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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Apr 06. 2022

프루스트 이펙트

커피 with 잃어버린 시간

프루스트 이펙트(Proust effect)라는 심리학 용어가 있다. 특정한 냄새나 맛, 소리로 인해 무의식적으로 기억이 다시 일어나는 현상을 일컫는 표현이다.


프루스트는『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홍차에 적셔 마신 마들렌의 맛을 통해 무의식적으로 잃어버린 기억을 소환해낸다.


‘어느 겨울날, 집에 돌아온 내가 추워하는 걸 본 어머니께서는 평소 내 습관과는 달리 홍차를 마시지 않겠느냐고 제안하셨다. 처음에는 싫다고 했지만 왠지 마음이 바뀌었다. 어머니는 사람을 시켜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가느다란 홈의 팬 틀에 넣어 만든 ‘프티드 마들렌’이라는 짧고 통통한 과자를 사 오게 하셨다. 침울했던 하루와 서글픈 내일에 대한 전망으로 마음이 울적해진 나는 마들렌 조각이 녹아든 홍차 한 숟가락을 기계적으로 입술로 가져갔다. 그런데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내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깜짝 놀라 내 몸속에서 뭔가 특별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나를 사로잡으며 고립시켰다. 이 기쁨은 마치 사랑이 그러하듯 귀중한 본질로 나를 채우면서 삶의 변전에 무관심하게 만들었고, 삶의 재난을 무해한 것으로, 그 짧음을 착각으로 여기게 했다. 아니, 그 본질은 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나는 더 이상 나 자신이 초라하고 우연적이고 죽어야만 하는 존재라고 느끼지 않게 되었다. 도대체 이 강렬한 기쁨은 어디서 온 것일까? 나는 그 기쁨이 홍차와 과자 맛과 관련 있으면서도 그 맛을 훨씬 넘어섰으므로 맛과는 같은 성질일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1 스완네 집 쪽으로 1, 김화영 옮김, 민음사, 2012.


맛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흔히 인용되는 부분은 바로 위 문장인데, 프루스트는 이 문장뿐 아니라 책 곳곳에 맛이라는 감각이 일으킨 잃어버린 기억의 조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아주 자세하게 밝히고 있다.


 ‘분명히 내 마음 깊은 곳에서 팔딱거리는 것은 그 맛과 연결되어 맛의 뒤를 따라 내게로 올라오려고 애쓰는 이미지, 시각적인 추억임에 틀림없다.’

같은 책, P. 88.


 ‘그러다 갑자기 추억이 떠올랐다. 그 맛은 내가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아주머니 방으로 아침 인사를 하러 갈 때면, 아주머니가 곧잘 홍차나 보리수차에 적셔서 주던 마들렌 과자 조각의 맛이었다. 실제로 프티트 마들렌을 맛보기 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때에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같은 책, P. 89.


프루스트에게는 홍차에 적셔 먹은 마들렌의 맛이 기억의 트리거 역할을 했다.


왜 꼭 그 기억의 트리거가 ‘맛’, ‘냄새’ 여야만 했을까?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에서 브라운 대학의 심리학자

레이첼 허츠의 <프루스트적 가설을 시험하기>라는 논문을 인용한다.


‘우리의 후각과 미각만이 뇌의 장기 기억 센터인 해마 조직과 직접 연관되는 감각들이기 때문이다. 해마 조직에 새겨진 후각과 미각의 흔적은 지워지지 않는다. 우리의 다른 모든 감각들(시각, 촉각, 청각)은 먼저 언어의 원천이자 의식의 관문인 시상에 의해 가공된다. 그 결과 이런 감각들은 우리의 과거를 불러오는 데는 훨씬 덜 효과적이다.’

조나 레러,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최애리, 안시열 옮김, 지호, 2007



프루스트가 마들렌을 눈으로 보기만 했을 때는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지만 그것을 맛보았을 때는 우리 뇌의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가 작동했다. 해마를 작동하게 한 것은 시각이나 촉각, 청각이 아니라 맛과 냄새, 즉 ‘플레이버’였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우리에게는 ‘커피’가 될지도 모른다. 커피의 플레이버를 맛보게 되면 해마에 기억이 되고, 다시 그 커피를 맛보게 되면 미각과 후각이라는 1차적인 감각이 우리의 맛 경험을 기억해 낼 것이다.


커피 한 잔을 마셔보자. 커피에 관한 추억을 뇌 지도에 그려 넣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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