 동물원과 그 앞에서 찍은 동생과 친구들 모습. 1973년 경 사진으로 보인다. 이 동물원은 이후 철거됐지만,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뒷마당에는 이렇게 동물원까지도 있었다.
사진) 역시 70년대 교장 선생님과 학생 간부 학부형들이 신용산 초등학교 교정에서 찍은 사진. 요즘은 보기 어려운 문구지만 사진 뒤 배경에는 '승공통일'이라는 어린 시절 너무도 자주 보던 큼지막한 문구도 보인다. 70년대는 저런 문구가 초등학교 도처에 붙어 있던 시절이었다.
지금도 남아있지만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와 이촌 시장 사이에는 좁은 길이 하나 있었고 이 길 옆에는 문방구들이 서너 채 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초등학교 다녔던 시절에는 우리 모두 그 문방구들에 너무도 번질나게 들락날락거렸다. 문구용품, 실내화, 과제물 등이 모두 준비되어 있었을 뿐 아니라, 간단한 놀이 기구까지도 마련되어 있어서 적어도 하루에 한 번은 꼭 방문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 문방구들은 모두 다 사라졌고 대신 그곳에는 식당, 커피숍들만 즐비하게 들어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요즘 세상은 초등학생들에게 문방구도 필요가 없는 그런 세상이 된 것인지 좀 많이 의아스럽기도 했다.
사진) 신용산 초등학교 옆 골목길. 70년대 이 골목에 즐비하게 있던 문방구들은 모두 다 사라졌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와 그 학교의 학생들 모두 그대로 있는데, 오직 문방구만 없어진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신용산 초등학교 근처뿐 아니다, 인근 용강 중학교, 중경 고등학교 근처 어디에도 문방구는 없었다. 요즘 학교 시스템은 잘 모르지만 어쨌든 이런 모습은 문방구와 함께 학교 생활을 했던 나 같은 구세대에게는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이었다.
신용산 초등학교와 시장 사이 골목길의 사라져 버린 문방구들과 함께 그 문방구들을 뻔질나게 이용했던과거 세대들도이제는 기억 속으로 사라져 가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