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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운선 Jan 29. 2024

노부부의 슈퍼마켓

홍제상회

노부부가 하던 작은 슈퍼마켓은 차 한 대가 지나다니기 적당한 정도의 좁은 골목, 허름한 여러 상점들 사이에 오랫동안 버티고 있었다. 어느 날은 할머니가, 또 어느 날은 할아버지가 계셨다.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아도 슈퍼마켓은 늦은 시간까지 불을 밝혔다. 그 때문에 나는 늦은 시간 일이 끝나 집에 들어갈 때면 미처 사지 못한 식료품들을 사러 그 가게에 들르곤 했다.


가게는 두어 번 정도 여러 날 문을 닫았었다. 한 번은 가게에 불이 나서 그랬고 또 한 번은 가게의 회원으로 가입이 되어 있던 내게 “갑자기 사정이 생겨 당분간 가게를 열지 못해 죄송합니다”라는 문자가 온 뒤로 한참 동안 닫혀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주인 어르신에게 내가 알 수 없는 어떤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염려가 됐다. 그러면서도 ‘당분간’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곧 열겠지 하는 희망을 가졌다.


가게 앞을 지날 때마다 닫힌 문을 슬쩍 보곤 했다. 가게 문이 닫혀 있는 동안 가게 근처에는 새로운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고 근처 상점들은 단장하거나 업종이 바뀌기도 했다. 어느 날부턴가 그 가게에도 공사 천막이 쳐졌다. 노부부의 문제가 잘 해결이 된 건가? 가게를 새로 꾸미려는 건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지만 천막 안의 상황을 알 수는 없었다.


어느 날 그 가게에 공사 천막이 걷히고 인테리어가 바뀐 가게의 모습이 드러났다. 간판은 <홍제상회>였다. 아저씨 두 명이 마무리 인테리어 공사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작업 중인 아저씨에게 다가가 여쭈어 보았다.

“마트 주인이 바뀌는 건가요?”

“마트 아니고 술집이에요.”

“홍제상회인데 술집이에요?”

“술이든 안주든 골고루 팔아서 이름이 그래요. 개업하면 놀러 오세요.”

집 앞에 술집이 계속 늘어가네, 하는 생각과 동시에 노부부의 안위가 궁금했다. 사실 처음부터 그랬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더 묻는 게 작업을 방해하는 것 같았고 또 남의 사생활을 묻는 게 지나친 오지랖을 부리는 것 같아서 더는 묻지 않았다.


노부부의 슈퍼마켓이 술집으로 바뀌는 동안 도로포장도 새로 깔렸다. 골목 전체가 한 세대가 끝나고 새로운 세대가 시작하는 듯 분위기가 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앞에 개업 화환이 보였다. 마치 새 시대가 열렸다는 신호 같았다.

홍제상회(색연필 ⓒ신운선)

노부부의 안녕을 빌었다. 그동안의 수고로움을 뒤로하고 지금은 평안하게 지내시기를 바랐다. 홍제상회는 술 좋아하는 친구가 놀러 오면 들려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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