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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환오 Apr 26. 2024

당근 알바에서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경단녀를 벗어던지고 과연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슬프지만 마흔둘(작년 경험이니)의 경력단절 아줌마를 채용해 줄 업체는 많지 않았다. 

어차피 어린아이들 때문에 일반적인 회사 근무는 불가능했고, 파트타임 알바라도 구하면 다행이다 싶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과 학교에 가 있는 오전 시간을 생각했지만, 그렇게 짧은 시간 할 수 있는 일은 아무리 찾아봐도 '없었다'. 

밤마다 애들을 재우고 누워서 핸드폰으로 검색 또 검색해 봤지만, 평일 원하는 시간대가 없어서 결국 주말로 눈을 돌렸다. 애들은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기로 하고, 일단 넣어보자!! 


아 드디어 나왔다. 내가 좋아하는 집 근처 치킨집 알바가.

20대에 B사 치킨집에서 꽤 선수급으로 치킨을 잘 튀겼더랬지. 그래 지나고 보니 나의 20대는 '알바의 신' 그 자체였어. 채용만 되면 사장님 마인드로 열심히 할 테야! 이랬는데...

이력서를 넣었지만 내 기대와 달리 연락은 오지 않았다. 과거 치킨알바 경력도 썼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나 보다. 그 경력이라는 게 밀레니엄 시절이라 쓰면서도 너무 구시대적 얘기를 넣었나 싶었다. 

그다음 유명한 D사 매운 떡볶이집 또 다른 음식점 서빙일도 가까워서 쾌재를 부르며 넣었는데 연락 온 데는 단 한 군데도 없었다. 내 나이가 문제인 건가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감은 점점 쪼그라들었다. 

수학학원 채점 알바 자리도 넣어봤지만(심지어 이건 시급 15000원) 내 대학교 졸업장은 큰 메리트가 없었다. 나름 인서울 나왔는데 이건 되겠지 라는 내 오만한 자존심이 와장창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 단기알바가 떠서 넣었는데 드디어 연락이 왔다! 고깃집 서빙이야 20대 때 많이 해봤으니 뭐 어렵지 않겠지 생각했으나 처음 보는 포스기와 테이블 번호를 하루 만에 습득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래도 큰 사고 없이 그날 알바는 무사히 마칠 수가 있었다. 가족이 운영하는 음식점이었는데, 아마도 사장님 내외분 모두 따뜻하게 대해주셔서 편안하게 일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어딜 가나 변하지 않는 진리다. 

일이라는 건 아무리 힘들어도,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좋으면 덜 힘들다고 느껴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어서 구한 알바도 고깃집 서빙. 여기도 2주 동안 주말만 일하는 단기알바였다.

시급 12000원. 지난번 일했던 고깃집보다 천 원은 더 셌기 때문에 속으로 올레! 하고 냉큼 지원을 했다.

그런데 천 원의 임금인상으로 나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그 집은 정말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노동력을 요구하는 맛집이었다.

차가 없으면 갈 수 없는 위치에 있는 고깃집이었는데 주말 점심때가 되면 대기가 10팀은 넘을 정도로 손님들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어느 순간 내 두 발은 공중부양을 하며 춤을 추고 있었고 소변이 마려워도 화장실에 못 가는 수준에 이르렀다. 정령 이 노동에 대한 대가는 시급 12000원이 정당한 것입니까!! 나도 모르게 외치고 싶었다.

심지어 일하는 동안 둘째 아이한테 열감기가 심하게 와서 친정엄마가 나머지 일정은 못 나간다고 연락하라고 다그치셨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단기알바더라도 내가 한다고 했으면 책임을 지는 성격이었다.

2주 동안 보고 안 볼 사람들이었지만, '이래서 애엄마들은 안돼.' 하는 선입견을 주고 싶지 않았다.

융통성 없는 대꼬챙이 같은 성격. 내 새끼가 열이 펄펄 끓는데도 나는 기어이 일을 나갔다.


며칠 뒤 그 고깃집에서 평일에 일해달라며 연락이 왔지만 정중하게 거절을 했다.

이제 겨우 5살인 둘째를 외면하면서까지 일한 내 마음은 역시 편치 않았던 거다. 

평일이라고 아이가 안 아프다는 보장이 있을까.. 


그 일을 계기로 당근에서 알바 검색은 그만두기로 했다. 

급한 마음에 내 '땀'으로 벌은 돈이 통장에 찍혔지만 그 돈은 그다지 기쁘지가 않았다.

이 일을 계속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20대의 펄펄 날았던 나와 지금 40대의 나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했지.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구하지 말고 나한테 맞는 일을 좀 더 고민해 보기로 했다.

세상의 모든 직업은 남에게 피해를 주는 나쁜 일이 아닌 이상 존경받아 마땅하다.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떳떳하게 돈을 빼오는 일은 세상 치사하고 고단한 일이 아니던가. 그 치사함이 어떤 의미인지 경제활동을 해본 사람이라면 다들 알 것이다. 20년 만에 다시 경험한 고깃집 서빙일은 나에게 많은 걸 느끼게 해 줬다. 그리고 그걸 업으로 삼은 그녀들이 진심 존경스러웠다.

누군가의 아내이고 엄마인 그대들은 우리나라의 훌륭한 일꾼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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