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백 코리아. 내 집 그리고 회사.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1)

by 늘작가

주재원 시절은 나의 인생, 직당 생활의 전성기였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내 인생 최악의 시기이기도 했다. 주재원 생활 동안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특히 마지막 해였던 2009년은 다시는 생각하고 싶지 않고, 겪고 싶지도 않은 내 인생 또 한 번의 끔찍한 시기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면서 전 세계 네트워크들의 비즈니스 상황이 좋지 않게 되었다. 인도네시아 사무소도 상황이 좋지 않았다. 좋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어마하게 험악한 상황이었다. 나는 2009년 6월 본사 귀임 발령이 났는데, 군대 말년처럼 주재원 말년의 경우도 귀임 발령 후 몇 개월 동안은 가족 귀국 챙기고, 해당 국가 여행도 자주 하면서 해피하게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한국행 비행기 타는 마지막 날까지 일을 했었다. 그것도 보통 일 많이 한 수준이 아니라 뼈를 갈아 넣은 수준으로 일을 했다.


나는 일하면서 "갈아 넣는다."는 말을 아주 아주 싫어한다. 갈아 넣는다는 것은 일을 즐기는 것이 아니고 싫어도 한다는 의미이다. 나를 갈아 넣으면 정신과 육체가 망하는 지름길이다. 물론 어쩔 수 없이 나를 갈아 넣어야 할 때도 있겠지만 그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2009년 그 사건 이후 나는 절대, 네버 일하면서 나를 갈아 넣지 않았다. 설령 회사가 원하더라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임원이 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이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너무나 잘한 결정이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 글로 남길 수는 없지만, 이때 과도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공황장애’까지 얻는 최악의 상황까지 갔었다. 내 의지대로 몸이 움직이지 않았고, 말이 제어도 되지 않고, 헛소리와 헛것까지 보이는 신기한 경험을 했다. 다행히 병을 초기에 발견해서 조치를 잘하고 가족들과 회사에서 적극 도와주어, 회복이 잘되어서 무사히 살아서(?^^)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출처 : AP/뉴시스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기억이 난다. 귀국한 날이 2009년 6월 6일 현충일이었는데, 인천공항에 이른 아침에 내려서 숨 쉰 조국의 공기가 얼마나 좋았던지. 그리고 맹세했다. "앞으로 다시는 주재원 나가지 않는다.!"


늘작가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게 인생 내공이 깊고 강한 것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었기 때문이다. 흙수저 출신인데 금수저 되었다가 다시 무수저로, 죽음 문턱까지 2번, 공황장애까지, 자녀 사춘기 때 자녀 문제도 또 한 번 인생 바닥까지, 회사 부장 팀원까지 등등. 와 진쫘 많네.




한국에 돌아와서 주재원 기간 종안 모았던 돈으로 전세금 내주고 드디어 꿈에도 그렸던 내 집에 입주를 하게 되었다. 강남 25평에 썩다리 아파트였지만 올 수리를 하여 이사한 후 첫 출근 한 날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버스를 타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양재천과 강남의 풍경을 보면서 옛 생각이 났다.


이미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1997년 양재천 변 18평 빌라에서 신혼을 시작했지만 1년 만에 쫄딱 망해서 양재천 변 반지하 단칸방으로 내려갔었다. 그 이후 이 동네를 떠나 서울에서 제일 싼 동네를 전전하다 이역만리 인도네시아에 돈 벌러 갔었다. 그리고 11년 만에 이렇게 다시 재기하여 강남 내 집에서 출근하게 된 것이 정말 꿈인 듯하였다.


그날 출근길 버스 안에서 장인/장모님께 핸드폰 문자를 보냈었다. "금쪽같은 첫 째 딸을 저에게 주었는데, 1998년 망해서 전 재산 다 말아먹고 따님 고생 말도 없이 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믿고 격려하고 도와주시어 진심 감사합니다. 그동안의 고생이 드디어 열매를 맺었습니다. 오늘 10여 년 전에 등기 친 집에서 드디어 첫 출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잘 사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정확한 문장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이었다. 이렇게 문자를 보내면서 지난 인생이 오버랩되고 펑펑 눈물을 흘렸었다. 집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나는 인생이고 영혼이라고 생각한다.


그때 한 약속을 지금까지 지켜가고 있고, 앞으로 죽을 때까지 지킬 것이다. 주재원 기간 동안 장인/장모님 일 년에 1~2번 한 달 동안(인니 비자는 한 달) 인도네시아 초대해서 살게 해 드렸다. 함께 골프 치면서^^


나의 새로운 꿈은 지금 사는 이 아파가 신축되면 장인/장모님 초대해서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조식 먹고, 사우나에 수영하고, 골프 연습장에서 골프도 치고, 스카이라운지에서 커피 한잔을 하는 것이다. 그 꿈 이루어지는 날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


2009년 양재천변 지도 (출처 : 카카오맵)


카카오맵에서 스샷 한 2009년 양재천변 지도이다. 늘작가 사는 아파트가 이 지도안에 있다. 개포 1 2 3 4 5 6 7 8 9단지 모두 재건축되기 이전이다. 이때 양재천변 아파트 34평 8~9억이면 살 수 있었다.


늘~NOTE

내가 저축해서 돈 모으는 속도보다 물가/인플레이션이 항상 더 빠르다. 그래서 우리는 인플레이션 헤지를 위해 반드시 우량 자산을 가져야 한다


인플레이션(출처 : 모름)


부동산이든, 주식이든, 금이든, 비트코인이든. 단, 그 시기와 방법을 잘해야 한다. 거꾸로 질렀다가는 심하게 고생할 수 있다. 지난 20~21년 부동산과 주식, 코인 꼭지를 잡았던 경우처럼. 잊지 마라 환희에 팔고, 공포에 사라. 이것만 지키면 부자가 된다. 그리고 잘 활용하는 것도 아주 좋은 인플레이션 헤지 방법이다. 저축을 하는 것보다 본인이 감당하는 레버리지(대출)를 해서 집을 산 후 원리금을 갚아가는 것이 저축하는 길보다 훨씬 빠르게 부자가 된다.




이렇게 6년 동안의 해외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기쁜 마음으로 본사로 복귀했지만 상황이 녹녹하지 않았다. 귀임한 해가 2008년 금융 위기를 겪은 다음 해였고 주재 생활이 오히려 나에게 핸디캡이 되어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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