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빈 May 11. 2024

항해일지가 쌓여 무엇이 되려나

사랑하기 위한 삶, 살기 위해 한 사랑


정원을 가꾸는 마음으로


한 생명의 생장이라는 건 여러 조건이 알맞게 맞물릴 때 가능합니다. 자라날 주체인 나뿐만 아니라 주변을 더 들여다보고, 좋은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죠. 알맞은 햇빛과 물, 바람, 계절 변화에 잘 적응할 수 있게 도와야 합니다. 흙을 단단히 다지고, 추위에 맞설 바람막이와 해를 가리는 그늘을 빗겨서는 것. 그 모든 일이 새로운 씨앗이 잘 자라날 수 있게 살피는 일입니다.

때로는 불청객이 오고, 바쁜 생활에 밀려 시들게 될 수도 있지만 그 존재를 인지한다면 적당한 바람과 물만으로 생기를 되찾을 것입니다.


일기를 쓰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천히 내 하루를 살핍니다. 하루 중 느낀 수많은 감정을 가지치기하고, 관찰자의 시선으로 들여다봅니다.

좋았던 햇빛, 너무 거세어 힘들게 한 바람, 잠깐 들렀다 간 작은 친구들과 충만하게 만들어줬던 애정 어린 시선 등 모든 것을 살펴 종이에 옮겨 적습니다.


이제 이 하나하나의 식물, 화분이 모여 정원이 되기를. 나라는 사람이 화사하고 찬란한, 누구나 쉬었다 가고 싶어 하는 정원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오늘도 일기장을 펴봅니다.



현재 위치 체크하기


2016년 연말부터 지금까지 총 15권의 일기장과 함께 생활했다. 곳곳에 빈 점은 있지만 꾸준히 선을 그었다. 오래 지속하기 위한 한 가지 규칙은 쓰는 일에 크게 힘을 들이지 않는 것이다. 

종이 위에 까만 글씨만 가득한 다이어리, 조금 여유 있는 날엔 스티커 장식이 다다. 다행히 원체 말이 많은 성정 덕에 매일의 기록을 무리 없이 이어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기'하면 초등학교 방학숙제로 벼락치기하듯 써내려 간 장면을 기억할 것 같다. 나 역시 개학 일주일 전, 아무 말과 그림, 시로 종이를 채우기 급급했었다.

그 후 5년쯤 지나 스스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뜨문뜨문 쓴 일기에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과 친구들과 좋았던 추억,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들이 조잘조잘 쓰여있다.


어느 날 문득, 시간이 지나면 이 풍경이 기억나지 않을 거라는 걸 알았던 것 같다. 그즈음 학교 교실과 사물함, 책상과 창문으로 보이는 운동장의 풍경, 운동장에 앉아 바라본 친구들의 사진을 찍어 두었다.


위치는 계속해서 변화한다. 발 붙였던 교실, 운동장을 이제는 담 넘어 바라만 본다. 돌아갈 수 없으므로 기억을 떠올려야만 그곳으로 갈 수 있다. 기억이 휘발성이라 나쁜 기억을 잊게 해 준다는 점은 참 다행이지만 즐거웠던 기억도 붙잡지 않으면 날아가버린다는 게 아쉽다. 그래서 쓰기 시작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나의 하루하루를 성실히 기록해본다. 오늘 있었던 일, 만난 사람, 좋았던 공간과 기억, 하루 중에 느낀 여러 감정들을 써 내려가며 스스로 나를 돌봤다.


쓰는 생활을 통해 삶을 가득 채우기도 하고 때로는 비워내기도 하면서. 이제는 혼란과 걱정이 나를 집어삼키려 할 때,  기록들이 방향을 잃지 않게 잡아주는 지표가 되어준다. 지나온 발자취를 되짚어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과거를 잘 정리하고, 현재의 방향 설정을 잘하면

미래로 순항하지 않을까?  


중학교, 학교 교실, 공부하다 찍은 내 자리

어쩌다 일기


"일기가 생존에 도움이 돼요.“

심채경 천문학자




"나에 대한 기록을 남긴다는 건 미래를 생각하는 거거든요. 희망 없인 일기를 쓰지 않아요.

단지 방향을 못 잡아서 그걸 일기에 쓰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나에 대한 역사의 기록이기 때문에
나에 대한 애정이고 삶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는 것이죠."

이호 교수님


<알쓸인잡>에서 이 말을 듣고, 크게 안심했던 기억이 있다. 기록하는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는구나. 현재를 깊게 들여다보고, 미래를 생각하는 일이구나.

잘 살고 싶은 마음에 쓰는구나.



기록하면 좋은 점

1.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
: 사진에 담기지 않는 에피소드가 글에 담겨있다.
2. 감정 정리
: 나에 대해 이해하게 된다.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며 풀어쓴다.
내 감정을 수용하고 인정한다. 고민이 몸집을 불려 거대해지지 않게 거리감 두고 바라볼 수 있다.
3. 관계 안에서 나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다.
: 어떤 사람들을 좋아하는지, 거리를 두고 싶은 사람의 특징이 무엇인지 살펴보자.
4. 무엇보다 기록은 재미있다.
: 약간의 도구 (문구, 스티커 등)을 곁들이면 더 즐거워진다.
5. 순간을 수집하면서 나의 기쁨, 행복 찾을 수 있다.
: 좋은 것들이 쌓이면 긍정적으로 사고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난 기억을 바탕으로 이번에도 이겨낼 수 있어.' 회복탄력성을 가져보자.



항해를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만약 기록을 시작하고 싶은데 어렵게 느껴지는 분들이 있다면, 김신지 작가님의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은유 작가님의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책을 추천합니다.


기록을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방향을 알려주고,

가벼운 기록부터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심어준답니다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796017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0629812



작심삼일의 법칙이 끝없이 무한대로 이어진대도

괜찮은 것이 기록생활입니다.

오늘 실패해도 내일 시작할 수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요?  


쌓인 기록물을 보고 있으면 꼭 지난 시간이 물성으로 놓인 느낌이에요. 살아온 지점을 되짚어 나의 위치를 확인하기 용이하답니다.


나만의 항해지도를 가져보세요. 

목적지가 분명하지 않대도 일단 떠나보는 겁니다.

실패해도 다시, 오늘 새롭게 시작하면서요!


일기가 어렵다면 좋았던 순간을 사진으로 많이 남겨보는 방법도 있습니다. 언제든 찍을 수 있는 휴대폰 카메라도 좋고, 한 컷 한 컷을 소중히 다루게 되는 필름카메라도 좋아요.


어떤 방식이든 순간을 잡아보길 추천합니다.

오늘의 좋은 것을 잡지 않으면 사라지니까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