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with 잃어버린 시간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의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드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스완네 집 쪽으로 1,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2.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같은 책, P. 88.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실제로 프티트 마들렌을 맛보기 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책, P. 89.
‘우리의 후각과 미각만이 뇌의 장기 기억 센터인 해마 조직과 직접 연관되는 감각들이기 때문이다. 해마 조직에 새겨진 후각과 미각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다른 모든 감각들(시각, 촉각, 청각)은 먼저 언어의 원천이자 의식의 관문인 시상에 의해 가공된다. 그 결과 이런 감각들은 우리의 과거를 불러오는 데는 훨씬 덜 효과적이다.’
조나 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최애리, 안시열 옮김, 지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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