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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게으른 산책가 Dec 10. 2023

10. 그들만의 일급비밀


수빈이에게 다시 신나는 일이 생겼다. 저녁마다 먹는 ‘키크니 한약’은 예전처럼 쓴 맛이 아니었다. 투덜댈 시간이 있다면 얼른 해치워버리는 게 낫다. 동생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마음이 바뀌었다.


부엌 미닫이문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더 이상 수빈이 이야기는 나오지 않을 거다. 순순히 '네'라고 했으니 말이다. 수빈이는 뒤꿈치를 들고서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자마자 외계 친구들은 쏜살같이 수빈이 방으로 들어왔다. 빛의 속도를 눈앞에서 보다니. 들킬까 봐 쏜살같이 움직이는 앤트리오와 그 위에 조그맣게 웅크리며 올라탄 아이맥스가 귀여웠다.

“야, 너희들 오늘 행운인 줄 알아.”

“왜?”

“내가 오후에 삶은 계란을 먹었거든. 엄마, 아빠가 등산 간다고 간식으로 계란 삶아서 몇 개  먹었더니 뱃속이 부글부글하네. 하하하!”

“부글부글? 배가 빵빵하게 부푼단 말이지? 알았어, 기대할게. 네가 하는 말 중에서 ‘부글부글’ 이란 말은 우리를 설레게 해. 우리도 네가 좋아하는 산소를 많이 만들어줄게. 방귀 선물 몇 개 포장하고, 우리끼리 실컷 마시자.”


수빈이는 방귀 좋아하는 외계인과 친구라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일급비밀을 혼자만 알아야 한다는 것은 너무 힘든 일이다. 흰둥이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지구인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면, 외계 친구를 가까이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외계 친구들이 주는 산소 맛에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한다. 수빈이가 방귀를 뀌기 위해 마구 먹어대야 하는 게 몸에 좋지 않듯, 아이맥스와 앤트리오가 산소를 많이 뿜어내야 하는 게 좋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수빈이는 수학 문제집을 펼쳤다. 수학 문제는 언제나 암호 같다. 하지만 외계인과도 친구가 될 수 있는데 수학 문제의 암호쯤은 풀어낼 수 있겠지. 수빈이는 해답을 천천히 읽어본다. 배배 꼬아있는 수학 문제를 보고서 ‘녀석, 성격도 고약하네.’라고 생각하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해답이 있어서 다행이다. 다시 한번 해답을 읽어본다.

‘아, 이거였어?’

익숙해진다는 거, 이런 건가? 엄마가 산에 가기 싫어했는데, 아빠가 가자고 졸라 함께 가더니, 매주 산에 가게 되는 거. 그다음 순서는 즐기기 같던데? 수빈이는 수학을 좋아하게 될 것만 같다. 뭐? 수빈이가 수학을? 하긴 수빈이는 개미를 제일 싫어하는데 앤트리오가 귀엽다잖아. 너희가 ‘싫어!’라고 했던 거, 진짜 싫은 게 아닐 수도 있더라고.


연재 끝!

그림 : 정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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