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삼겹살 먹자!”
“너는 주는 대로 먹어. 내가 모를 줄 알아? 수학 시험을 그따위로 봤으면서 할 말이 있냐?”
“여보, 그러지 말고 어서 구워줍시다. 우리 수빈이가 시험 보느라 많이 야위었어. 어이구, 우리 아들!”
“역시, 아빠 최고!”
아빠가 아니었으면 고기는커녕, 수학 시험으로 화난 엄마에게 실컷 잔소리 폭격을 당할 뻔했다. 고기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부글부글 끓어올라라. 채소도 먹어야 제대로 방귀가 만들어지지. 외계 친구에게 방귀 만찬을 베풀어야지. 아빠보다 더 강하게.
드디어 저녁이 되었다. 수빈이는 흰둥이를 데리고 공터로 나섰다. 겁이 많던 수빈이는 외계 친구를 만날 생각을 하니 설레기까지 했다. 가스로 가득 찬 팽팽한 배를 내밀며 그들을 조용히 불러냈다.
“앤트리오? 아이맥스? 어서 와. 나 방귀 나오기 직전이야. 미칠 거 같아. 빨리 나와.”
다리를 배배 꼬면서 수빈이는 그들을 기다렸다. 풍선 입구를 꽉 쥐고 있듯 항문을 오므렸다. 앤트리오 등위에서 아이맥스가 풀쩍 뛰어내렸다. 정말 설렌다.
“자, 이제 똥꼬에서 힘 푼다.”
“뿌우우우우우우웅.”
“우아, 최고야 최고. 수빈이 넌 최고야.”
그들은 태어나서 메탄가스를 이렇게 많이 마셔보긴 처음이다.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산소를 뿜어냈다. 메탄가스는 여기저기 퍼지지 못하고 진공청소기처럼 두 외계인 콧구멍으로 휩쓸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선선하고도 신선한 산소를 뿜어냈다. 수빈이는 산에 간 기분이 들었다. 맑은 공기에 머리가 맑아졌다. 내게 이런 친구가 있다는 걸 여기저기 자랑하고 싶었다.
“너흰 정말 최고야. 내일 너희 별로 돌아가고 나서 기회가 된다면 다음에 또 너희가 우리 별에 왔으면 좋겠어. 내가 더 자라면 메탄가스 만드는 건, 식은 죽 먹기가 될 거야.”
“우리도 다시 오고 싶어. 그런데 그건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일이야.”
수빈이는 그들과 포옹을 했다. 살아있는 나무를 껴안는 것처럼 선선했다. 그들이 하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알 것도 같았다. 작년에 돌아가신 할머니를 떠올릴 때, 슬픈 감정이 밀려왔다.
‘할머니가 내게 그렇게 잘해주지 않았다면 할머니 때문에 슬프진 않았을 텐데. 할머니는 나를 슬프게 했어. 그렇구나, 할머니처럼 내가 이들을 슬프게 한 거야.’
헤어질 때, 슬프다는 것. 이건 아름다운 추억을 쌓았다는 뜻이다. 헤어지는 게 슬프지만, 우리의 추억은 아름다웠다.
“알았어, 그럼 잘 가. 내일은 난 늦잠 좀 자려고. 다이옥신은 되도록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내 마음은 그래. 너희가 내뿜는 신선한 향은 잊지 못할 거야. 그냥 그렇다는 거야.”
“수빈아, 네게 선물을 하나 주고 싶어. 우리가 그래도 배불배불리야 행성에서는 좀 유능한 요원들이거든. 설마 이런 게 될까 싶은 걸로 말해 봐.”
그때 수빈이 옆에 있던 흰둥이가 왕왕 짖어댔다. 외계 친구가 아닌 수빈이 얼굴을 빤히 보면서 말이다.
“설마, 이런 것도 되려나? 흰둥이 말을 내가 알아들었으면 좋겠어. 가끔 이 녀석이 못된 짓을 하거든. 그 이유 좀 알고 싶어. 이 자식이 내 비싼 축구화도 엉망으로 해놨어.”
“그 정도쯤이야. 흰둥이가 사람 말을 하는 것도 아니고 네가 알아듣는 정도야 매우 쉽지.”
이 행성의 외계인들은 누군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받은 만큼 돌려주는 규칙을 지키며 산다. 지구에서 가져온 게 있으면 언제나 지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하나씩 두고 왔다. 8년 전 런던, 템스 강을 유람하던 배가 기울고 있었다. 아이맥스는 그들에게 줘야 할 선물을 선택했다. 배를 일으켜 세우고 선착장으로 유도했다. 잔잔한 템스 강에서 기울어지는 배를 알아채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겁에 질렸던 백여 명의 승객은 행운이었다. 선물처럼 딱 한 번 쓸 수 있는 능력은 생각보다 위대했다. 하지만 이번엔 오로지 수빈이를 위해서 쓰고 싶었다. 친구들에게 줄 탐험 기념품으로 수빈이의 방귀를 여러 봉지에 나눠 담았다. 유사품과 비교도 안 된다고 하겠지.
앤트리오는 밤톨만 한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수빈이 귓속으로 따끔한 파장이 느껴진 순간, 흰둥이는 짖어댔다, 아니 말을 했다. 수빈아, 괜찮아? 아, 흰둥이가 말을 한다. 아니, 내게만 들리는 말이다. ‘멍! 멍!’이 아니라, ‘수빈아, 괜찮아’로 들리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