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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Apr 14. 2022

오래된 동네의 작은 집

단단한 행복이 있는 섬 '돈없이도' 

‘책맥’ 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5~6년 전, 서울에 그런 곳이 있다는 걸 알기 전이었다. 조용한 술집에서 책을 읽을 수도 있지만 북카페와 카페가 다른 것처럼 책이 있는 곳 특유의 분위기에서 맥주 한 잔을 놓고 책을 읽고 싶었다.          


보통 학원이 끝나면 밤 11시, 바빴던 날일수록 허탈하고 가슴이 텅 빈 것 같았다. 이대로 집으로 가기 싫지만, 사람들 사이에 섞이고 싶지는 않았다. 언제부턴가 일주일에 한 번, 학원 앞 맥줏집 제일 구석자리에서 맥주 두세 잔쯤 마시며 책을 읽다 가고는 했다. 술집 문을 나설 때 기분이 나아졌었나?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책맥이란 곳이 있다면 나처럼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고 가끔은 가게 주인과 손님들에게 책 추천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기분이 내키는 날에는 사람들과 얘기를 나눌 수도 있겠고 그렇지 않더라도 그런 장소가 있다는 것만으로 위안이 될 것 같았다. 폐업을 고민하고 이제까지와 다른 방식으로 사는 걸 고민할 때였다.          

한 지역에서 12년간 학원을 운영하면서 원장 모임에 나갔고, 그중 젊은 축에 들었던(지금은 다 늙었다) 나와 동갑 6명이 말띠 모임을 결성한 적이 있었다. 폐업한 뒤로 나는 그들과 연락하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M에게 전화가 왔다.     


“살아있냐?”     

나는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식물처럼 숨만 쉬면서 글을 쓰고 있다고 했더니 M은 찰떡같이 알아듣고, “대나무는 그렇게 십 년을 뿌리를 내리다가 땅을 뚫고 올라오면 무서운 속도로 자라잖아”라고 했다. 거기다 나는 “하늘을 찌를 만큼?” 하며 판소리 창자와  고수처럼 주거니받거니 했다. 우리는 다음날 월명산 산책을 갔다.


월명산에서 <봄날의 산책> 서점 이야기가 나왔다.          

“서점이 얼마나 예쁜지 몰라.”          


월명산과 가까운 말랭이 마을에 위치한 서점 <봄날의 산책>은 나와 함께 글쓰기 모임을 하는 박모니카 작가가 주인장이다. 오픈했다는 소식을 듣고 갔는데 주차장에서 바라본 서점 벽에 있는 구름이 하늘과 잘 어울리고 서점에서 보이는 정경이 아기자기해서 나는 한눈에 반해버렸다.   

       

M이 가고 싶어 해서 서점으로 가면서 나는 서점 지기에게 카톡을 했는데 봉사활동으로 자리를 비웠다는 답이 돌아왔다.    

       

“담에 가야겠다. 문 닫혔데.”

“이 앞까지 왔는데 올라가 보자.”     


M과 나는 (주인장 허락도 없이) 서점 앞에 작은 의자 두 개를 놓고 앉아 바리스타 자격증이 있는 M이 내린 커피를 마셨다. 봄비가 예쁘게도 내리고 있었다.        

   

주인 없는 서점 앞에서

“사람이 살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동네의 작은 집이 좋아. 이런 곳에서 나도 등산 학교나 책맥 같은 거 하고 싶어.”

“둘 다 해. 책맥은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만 미리 공지하고 하면 어때?”

“그거 좋은 아이디어인데?”          


나는 운동이든 글쓰기든 아침에 하는 걸 좋아하는데 책맥은 밤에 해야 하니까 아무래도 부담이 되었다. 무엇보다 나는 불특정한 사람이 찾아오는 일은 할 자신이 없다. 하지만 나에게 맞는 방식을 찾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다.      


등산학교는 소소하게 월명산 걷기 모임으로 시작해서 회원들끼리 음식도 만들어 먹고 소모임도 운영하는 공간으로 활용하고 싶다. 일단 시작부터 하고 다음은 하다 보면 길이 만들어지겠지 하면서 망설이고만 있었다.     


말띠 모임 멤버 중 두 명이 최근에 동업으로 호프집을 열었다는 걸 SNS로 알게 되었다.    

 

“황과 정의 개업 소식 듣고 좀 놀랐어. 술집이라니. 두 사람 젊은 가봐.”

“젊은 건 너지. 어느 날 갑자기 학원 때려치우고 히말라야 가더니 글 쓴다고 하는 게 더 황당하지 않냐?”         

그러고 보면 학원 일을 계속할지 말지 하는 고민은 나만 했던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때는 왜 아무도 그런 속내를 비치지 않았을까.          


폐업하고 우연히 들른 식당에서 원장님들을 한꺼번에 마주친 적이 있었다. 나보다 연배가 높은 한 원장님은 내 손을 붙잡고 “앞으로 어떡하려고 그러냐?”며 걱정 가득한 얼굴로 물었고, 나도 나를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러게요, 하면서 말끝을 흐렸다. 그로부터 일 년 뒤 코로나 전염병이 퍼지고 삼 년째 이어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할 때였다.     


학원 할 때는 나와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과 충돌하는 일이 많았다. 각자 처지가 다르니까 생각이 같을 수 없는데도 나는 나의 불안 때문에 들을 수가 없었다. 귀담아들었다면 생각을 넓히고 보태는 데 도움이 되었을 텐데.      

(몇 달 뒤 저는 월명산 야간등산 모임을 결성했어요.)     

군산 말랭이 마을에 있는 서점 <봄날의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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