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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 읽는 여자 Apr 07. 2022

커피 카레니나의 법칙

맛없는 커피는 맛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맛있는 커피는 모두 엇비슷하고 맛없는 커피는 맛없는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에 나오는 유명한 첫 문장,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를 인용했다. 『총, 균, 쇠』의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이 문장에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 법칙을 확대하면 결혼생활뿐 아니라 인생의 많은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행복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불행한 이유가 제각기 다르다] 
이 문장에서 톨스토이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결혼 생활이 행복해지려면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즉 서로 성적 매력을 느껴야 하고 돈, 자녀, 교육, 종교, 인척 등등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합의할 수 있어야 한다. 행복에 필요한 이 중요한 요소들 중서 어느 한 가지라도 어긋난다면 그 나머지 요소들이 모두 성립하더라도 그 결혼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재레드 다이아몬드, <총, 균, 쇠>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이 인생의 많은 부분 중 하나인 커피에도 적용된다. 이른바 '커피 카레니나의 법칙'


커피 카레니나의 법칙

   


맛있는 커피가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요소들이 성공적으로 뒷받침되어야 한다. 


맛있는 커피, 맛없는 커피에 대한 이유를 한번 생각해보자.


맛있는 커피, 이유?

-


맛없는 커피 , 이유?

-




맛없는 커피, 이유

-너무 쓰다

-냄새가 안좋다


맛있는 커피는 여러 이유로 맛이 있다. 


맛있는 커피의 이유

-좋은 향기가 난다

-좋은 맛이 난다

-마실수록 맛있다

-또 마시고 싶게 맛있다

-마시고나면 깔금하다

-뭐랑 마셔도 맛있다

-기분이 좋아진다

:


그런데, 이건 단순한 이유고 정작 정말 맛있는 이유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사실 모른다. 맛있는 이유들이 제각각의 이름을 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일단, 우린 우리가 먹은 맛을 다 기억할 수 없다. 어떤 맛들은 아무리 복기하려 애써도 우리의 기억은 순순히 그 맛을 끄집어내지 못한다. 천재적인 맛과 향을 감지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다. 기록은 기억보다 힘이 세다는 말을 하곤 한다. 


기억을 믿지 말고, 기록을 믿자.


먼저 커피잔을 카운팅 하자. No. 1 …. No.10000…1만 잔의 법칙의 시작이다. 이게 인생에서 몇 잔의 커피인지 적어두자. 숫자는 가끔씩 쓸데없이 고귀한 의미를 부여해주기도 한다. 그다음은 일기처럼 날짜와 날씨, 기분 상태 등을 적어주면 좋다.


이제부터가 핵심이다. 커피의 이름을 적어주자. 아메리카노만 적으라는 게 아니다. 조금만 품을 들여보자, 스타벅스라면 다크 원두인지, 블론드 원두인지, 좀 더 품을 들이면 그 원두가 어떤 원두로, 어떤 로스팅 포인트로 볶아졌는지 알아보자. 생각보다 쉬운 일이고, 해보면 조금은 재밌다. 대부분의 카페에는 그 원두에 어떤 커피들이 섞여 있는지, 카페 어딘가에, 홈페이지에 밝히고 있다. 그걸 찾아서 적어두면, 다음번에는 훨씬 더 수월해지고, 만약 커피 맛이 달라졌다면, 의문을 품어볼 수 있다. 노트에 이럴 때는 물음표를 달아놓고, 셜록 홈스가 되어 ‘관찰’ 해 보기 바란다. 갑자기 나만 몰랐는데 원두의 구성이 바뀌는 대사건이 일어났을 수도 있고, 머신을 바꿨을 수도 있고, 그라인더 청소 상태가 불량일 수도 있고, 물의 종류를 바꿨을 수도 있고, 바리스타의 손목이 그날따라 최악의 컨디션이라 탬핑이 잘 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변수가 엄청 많다.


나는 커피 리브레의 원두를 믿고 주문해 마시고 있는데, 어느 날 커피 리브레 로스터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보내 드린 원두의 로스팅 포인트를 다시 잡았는데 기존에 보내 드린 원두도 내려 드시기에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시 원두를 보내드려도 될까요?”


사실 나는 기존에 보내 준 원두를 맛있게 먹고 있었다. 다만 커피 노트에 ‘맛있는데 뭔가 아쉬워.’라고 적어뒀다. 리스펙 직업정신으로 나를 감동시킨 커피 리브레 로스터가 다시 보내준 원두는 기존 원두와 비교해 맛에서 큰 차이가 나진 않았다. 원두 색깔, 로스팅 면에서도. 내가 커피 노트에 별표를 막 치는 날이 있는데, 바로 이날이었다.


‘커피’에 무엇보다 담기 어려운 것이 ‘마음’이다. 마음이 무슨 맛이냐고,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묻는다면 당신이 음식을 만들어 본 경험을 생각해보면 어떨까 싶다. 마음이 스민 것들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의미가 담긴 음식,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그 의미가 더 크다 하겠다.


부모들은 제 자식 입 속으로 뭐가 들어가는 거 볼 때 가장 뿌듯하다는 말을 한다. 가장 원초적이고 즉각적인 마음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피와 땀이 음식이라는 형태로 자식의 입 속으로 꿀꺽. 그것만큼 즉각적인 보상이 없다. 부모는 마음을 자식의 입에 넣어 준다. 어려서는 잘 몰라도 커서 어느 순간 깨닫는다. 그것이 부모의 마음, 사랑 한 조각, 한 조각, 사랑의 퀼트였음을.


부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면 우리에게 마음의 맛을 전해주는 사람을 한 사람쯤은 찾아내야 한다. 나는 그것을 ‘커피’에서 찾아냈다. 내가 마시는 커피, 그 커피를 만든 사람을 기억하고, ‘마음’을 전해 준 사람에게는 커피 노트에서나마 별 세례를 내려준다. 미슐랭이 있다면 내겐 커슐랭이 있다. 위의 커피리브레 로스터는 별 다섯 개를 받았다.


어떤 커피에는 좀 더 길고 구체적인 이름들이 달려있다. 나라 이름, 커피 농장이름. 그렇다면 나라 이름과 더불어 농장이름까지 촘촘히 적어주자. 커피는 소규모 농장이 많다. 커피를 자주 마시다 보면, 농장 이름이 낯익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내가 좋아하던 커피를 생산하는 그 소규모 커피 농장이 COE 대회에 나가 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기도 한다.


그렇게 기록하다 보면 맛있는 커피들의 제각기 다른 이유들이 보인다.




#커피 기록 노트 


DATE: 2021년 2월 26일 금요일

날씨: 봄이 벌써 온 듯 따뜻한 날씨다, 커피 마시기 딱 좋은 날씨

브랜드: 커피 리브레

오리진: 에티오피아

커피 이름: 에티오피아 예가체페 반코 고티티 Ethiopia Yirgacheffe Banko Gotiti

농장 : 예가체페 게뎁 지역 소농

로스팅: 중강배전 *로스팅 날짜 2021 02 22

고도: 1900~2,200m

품종: 74112, 74110

가공방식 : 내추럴

커핑노트: 플로럴, 블루베리, 레몬그라스, 복합성

장소: 마이 홈

커피 추출 방법: 핸드드립(물 온도 92도, 하리오V60, 원두 30g 커피 300cc, 2’30”)

플레이버: 꽃향기와 복합적인 향미, 화사한 느낌, 베리류의 단맛, 레몬그라스

아로마 : 꽃향기, 복합적인 향미 ★★★☆☆

클린컵 : ★☆☆☆☆

산미 : ★☆☆☆☆

단맛 : 베리류의 단맛 ★★☆☆☆

바디 : ★★☆☆☆

테이스팅 노트: 복합젹인 향미가 기분 좋게 후각을 자극했고, 첫 모금에서 베리류의 단맛과 기분 좋은 산미가 느껴졌다. 블루베리, 레몬그라스의 향미가 묵직하게 한번 쳐주고 지나가는 느낌에 몹시 놀랐다. 에티오피아 예가체페 계열에서 보통 느끼게 되는 가벼운 느낌이 아니라 묵직한 느낌이었다. 내추럴 특유의 단맛이 스치는 반면, 클린하지 못한 뒷맛은 좋지 않았다. 배전도가 중강인데 약간 센 듯한 느낌이 있어서 조금 덜 볶았더라면 좋았을 것 같다.

총평: ★★☆☆☆


#에티오피아 #에가체페 #내추럴 #커피리브레 #핸드드립 #하리오V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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