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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 뒤에 예약입니다.

휴우.

by 환오

4월 30일 아이의 치조골 이식수술이 끝나고 한 달째 월요일마다 아O병원에 출근도장을 찍고 있다.

8월에 예약이 잡히긴 했지만 어쨌든 이번 주 월요일이 마지막 진료일이었다.

예약시간에 딱 맞춰 갔건만 정확히 45분을 기다린 후에 교수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으... 45분..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안 간다.

느릿느릿 1초가 1분같이 더디게 흘러간다.

책을 챙겨갔지만 어서 진료가 끝나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에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랜 기다림 끝에 기특이 순서가 왔다.

기특이의 윗입술을 손봐주신 교수님이다.

역시나 특별한 말씀은 없으시다.(그걸로 됐다. 멘트가 길어지시면 오히려 불안하다.)

코켄은 다음 진료 때 결정하자고 하신다.(콧구멍이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전용 코마개를 한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윗입술이 상당히 얇았다.

상대적으로 아랫입술은 두터워서 비율이 거의 1:3 정도.

성인이 되어서 수술이 가능할까 싶었는데 이번에 치조골 수술도 하면서 같이 입술을 봐주셨다.


하지만 치조골 이식수술과 다르게 입술은 미용으로 빠져서 금액만 300만 원이 넘었다.

구순구개열이라는 선천적 기형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 안에서 보장받을 수 있는 사회적 제도는 또 갈린다.

이 아이의 입술치료는 국가에서 기형으로 보지 않는다.


그런데 11살 아이가 입술성형술을 받는다면 미용 때문에 하는 걸까?

같은 이치로 치과 교정치료가 몇 해 전부터 보험 적용이 되기 시작했다.

구순구개열 외 선천적으로 치아 교정이 필요한 아이들인데 미용을 목적으로 교정을 하는 건 말이 안 되기 때문이다.

치아 교정은 다행히 보험이 되기 시작했지만 입술은 별개의 영역이다.

미용으로 보는 것이다.

이건 어쩔 수 없이 내가 감내해야 할 몫이다.


입술이 너무 얇게 태어나서 미관상 좋지 않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것인가.

기능적인 문제로 수술을 하는 것인가.

후자가 더 맞다고 증명해 낼 힘이 나에게는 없다.

솔직히 해야 하는 이유는 둘 다 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엄마 아빠가 힘을 내서 더 열심히 돈을 버는 수밖에..


자잘한 중이염 시술까지 합하면 십 년 동안 다섯 손가락은 넘게 수술방 침대에 눕힌 거 같다.

언제 끝나나 했던 수술이 막바지에 이르렀다.

10대에는 내가 아는 의학 상식 선에서 더 이상 수술은 없다.

아, 아직 왼쪽 귀에 고막이 없어서 고막재생수술을 받을 예정이긴 하지만.

다른 수술에 비하면 난도가 낮은 편이라 머릿속에 크게 자리를 차지하지는 않는다.


기특이와 나는 분명 남들과 다른 길을 가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 인생이 우울하기만 할 쏘냐.

주기적으로 다가오는 수술 시즌 빼고는 웃는 일도 많았고 그냥 남들과 다름없는 평범한 인생이다.

맛난 거 먹고 가족들과 웃고 함께 시간을 나누고 투닥거리기도 하고.


어느 집이나 들여다보면 한 가지씩 다 아픈 사연은 있기 마련이랴.

하지만 이제 구순구개열은 나에게도 기특이에게도 아픈 손가락만은 아닐 거다.

인정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지만 그것이 우리 삶을 저 멀리 밑바닥으로 내팽개치는 일은 없을 거다.


수술을 하게 되면 할 거고

케어를 하게 되면 할 거고

그렇게 해야 되는 일을 해내면 된다.

그러니 더 이상 그 일에 의미부여는 하지 않아도 된다.

인정만 하면 된다.

그것뿐이다.


지금 이 순간, 기특이와 함께 하는 찰나의 이 순간의 기쁨을 만끽하면 그걸로 되었다.


"행복은 우리가 가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식하는 것이다."
-세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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