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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빈 May 04. 2024

눈앞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어쩌다 미술

여행지에서 미술관을 찾는 마음


여행을 가게 되면 꼭 그 도시의 미술관을 찾는다.

작품들을 보고 있을 때면 현실감은 희미해지고,

하얀 전시 공간 속에서 작품과 1:1로 마주 보며

가까이 있지만 실감하지 못한 것들과 멀게만 느껴졌던 것들을 생각한다.


전시장 안에는 개인의 미시적 이야기와 전 세계를 관통하는 키워드들이 흩어져 있다. 어떤 동선은 작품과 작품의 관계, 작품과 관객의 관계를 만들어주기도 하고, 자유롭게 전시장을 누리며 각자 의미를 찾아보게끔 한다.

어떤 작품은 내 마음모양 같기도 하고,

어떤 작품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을 열어준다.


나는 전시장의 전경, 조각 작품, 드로잉 이미지를 좋아하는 편이다.


전시장 전경을 볼 때는 조명과 사람들의 관람 방식, 작품 배치, 정보를 전달하는 캡션의 위치가 자연스럽고 보기 편한지 등을 본다.

작품들이 큐레이터의 의도에 따라 가지런히 걸려있는 전시도 좋고, 자유롭게 탐구할 수 있게 자유롭게 배치된 작품을 보는 것도 즐겁다. 때론 각각의 작품들보다 멀리서 그 전체를 볼 때 마음이 흐뭇해지기도 한다.

작품들이 자신의 위치에서 존재감을 뿜어내는 풍경을 보는 재미가 있다.


조각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존재감' 때문이다.

조각은 부피감이 있다. 벽에 걸릴 만큼 작은 작품도 있을 수 있지만 사람 크기만큼의 큰 작품이라면 전시장 어디에 있어도 그 존재감이 드러난다.

조각 작품은 관람객과 마주치게 된다. 그곳에 무언가 놓여있다는 것을 지각하는 행위는 관람동선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일정 간격을 유지하며 그 옆을 지나는 동안 작품과 사람은 조금 더 직접적인 관계를 맺게 된다. 톡 튀어나와 반겨주는 느낌이 있다.


마지막으로 드로잉이다.

작가노트, 작품을 구상하게 된 그 시작점, 아이디어를 구경하고 전개되는 과정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러프한 드로잉물을 보며 상상하는 동시에 작가의 의도대로 완벽하게 마무리된 작품을 마주하는 기쁨이 있다. 이러한 스케치에서 시작했구나, 날 것 그 자체를 보는 재미랄까. 특히 납작한 2차원의 드로잉에서 현실로 튀어나온 작품을 보는 경험은 상상보다도 더 입체적이다.





2차원의 드로잉과 3차원의 조각은 지독하게 얽혀있습니다. 드로잉은 하나의 조각품을 완성되기 위한 과정 같지만, 동시에 독립된 시리즈 같기도 하죠. 조각을 볼 때와 또 다른 해석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대한 나무 조각만 보면 인간인데, 드로잉은 꼭 외계인 같고, 한 개가 아닌 여러 개의 생명체의 집합 같고… 드로잉은 조각을 대체할 수 없고, 조각 또한 드로잉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드로잉과 조각을 겹쳐둔 전시를 통해서, 우리는 둘 사이의 번역 가능성과 불가능성을 고민해 볼 수 있겠네요.


(...)


드로잉이란 무엇일까요? 각 아티스트의 작품 세계에 드로잉은 어떤 다른 흔적을 남기고 있을까요?

커다란 캔버스로 옮겨지기 이전의 단계이기도, 그 자체로 하나의 온전한 작품이기도, 끊임없는 수행이기도 한 드로잉.


- 위베이크, [에디토리얼] 피카소, 끝나지 않는 드로잉



삶의 조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


졸업 후, 좋은 기회로 리서치를 기반으로 한 전시 프로젝트에 합류하게 되었다. 6개월 중 3-4개월은 사료 조사 및 인터뷰로 자료를 수집하고, 한 지역을 계속해서 오가며 주민 인터뷰도 하고, 작가님들과 숲길을 걸으며 생태 리서치도 진행했다.


리서치와 아카이빙 작업이 동시에 굴러가며 다양한 이야기를 수집했다. 전시가 다가오는 두 달 동안은 정신없이 전시 오픈 및 진행에 필요한 것들을 점검하고 만들었다.


전시 오픈 직전,

그동안 쌓인 것들을 바라보는데

모든 게 사람이고 이야기이고 삶이었다.


우리는 살다가 어쩌다 마주친 이방인일 수 있었다.

삶의 기억들을 나눠준 주민들과 그들이 적극적으로 이어준 소중한 인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우주를 완성했다.

그 지역의 지리적 특성, 자주 오가며 마주친 나무와 풀과 새들의 이야기, 주민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일거리, 일하는 방식과 쉬는 방식, 잊혀 가고 있는 오랜 이야기, 어느 장소에 얽힌 주민들의 기억들. 지역과 삶이 녹아든 전시는 지역의 어느 숲길 곳곳에 작품을 놓아두는 형태로 3일간 진행되었다.


전시 기획팀과 참여 작가님들과 지역 주민들이 진심으로 밀도 있게 지역을 탐구한 6개월이었다.

함께 책을 읽고, 자연 속을 거닐며 나눈 이야기, 한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만들어내기 위해 나눈 모든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즐거웠다. 이 경험으로 나는 이 일을 하며 만나는 사람들이 너무 좋아졌다.

나에게 미술과 전시, 그 첫 단추는 '사람들'이었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사람들, 호기심과 감탄을 숨김없이 표현하는 사람들, 관심이 가는 하나에 주목하여 넓게 이야기를 펼쳐낼 수 있는 사람들과의 인연은 그 순간에 함께 머무를 수 있다는 것 만으로 나에게 영감이 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지난 2년 동안 미술과 영감, 연결과 소속감, 만남과 이야기, 작품과 현실, 그 경계를 넘나들며 항해를 이어오고 있다.



관계 맺음

: 멀거나 가깝거나


미술은 간결하면서도 어렵다. 현대미술은 어렵다고 많이들 말하고 나 역시도 동의한다.

그러나 동시대 미술의 탁월한 점은 현시대의 이야기가 담긴다는 것이다. 요즘의 이슈,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작업들.


현대미술의 영역으로 넘어갈수록 이미지가 어려워지지만 그 안에 담긴 의미는 말로써 명료해질 때가 있다.


나는 장소특정적 전시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전시장의 전경은 다양한 요소들로 가득 차있다.

장소특정적 전시는 대체로 '그 장소'에서 할 수 있는 한정적 경험이다. 또한 작품의 배치로 관람객과 작품 간의 어떤 의미를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래서인지 전시장의 전경과 작품들 간의 관계, 작가가 해석한 장소적 특성들이 드러나는 점이 재미있다.


지금 이 공간에 이 작품이 여기에서 의미를 가진다.

예를 들어 리처드 세라의 <기울어진 호> 작품이 일부러 시청 앞 광장에 세워진 것처럼.


시민들이 동선상 불편을 호소했지만

사실 그 '불편함'이 작가의 의도였다면?


광장 한가운데 벽이 생김으로써 사람들은 벽을 피해 돌아가야 한다. 익숙한 공간에 새로운 경험, 지각을 불러일으키고자 한 것이다. 작가는 ‘작품이 시청 앞 광장, 이곳에서 의미를 가지는 것이다.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그 의미를 잃어버린다’고 말했다.

많은 논란 속에서 결국 이 작품은 철거되었지만

<기울어진 호>는 '장소특정적 미술'의 대표 작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https://www.artinsight.co.kr/m/page/view.php?no=67397#link_guide_netfu_64709_77360


지금, 이 시간과 공간에서 존재하는 작품과 그 의미, 지나고 나면 사라지는 전시의 '현재성'이 좋다.


나는 현재에 충실하면 미래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과거는 현재에 충실한 나로 하여금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관계 맺음'도 중요시 여긴다.

개인이 중요한 존재가 되어 전 세계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일은 조금은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 내 주변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고 아낀다면 난 그 관계 안에서 중요한 사람이 될 수도 있고,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는 사람이다. 누군가 너는 쓸모없다고 비판해도 나는 내가 속한 관계 안에서 그 자체로 의미를 가지는 사람이기에 두 다리로 단단히 서 있을 수 있고, 어떤 비난과 검열에도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사람은 관계지향적인 존재라는 말에 크게 동의하는 바다.


그래서인지 현재에 그 중심을 두고 있으면서도 지금 해야 하는 이야기, 이 공간과 사람이 어떤 관계를 맺느냐, 이를 이야기하는 장소특정적이라는 개념이 좋다. 지금까지 참여한 프로젝트도 운명처럼 장소특정적인 전시들이었다.




혹시 미술 또는 전시에 거리감이 느껴진다면 장소특정적, 이라는 키워드가 있는 전시에 도전해 보길 권해본다. 조금 더 능동적이고 해석하며 전시를 관람할 수 있을 것이다!


전시 주제 또는 작품과 관계를 맺어보는

새로운 경험을 해 볼 수 있길.

 

아, 그리고 최근 함께 일하는 선생님들과

'이 작품에서는 어떤 걸 느낄 수 있을까' 대화를 나누다

'근데 꼭 무언가를 느낄 필요는 없지 않나?'

하는 말이 나왔다.

그 말에 생각이 잠시 정지하고, 이내 매끄럽게 굴러갔다. 그렇지, 무언가를 보고 꼭 무언가를 느낄 필요는 없지. 그냥 보고, 읽고 경험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도 있지.


미술관을 자주 찾는 마음은 사실 그리 대단하지 않다. 

그냥 걷고,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무엇이 좋고, 무엇이 불편한지 내 안을 들여다본다.

어떤 주제에 관심이 가는지, 어떤 작품 앞에서 좀 더 머무르고 싶은지를 결정한다.

어쩌면 전시장 안에서 보내는 그 시간만으로 쉼과 여유, 새로움을 느끼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날 좋은 5월, 미술관에 방문하는 일정을 잡아보시길 온 마음으로 추천합니다!



리움미술관, 필립 파레노 전시

국제갤러리, 김윤신 전시

아트선재센터, 리너스 반 데 벨데: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싶다 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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