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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Oct 24. 2021

엄마 그동안 학원 하느라 고생했어

폐업하는 날 딸에게 받은 문자

학원에서의 마지막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밤 10시였다. 평소 퇴근했을 때와 다름없는 시간, 특별할 것 없는 밤이었다. 12년 동안 출근했던 곳이 사라졌고 당장 내일 할 일이 없지만, 겉으로는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었다. 식탁 앞 정적 속에 앉아 있을 때 문자 알림 소리가 났다.     


“오늘 같은 날 같이 있어 줘야 하는데 미안해. 엄마 그동안 학원 하느라 고생했어.”      


문자를 보는데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내가 이 시간쯤 퇴근해서 헛헛한 기분으로 있을 걸 알고 딸이 보낸 문자였다. 초밥이는 그날 아빠한테 가 있었다. 열두 살밖에 안 된 녀석이 이런 기분을 안다는 게 가슴을 저릿하게 했지만, 세상에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그게 딸이어서 다행이라는, 세상에서 나를 붙들어주는 닻이 있다면 그건 바로 딸이라고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24살에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로 휴일이 아닌데 출근하지 않는 날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고 이번처럼 앞으로의 계획이 전무한 건 처음이었다. 흡사 무중력 상태에 있는 것 같은 하루하루를 딸의 끼니를 챙겨주면서 그런대로 이어나갈 수 있었다.       


과외는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더 이상 아이들을 가르치는 건 할 수도 없고 하고 싶지 않았다. 생계 때문에 해야 한다면, 고통스러울 것 같았다.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나름대로 쌓아 올렸다고 생각한 어떤 일을 맨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것 같은 기분일 것 같았다.     


그동안 학생들에게 많은 질문을 받았고 거기에는 수학 문제만 있지 않았다. 나의 어린 학인들은 성적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떠났지만, 그들이 남긴 질문들은 20년 동안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그 질문들은 오래전 내가 스스로 해야 했던 것이었고 지금도 필요한 것이었다. 더 늦기 전에 문제를 풀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글은 그 문제의 풀이 과정이다.     



누구나 밥벌이의 고충이 있듯 나도 학원 선생님으로 힘든 점이 많았지만, 하소연이나 비난은 하고 싶지 않았다. 구체적인 경험을 쓰다 보니 당사자가 읽으면 불편할 글이 돼버렸고 그런 글은 나조차 읽기 불편했다. 누구도 배제하지 않으면서 함께 나은 방향을 고민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런 고민으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하기도 했다.     


자식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집착으로 자식에게 고통을 주는 부모를 보았지만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면 마음이 무거웠다. 사랑으로 한 일이 사랑하는 대상을 괴롭히는 일이라는 걸 알았을 때 얼마나 상처를 받을까. 나 또한 엄마이기에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교육, 청소년, 학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나로서는 벅찬 주제라는 생각에 멀리 밀쳐두었다가도 쓰고 싶고, 해야만 할 것 같아 다시 이야기를 펼쳐 들 수밖에 없었다. 그때마다 글에 등장하는 이들의 마음을 좀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했지만, 충분히 사려 깊지 못했다는 반성이 일기도 한다. 설익은 밥 같은 글이지만 먹고(읽고) 힘을 얻는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동네 학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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