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오늘 집중 진짜 잘됐어. 8시간 동안 공부했어. 이러다가 전교 1등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요즘 공부가 너무 재미있어.”
방학을 맞은 초밥이는 아침 일찍 도서관이나 스터디카페에 가서 공부를 한다. 밤 10시쯤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내가 데리러 가면 몇 번인가 이렇게 말하는 거다.
“니가 그런 말을 하면 나는 왜 웃기지? 그러면 안 되는 거지? ‘그래, 하면 돼, 전교 1등 할 수 있어’ 뭐 그런 말을 해야 하는데 나는 왜 웃음이 날까?”
“그래, 맞아. 엄마 왜 그래?”
초밥이가 공부에 의욕을 보이면 흐뭇한 건 맞다. 하지만 이제 됐어, 제대로 하고 있어,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격하게 호응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보다 초밥이가 주짓수 대회를 나가서 (초밥이 표현) ‘제대로 발리고 나서’ 찍힌 사진을 봤을 때, 체육대회에서 씨름왕에 등극하게 된 결승전을 봤을 때, 축제 공연에서 이쁜 척, 잘 추는 척, 아이돌인 척, 온갖 척을 하는 걸 봤을 때, 자기소개를 뉴스 앵커처럼 하는 걸 볼 때가 더 기뻤다. 축제에서 ‘아파트’ 브루노가 되어서 무대를 활보하는 영상은 스무 번쯤 봤지만, 볼 때마다 나는 극성팬처럼 소리를 지른다.
공부가 잘된다는 초밥이 말에 극성팬처럼 호응을 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거기에는 초밥이가 공부를 잘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는 마음이 있었다. 초밥이를 ‘공부를 잘하는 딸’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이라는 옷을 입혀서 보지 않는 마음이다.
공부를 잘하는 딸, 남한테 인정받는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구분이 되는 오직 하나뿐인 사람이어서 뿌듯했다. 본래 가지고 있는 끼와 흥을 드러낼 때 초밥이의 어떤 부분을 만나는 것 같아서 기뻤다.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우러나서 한 일에는 초밥이의 일부가 녹여있기 때문이다.
초밥이를 세상에 내놓은 사람으로서 초밥이로 살아주고, 자기의 것으로 충만한 모습을 보면 내 마음이 가득 차는 것 같다.
아버지가 오래 운영해 온 자동차 부품을 가공하는 공장은 어릴 때 살던 동네에 있다. 40년 넘게 한 자리를 지킨 아버지의 작은 공장처럼 그 골목에는 나와 오빠가 태어난 산부인과와 초등학교, 슈퍼와 약국이 여전히 남아있다.
명절에 대구에 갔을 때다. 아버지가 공장에 있다고 해서 먼저 공장에 들렀다. 공장 앞에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리는데 내가 아는 식당 아주머니가 지나가시는 걸 보고 인사를 했다.
“대구 왔는갑네. 인자 왔나?”
식당 아주머니 옆에는 낯선 아주머니가 있었는데, 그분이 나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다. 식당 아주머니가 공업사 딸이라고 알려주었다.
“너거 아빠가 니를 얼마나 예뻐한 줄 아나? 세상에 혼자만 딸이 있는 사람처럼 그러더니만.”
그때 한눈에도 고집이 세 보이는 할아버지가 나타났다.
“딸 와가 좋겠네요.”
아주머니가 큰 소리로 물었지만, 할아버지는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나를 보고 자기 차를 뺄 테니 그 자리에 주차를 하라고 했다. “저래 다 간섭한다” 아주머니가 중얼거렸고 식당 아주머니와 나는 조금 웃었다. 우리 아버지를 아주 잘 알고 있는 듯한 아주머니의 말투에서 이 동네에서 우리 아버지는 좁쌀영감으로 통하는 것 같아서다.
아주머니는 내가 가방 메고 다니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고 여러 번 말했다. 중년인 나에게서 어린 시절의 모습을 보는 사람 앞에서 나는 아이가 된 기분이었고, 동시에 그 긴 세월을 도둑이라도 맞은 것 같아서 어리둥절했다. 사실 아주머니는 70대 초반이기 때문에 아주머니도 아니지만.
아버지가 차를 뺀 자리에 차를 대고, 아버지한테 물었다.
“아빠, 저 아주머니 누구세요?”
“장갑집주인 아이가.”
“나는 기억이 안 나네. 근데 저 아주머니가 아빠가 혼자 딸이 있는 사람처럼 딸을 예뻐했다던데, 그 딸 지금 어디 갔어요?”
“집에 가자.”
그 아주머니가 한 이야기를 나는 가끔 친척들에게도 듣는다. 한 번은 사촌인 분희언니가 “요즘 하는 말로 하면 작은 아버지가 너한테 찐사랑을 준 거 알지?”라고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아빠는 자기 인생에 있는 딸을 사랑한 거지, 나는 아니야. 아빠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보려고 한 적이 없었거든.”
분희언니는 그렇게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했다. 너라는 딸이라서 사랑한 거라고.
나도 안다. 아빠의 뜨거운 마음을 내가 어떻게 모르겠는가. 고등학교 야자를 마칠 때 아빠가 늘 데리러 왔는데, 계모임 중간에 빠져나오는 아빠에게 친구들이 “딸이 그렇게 좋냐? 애인 만나러 가는 놈 같다”라고 했다고 말할 때 아빠 표정을 내가 어떻게 잊겠는가.
하지만 나로 살아가는 일이 뜨거운 마음을 배신하는 일이 되는 게 얼마나 외로운지도 알게 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고 찾아가는 일이 어째서 나를 사랑하는 사람과 맞서는 일이 되는지, 그저 나로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소중한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되어서 막막하고 아픈 시간이 있었다.
아버지에게 받은 뜨거운 마음으로 나는 초밥이를 본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