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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밀 Apr 13. 2024

지구의 시간은

현재에 충실하다는 감각

1.25배속의 삶


요즘 활자 중독처럼 무언가를 끊임없이 읽고 있다. 읽는 행위가, 다른 사람의 삶과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이는 일이 즐겁다. 밑줄 긋고 필사도 해가며 낯선 문장들을 소화하려 노력도 해본다.

그런데 무언가 찝찝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갈급함에 급하게 들이켜는 느낌이다. 좋은 것을 많이 보았지만 잘 소화하고 있다는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다. 인풋이 늘어났지만 아웃풋이 없었기 때문일까?


평일 나의 시간은 바쁘게 흘러간다.

출퇴근 길엔 노래나 팟캐스트를 듣는다. 출근해서 짬이 나면 업무 관련 기사나 다양한 콘텐츠를 본다. 퇴근 후, 운동 또는 학원을 갔다 집에 오면 책을 읽고 다이어리를 쓴다. 그러다 보면 하루가 후딱 간다.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요 두 달 정도를 그렇게 보내고 있다. 평일에 시간이 없으면 주말에 좀 부지런하면 좋으련만 쉬는 날이면 한없이 늘어지고 평일에만 바삐 돌아다닌다.


평일에는 영상을 1.25배속으로 본다. 바쁜 마음은 빠르게 스쳐가는 말소리와 자막을 대변한다. 소화 없이 섭취만 하는 느낌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 것도 같다. 짧은 시간 대비 많은 것을 보고 읽었지만 불안했다. 충분히 체화하여 '나의 것'으로 소화하지 못한 말들이 불안을 만들었다.


이를 인지한 순간 1배속의 삶으로 돌아왔다.

말소리와 자막이 원래의 속도대로 흘러가고 그에 맞춰 생각이 제 속도를 되찾으니 오히려 더 많은 영감이 눈에 들어온다. 한 1년 전부터 중요한 가치로 삼았던 '오늘보다 내일, 한 걸음만 더 성장하자.'는 말을 다시 한번 되새긴다. 급하게 하면 될 것도 안 된다... 천천히 읽고, 적고 쓰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아야겠다.




현재에 살기



나는 '배경'을 보는 사람이다.

너무 속물적으로 보이나?


사실 이 말은 '환경'을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장면을 상상할 때, 나는 미래의 나를 둘러싼 배경, 그림을 떠올린다. 어느 집단에 속하고 싶은지, 어떤 형태로, 누굴 만나며 삶을 유지하고, 일 하고 싶은지를 떠올린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완성시키기 위해 선택의 순간마다 항로를 바꿔왔다.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길목이 조금은 무모하고 용감했다. 다행인 것은 그 도전에 대해 의미를 찾을 수 있게 기회가 주어졌고 각 목적지마다 나름의 의미와 연결지점들을 찾아 맥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할 거라면 하고 후회하자.'는 신념 하에 도전한 일들이 모여 결과를 맺고, 상상도 못 했던 일들이 현실이 되었다. 일을 하며 업무의 경계에 대해 고민하고, 수동적이던 내가 질문이 생겨가고, 어떤 것이 나에게 의미를 가지는지 하나씩 알아가고 있다.




그러나 매번 비슷한 듯 다른 일에 도전하면서 아쉽게 생각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숲을 보는 일이 어렵다는 것. 

나는 좋은 팀원이자 내 몫을 온전히 해내기 위해 노력했지만 디렉터님이 그랬듯 전체를 보는 능력이 부족했다. 숲이 아닌 나무를 보는 사람. 사람은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한다고 하니 전체를 보고 큰 판을 짜는 사람을 동경하게 된 것 같다.


그리고 얼마 전, 함께 일하는 분들께 '나는 전체를 보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게 단점인 것 같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다. 말이 끝나자마자 두 분이 그게 왜 단점이냐며 입을 모아 말하셨다.


그 순간 '이게 단점이 아닌 나의 특징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위로가 된 것은

얼마 전 <롱블랙> 콘텐츠에서 읽은 김규림 디렉터님의 말이었다.


"한 때는 숲을 볼 줄 모른다는 게 콤플렉스였어요.

저는 앞에 있는 꽃 한 송이, 나무 한 그루를 가꾸는 것에 훨씬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거든요.

숲을 조경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일을 하는 사람들도 필요한 것 아닌가요?"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단점도 잘 승화하면 장점이 된다는 것을 응용해서

이제 나는 바꿔 써보려고 한다.


나는 전체의 그림을 보는 일에는 서투르지만

눈앞의 디테일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므로 '현재'에 강하다.

현재의 순간들을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만들어질 미래가 기대된다.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점검하기 위해

바라는 미래상을 그리고,

그를 토대로 계속해서 항로를 바꿔보고 있다.






지구의 시간은 너무 빨라서 금방 현재가 과거가 되고,

마치 드넓은 우주처럼 미래가 까마득해서 무섭고 조급해지기도 하지만

불안보다는 현재에 충실하다는 감각을 채우며 오늘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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