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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준정 Dec 24. 2021

이제 큰 기대 없어요

<개밥바라기별>같은 아이들

4년 만에 만난 혜수는 어딘가 달라져있었다. 

“선생님 오랜만이에요.”

“어 그래. 잘 지냈어?”


뭐가 달라졌을까. 힘이 빠진 것 같기도 하고 기가 죽은 것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성숙해 보인다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벌써 고등학교 2학년이니까.     


혜수는 중학교 1학년 때 두 달 남짓 학원을 다녔다. 개업한 직후라 학생이 얼마 없을 때라 기억에 남았다. 학생에게 맞춰 잘 지도하려고 나는 의욕이 넘쳤지만 혜수는 삐딱하고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크지 않아 보였다. 무엇보다 여러 개의 학원을 다녀서 여유가 없었다.   

  

어머니와 통화를 자주 했는데 다른 과목 숙제가 많아서 이번에 숙제를 덜했다, 선생님이 이러저러하게 해 줬으면 좋겠다고 혜수가 하더라는 식의 내용이었다. 혜수가 어머니한테 학원에서 있었던 얘기를 많이 하는 것 같았다. 혜수가 할 이야기를 어머니가 대신한 거였지만 학원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부모님이 가질만한 관심이라 생각하고 나는 성실하게 답변했고 수업에도 신경 썼다. 하지만 혜수는 두 달만에 학원을 그만뒀다.   

  

그렇게 그만두고 다시 수강한 게 이상했는데 알고 보니 고등학교에서 사귄 친구들이 우리 학원에 다녀서 온 모양이었다. 다시 통화한 어머니 또한 전과 달랐다. 부드러워진 것 같기도 했는데 예전에 빡빡한 느낌은 사라지고 없었다.     


“친구들 중에 원장님한테 오래 배운 아이들이 있더라고요. 혜수가 가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어요. 이제 큰 기대 없어요. 원장님 하는 대로 따를게요.”     


혜수는 중간 정도 성적이었다. 수학적 감각이 뛰어난 편이 아닌 학생이 일정 수준의 노력을 할 때 받을 만한 점수. 하지만 태도는 성실했고 과제도 잘 해오려고 애쓰는 것 같았다.     


무슨 얘기를 하는 중이었나. 혜수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는데 문득 혜수가 부모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부모님이 시간과 돈을 자기에게 투자를 많이 해줬지만 자기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면서.  

   

“제가 형제가 없잖아요. 그래서 죄송해요.”

“혜수야, 너는 아직 모르겠지만 부모님이 좋아서 한 거지, 널 위해서 한 게 아니야. 미안해하지 마. 너는 네가 해야 할 몫을 잘해왔고 너도 어른이 되어보면 지금 생각하는 게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오랜 시간 짊어지고 있었던 부모님에 대한 부채감은 어떤 말로도 털어버릴 수가 없었다. 차라리 처음 봤을 때 철없이 반항하던 모습이 생기 있어 보였다. 지금 혜수의 모습은 자신을 쓸모없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어른의 한 사람으로 미안했다. 다양한 능력을 가진 학생들을 성적 하나로 평가하는 게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혜수는 유럽에 안 가본 나라가 없어요. 제가 다 데리고 다니면서 살아있는 지식을 보여줬다고요.”

시간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던 어머니는 그렇게 딸에게 열과 성을 다했다.   

  

다음은 오늘 읽은 <개밥바라기별>의 한 대목이다.     


“저는 학교에 다니기를 그만두기로 결심했습니다. (중략) 결국 학교 교육은 모든 창의적 지성 대신에 획일적인 체제 내 인간을 요구하고 그 안에서 지배력을 재생산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은 모두가 신사의 직업을 우리들 앞에 미끼로 내세우지만 빵 굽는 사람이나 요리사가 되는 길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지요. 독 짓는 이는, 목수는, 정원사는, 또는 아무 일도 택하지 않는 것은. (중략) 저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결심하고는 두려움에 몸이 떨리기도 하지만 미지의 자유에 대하여 벅찬 기대를 갖기도 합니다. 물론 힘들겠지만 스스로 만든 시간을 나누어 쓰면서 창조적인 자신을 형성해나갈 것입니다. 저는 결국 제도와 학교가 공모한 틀에서 빠져나갈 것이며, 세상에 나가서도 옆으로 비켜서서 저의 방식으로 삶을 표현해나갈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자퇴 이유입니다.”     

소설 속 준이를 통해 황석영 작가는 학교 교육에 대한 견해를 말했다.     


유대인 교육은 아이의 개성을 살려서 ‘유일한 인간’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고 우리나라 교육은 ‘베스트’를 만드는 것이라고 한다. 사교육에 종사하면서 문제를 늦게 푼다고, 문제 푸는 방식이 엉뚱하다고 아이를 틀렸다고 하지 않는지, 혹은 그렇게 바라보지 않는지 반성했다. 그런 시선 때문에 아이는 더 큰 것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 나기도 했다.

      

네가 서있는 곳은 좁은 길이 아니야. 평평한 대지위에 있고 네가 가는 곳이 다 길이 될 수 있어. 네가 지금 도망가고 싶은 건 이 길이 아니면 낙오된다고 생각해서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만 사실은 아니야. 공부 말고도 나를 성장시킬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어. 그걸 성실하게 한다면 공부가 아니어도 괜찮아. 


공부를 선택했다면 기꺼이 힘든 걸 감수하고 할 수 있겠지. 네가 느끼는 감정은 선택권 없이 공부와 시험을 강요당하는 것 때문일 거야. 시험 점수 말고 공부를 해야 하는 나만의 의미를 찾아보고 끌려다니지 않고 네가 주도해가게 해 봐. 그런 시간 속에서만 우리는 무언가를 배울 수 있으니까.   

  

<개밥바라기별> 같은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통찰력과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어. 그리고 세상이 궁금해질 거야. 그 느낌을 기억해. 그게 진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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