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벌판이던 이촌동 모래사장에 1967년 1,000세대수준의 공무원 아파트가 들어서고, 연이어 또 다른 대단위 아파트 단지인 한강맨션, 민영 아파트도 각각 1970년과 1971년 들어서게 되었다. 아울러이촌동 거주 인구가 이처럼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초등학교도 마침내 1968년 처음으로 이촌동에 설립되었다.
그 초등학교가바로'신용산 초등학교'인데이 학교는 2022년 현재까지도 그때와 같은 이름으로, 그때와 같은장소에서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나 역시 이 학교를 다녔고 또 졸업도 했지만, 반백년도넘게 이 학교는 이촌동 어린이들을 키워왔던 셈이다
사진) 70년대 중반 신용산 초등학교 모습. 사진 오른쪽 건물은 초창기에는 없었고 나중에 세워진 건물이다. 원래 오른쪽 건물이 있던 곳에는 철책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미군 헬기장이 있어서 교실 바로 옆으로 헬기들이 빈번하게 이착륙했는데 그 소리가 너무도 시끄러워 수업이 중단되기도 할 정도였다
물론 내부는 여러 차례 보수가 되었겠지만, 이 학교 건물은 1968년에 건축된 바로 그 건물이2022년 현재까지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다. 나는 돈암동에 살다가 가족이 이촌동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이 학교로 70년대 초반 3학년 때 전학 왔다. 그런데 초등학교 3학년 당시 내가 수업 듣던 그 교실이 지금도 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면 그 안에서 수업받던 40~50년 전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불현듯 떠오르기도 해서 뭉클한 감정이 복받치기도 한다. 내게도 그런 유년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한편 이 학교 교정을 볼 때마다 느끼는 한 가지 신기한 점은 어린 시절 내가 이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교정에 있던 나무들이 정말로 큰 나무들로 보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커서 보니 의외로 그렇게 큰 나무들이 아니어서 꽤 의아했던 적이 있다. 몸집이 작은아이들에게는그만큼 주변 사물이 커 보이는 것인지 아니면 교정의 나무 자체가그 사이에 바뀌어버린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 학교에서 참 많은 경험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추억들이 있는데, 이 학교를 떠난 지 이미 40년이 훌쩍 넘은 요즘도 이 학교 운동장에서는 70년대 우리 세대가 뛰어놀던 것처럼 세월의 흐름과 무관하게 변함없이 뛰노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안타깝지만 그 아이들도, 나와 내 친구들이 이미 그랬던 것처럼, 세월이 흐르면서 언젠가는 나 같은 나이 든 구세대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흘러가는 무심한 세월들과 함께 물러나야 할 사람들은 과거 기억 속으로 물러가고또 새롭게 등장할 사람들은등장해서 새로운 주인공이 되고....그들 또한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물러나고....
이 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경험 중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왈츠곡이다. 당시 점심시간이 되면 교내 방송으로 클래식 음악이 방송되곤 했었는데, 그때 가장 자주 방송됐던 곡들이 왈츠곡이었던 것이다. 당시는 물론 음악에 대해 아직 제대로 알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그렇게 점심때 교정에서 듣곤 하던 왈츠곡들이 어린 내게도 꽤 감미롭게 들렸던 기억이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점심 도시락을 허겁지겁 먹은 후 햇살 가득한 운동장에 나와 친구들과 놀면서 감미로운 왈츠곡을 듣곤 하며 70년대 초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그 시절은 이제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귀한 시간이었는데, 그 시절이 그토록 소중하고 귀했다는 것을 그때는 왜 좀 더 절실하게 깨닫지 못했을지.... 지나고 나니 아쉬움만 양손에 한가득이다....
사진) 최근 찍은 신용산 초등학교 모습. 70년대 사용되었던건물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단, 운동장은 과거에는 그냥 흙바닥이었는데 이제는 멋진 인조 잔디로 바뀌어 있다. 이 교정 사진을 오래 보고 있다 보면 마치 70년대 바로 이 교정에서 찬란한 햇살 아래 듣던 왈츠곡이 지금도 나지막이 들리는 것 같은 환청을 느끼기도 한다....
사진) 현재로부터 약 22년 전 2000년에 한가람 아파트 214동에 거주하던 시절 신용산 초등학교를 내려다보며 찍은사진. 이 시절만 해도 운동장은 아직 인조잔디가 깔리기 전이었고, 초등학교 안의 건물도 현재와 다르게 두 채뿐이었다.
사진)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운동장과 건물 모습. 친구가 담임선생님과함께 찍은 사진인데, 사진 속 저 작은 소년은 성장해서 치과 의사가 됐다.
1974년 찍은 것으로 보이는 이 사진을 자세히 보면, 사진 뒷부분의 각 교실 창문 밖으로 길게뻗어 나와 있는 난로 굴뚝들이 유난히 커 보인다.70년대 그 당시는 실제 겨울 날씨도 요즘보다 더 추웠지만 난방 시설이 요즘처럼 잘 되어 있지 않아서 겨울에는 정말로 춥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한겨울에도 실내에만 들어가면 어느 곳이나 따뜻하게 난방이 잘 가동되는 요즘과는 많이 다른 시절, 세상이었던 것이다.
70년대 신용산 초등학교 교정에서 이렇게 사진을 찍었던 어머님과 동생도 세월이 흐르면서 이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작고 왜소하던 동생은 90 kg이 넘는 거구의 어른으로 성장한 후 나이 불과 46세에 뇌출혈로 갑자기 이 세상을 떠났고, 희미한 미소를 짓고 계신 당시 45세였던 어머님은 올해 그 연세의 두 배가 넘는 92세가 되셨다.
신용산 초등학교 교정에서 가족들의 이런 모습을 보던 시절이 불과 몇 년 전, 불과 얼마 전인 것 같은데, 시간은 이미 그렇게 후다닥 수십 년이 흘러가버린 것이다....
사진) 먼저 이 세상을 떠난 동생이 살아생전 모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찍은 사진. 초등학교 다닐 때 왜소했던 동생은 흘러간 세월과 함께 체중 90kg이 넘는 거구의 아저씨로 변모했다.
사진) 80대 후반에 찍은 어머님의 모습. 위 사진 속의 45세 당시에는 새까맣던 머리카락이 역시 세월과 함께 완전히 백발로 변해버렸다.내 머리카락도 이미 흰 머리카락이 가득할 정도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