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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LT Dec 12. 2019

보이지 않는 손

■ 그 주재원의 서글픈 기억들 (2편 Toronto-19)

해외 주재 근무 14년간의 기억을 적은 이야기

Paris, Toronto, Beijing, Guangzhou, Taipei,

Hong Kong, Macau

그리고 다른 도시들에서의 기억......



Toronto



19. 보이지 않는 손


경제학자 Adam Smith가 말했다는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대해 학창 시절 배운 기억이 있다. 그런데 경제학적 의미로서의 그러한 '보이지 않는 손'이 아니라, 결정적 순간 인간을 삶과 죽음 두 가지 방향 중 한 방향으로 인도해 주는 또 다른 의미의 '보이지 않는 손'도 있는 것 같다.

 

캐나다 주재기간 중에 한 번의 교통사고를 실제로 겪었고, 사고로까지는 연결되지 않았지만 조금만 차이가 있었어도 정말 '죽음'으로 갈 수 있었던 교통사고를 겪을 뻔했던 적이 두 번 있었다. 그런데 세 번의 경우에서 모두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삶'의 방향으로 나를 이끌어 주어서 아직은 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하는 길에 붉은 신호등을 보고 차를 세워서 기다리고 있는데 뒤에서 오던 차량이 정지되어 있던 내 차를 그대로 받은 적이 있다. 내 차가 정차하자마자 받은 것도 아니고 정차하고 꽤 시간이 지난 후에 받았으니 바로 뒤에서 오던 차가 살짝 받은 것도 아니고 한참 뒤에서 오던 차가 운행하던 속도 그대로 내 차를 받은 것이었다.


만화에서 보면 둔탁한 물체 등으로 사람의 머리 부분이 큰 충격을 받을 때는 머리 주변에 별이 뱅뱅 도는 것으로 종종 그려지는데, 나 역시 그날 받히는 바로 그 순간 실제 내 눈 주변에서 뭔가 번쩍이는 별 같은 것이 보이는 것 같았다.


어쨌든 정신을 차리고 내려서 보니, 어떤 승용차가 내 차량 뒷부분을 받은 다음 멈추지 않고 더 전진해서 내 차 밑으로 파고 들어와 있었다. 당연히 내 차 뒷면 심하게 그러진 상태였다. 내 차를 받은 차는 좀 작은 차였는데, 내 차보다 파손 정도가 훨씬 더 심해 전면이 완전히 우그러져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가 안전벨트를 하고 있었고 또 내 차를 받았던 그 뒤차가 소형차라서 그런잠깐 동안 별을 봤던 것 외에는 몸에 별다른 이상을 느끼지는 않았다.


뒤차 운전자는 중년의 백인 여성이었는데, 그녀도 에어백이 적시에 터져서 그랬는지 아무런 외상이 없었다. 단지 너무 놀라서인지 차 옆에 그저 멍하니 서 있었다. 이후에 어떻게 일이 진행되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누군가가 보험사와 경찰로 연락을 했던 것 같았 순식간에 보험사와 견인차 경찰이 왔다. 당시에는 차량용 블랙박스가 없던 시절이었지만 신호등 앞에 정지해 있던 차를 후면에서 받았으니 누가 봐도 사고 경위가 명백한 상황이라서 조사는 빠르게 종료되었던 것 같다.


사고 이후 그래도 병원에 가서 정말 이상이 없는지 한 번은 검진을 받아 봐야만 한다는 주변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나는 검진을 받지는 않았는데, 그다음 날 하루 정도 목 부위가 좀 불편했던 것 이외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이후 15년도 넘게 경과한 현재까지 별 이상이 없으니 그 사고로 인한 문제는 다행히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만일 그날 아침 급하게 출근하느라고 안전벨트  것을 깜빡했다면 차 트렁크가 우그러질 정도의 충격으로 내 머리는 아마도 차 운전대에 정면으로 부딪혔을 것이고 만일 그랬다면 결코 무사하지 만은 않았을 것이다. '생'과 '사'가 갈아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어떤 보이지 않는 손이 나를 '생'으로 이끌어준 셈이었다   




부임 초기에 아파트를 구하기 전 토론토에서 하숙 생활하며 회사로 출퇴근할 때 토론토에서 미시소거까지 401번 고속 도로를 타고 운전하고 다녔다. 그때 바로 이 고속도로에서 겪었던 일이다.


당시 는 1차선에서 주행하고 있었는데, 내 차의 왼쪽에는 콘크리트로 만든 두꺼운 중앙 분리벽이 있었고, 오른쪽에는 캐나다의 대륙횡단 장거리 운송을 하는 초대형 트레일러가 주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우측의 초대형 트레일러가 내 차선 쪽으로 서서히 미끄러지듯이 밀고 들어오는 모습 보였다.


기억은 정확히 나지 않지만 나는 너무 놀라 경적을 울리고 소리치고 그랬던 것 같은데 다행히 경적 소리를 었는지 그 트레일러는 황급히 원래 주행하던 2차선으로 돌아갔다.


아마 이른 아침 시간, 장거리 운전에 지친 운전기사가 너무 피곤해서 깜빡 졸았던 것 같은데 그 트레일러가 빠져나가는 시점이 몇 초만 더 늦었어도 오른쪽에서 밀고 들어오는 그 초대형 트레일러와 콘크리트로 된 중앙 분리벽 사이에서 내 차는 휴지처럼 찌그러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안에 있던 내 운명은 뻔했을 것이다. 역시 보이지 않는 손이 다시 한번 '삶'으로 나를 이끌어준 경우다.




스스로 자초한 미련함으로 위험에 빠진 경우도 있었다. 비 오는 날 좀 늦게까지 야근하고 한밤중에 퇴근하면서 인적이 없는 도로를 지날 때였는데, 도로 위에 비가 많이 와서 생긴 깊이는 아무리 깊어도 몇 센티미터 정도밖에 안 되겠지만, 길이는 약 20여 미터 정도 되는 결코 짧지 않은 물 웅덩이가 있었다.


당연히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조심해서 그 웅덩이를 지나는데, 그날은 정말 뭔가에 씌웠었는지 다른 차도 없으니 이럴 때 저런 웅덩이 물속을 빠른 속도로 지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테스트해보자는 황당한 생각이 문뜩 들었다.


결국 그 위험한 생각대로 물 웅덩이 앞에서도 속도를 전혀 줄이지 않고 오던 속도로 그대로 주행했는데 결과는 당연히 무서웠다. 웅덩이에 진입하자마자 차는 좌우로 급격하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핸들이나 브레이크 아무것도 작동되지 않고 모두 헛돌았다. 비록 10cm도 안 되는 깊이였겠지만, 과속으로 달리다 보니 차바퀴가 웅덩이에 고인 물 위에 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된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바닥과의 마찰이 전혀 없었을 것이고, 마찰이 없다 보니 브레이크나 핸들이 전혀 먹혀 들어가지 않았던 것 같았다.


사람이 이렇게 죽는구나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는데, 당시 아직은 내가 더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었는지, 좌우로 급격히 요동치던 차는 잠시 후 아무것에도 부딪치지 않고서 멈춰 섰다. 정말 미련한 행동을 스스로 택했음에도 마지막 순간에 보이지 않는 그 손이 다시 한번 '삶'으로 날 끌어준 것이었다.


캐나다 운전면허증. 이 면허증을 가지고 다니며 캐나다에서 운전하다 3번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돌아온 적이 있다.




그런데 그렇게 죽음 직전까지 고비는 생각을 보니 한국에 있을 때도 몇 번 더 있었다.


한국 본사에서 근무할 때 퇴근 후에 동료들과 술 한잔 하고 집에 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 기다리던 중 술 김에 넘어진 적이 있다. 넘어지면서 내 머리가 차도에까지 밀려 나갔 바로 그때 도로를 달리던 차의 타이어가 '슝~~'하고 머리 바로 옆으로 스쳐가는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조금만 더 도로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면 결과는 뻔했을 다.


군 복무할 때 휴가 나와서 은행알을 한 그릇 가득 볶아 먹고 병원에 실려 간 적도 있다. 식당에서 비싸게 파는 은행알을 한번 맘껏 먹어 보려고 작정하고 시장에서 잔뜩 사와 볶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깨 보니 병원이었던 것이다. 이후 나중에 들은 얘기는 어머님께서 주무시다가 어디선가 '쿵' 하는 소리가 들려서 나와서 보니, 내가  방문 앞에 엎어져 있었다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몰랐는데 은행알에는 독이 있어 적당량을 먹으면 약이 되고 몸에 좋지만, 한 번에 지나치게 너무 많이 먹으면 그 독으로 심하면 사망할 수도 있다 한다. 하지만 너무나도 다행히 전혀 의식이 없음에도 방문을 열고 나와 쓰러지면서 넘어지는 소리를 어머님께서 듣게  것이다. 만일 그날 밤 방 안에서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면 다음날에는 아마도 이미 다른 세상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를 것이다.  


(은행알 독성)

https://mnews.joins.com/article/9304327#home


시청 앞에 있던 본사 인근의 식당에서 찌개를 는데, 호두 만한 깨진 유리를 입안에서 발견한 적도 있다. 뭔가 딱딱한 것이 있어 뱉어 냈는데 칼날처럼 날카롭게 깨진 유리였다. 만일 그걸 그대로 삼켰으면 그 날카로운 유리조각이 식도, 위, 장 등 여러 장기를 지나가면서 어느 한 곳도 성한 곳이 없게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입안에조차도 아무 상처 없는 상태로 뱉어낼 수 있었다.




사람들이 살다 보면 한 번 이상렇게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간발의 차이로 벗어나는 경험을 했을 것이고, 또한 앞으로도 그런 경험을 다시 하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렇게 간발의 차이로 죽음에서 벗어났다는 얘기는 뒤집어서 말하면 그 간발의 차이로 죽었을 수도 있었다는 얘기인데, 그때 어떤 미지의 '보이지 않는 손'이 그 간발의 차이에서 아직까지는 '삶'방향으로 이끌어  셈이다.


하지만 인간의 생명이 무한할 수는 없을 것이고, 언젠가는  '보이지 않는 손'갑자기 우리를 죽음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날도 반드시 오게 될 것다.


아직 그날이 오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그날이 마침내 오기 전에, 한두 번도 아니고 그렇게나 여러 번 생사가 갈라질 수 있었던 결정적 순간에 보이지 않는 손이 번번이 삶으로 나를 이끌어  이유가 무엇이었는한 번은 생각해 봐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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