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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운선 Feb 05. 2024

납작하게 붙은 시간 사이

세운상가를 지나다

신설동에 일이 있어서 가야 했다. 대부분 일 할 때는 자가용을 이용하여 이동했는데 오늘은 일이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조금 걷고도 싶어 버스를 탔다. 720번 버스 뒷자리에 앉았다. 버스는 광화문을 지나 종로를 지나는 참이었다.

버스 뒷자리에서(색연필 드로잉 ⓒ신운선)

창밖으로 세운상가가 보였다. 세운상가 같지 않은 세운상가였다. 그러니까 오래전 기억 속의 세운상가가 아니었다. 4층 건물은 외벽에 큰 통 창과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자주는 아니어도 종로를 통과해 운전하며 집에 가는 길이 가끔은 있었는데, 지나쳐도 몰랐다. 대부분 바쁘게 움직이다 보니 주변 상황에 무심한 탓도 있을 것이다.


신축된 건물은 30여 년 전의 모습만을 기억하던 내겐 시간의 거리를 훌쩍 뛰어넘어 다른 세계에 금방 떨어진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내 기억과 지금 보이는 건물 사이의 간극 없이 30여 년 전에서 갑자기 2024년으로 온 느낌. 그것은 몇십 년 만에 동창을 만나거나 오래전 알던 지인을 잊고 살다가 수 십 년이 지나 우연히 만났을 때 느끼는 감정과 비슷했다. 무수한 일이 있었을 테지만 납작하게 붙은 시간 사이의 텅 빔. 가다 서다 하며 흔들리는 버스를 의식하며 오래전 저곳에서의 일을 떠올렸다. 어둠에서의 발버둥인 줄 알았는데 이미 흐릿해져 조각으로 남은 한 시절의 유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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