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2)

by 늘작가

본사에 귀임하여 힘들었던 이유 중 하나가 주재원 나갔을 때 나를 밀어주고 키워주었던 임원 분들이 대부분 퇴사를 했기 때문이었다. 회사에서 힘은 인맥이고 라인이다. 또한 후진국에서 근무한 것이 상당한 핸디캡이 되었다. 후진국에서 근무하는 주재원들의 좋지 않은 점 중의 하나는 한국이 선진국이라 후진국에서 일을 하게 되면 상대적으로 나의 실력이 뒤쳐진다는 것이다. 특히 2010년대는 한국 사회가 급격하게 디지털 사회로 변화하는 시기라서 더 그랬다.


그래서 귀임 후 당연히 받아야 할 팀장 보직도 받지 못했고, 내가 일했던 글로벌 부문에서도 발령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회사에서 입사 후 일해 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사내 인맥도 전무하다시피 한 다른 부문/팀으로 발령이 났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은 2008년 금융 위기 다음 해라서 이렇게 발령이 난 것도 감사해야 할 상황이긴 했었다.


내가 간 팀은 주재원 기간 동안 배웠던 업무와 노하우를 활용하기 어려웠던 부서라서 많이 힘들었다. 더구나 팀장도 아니고 팀원 자격이었고, 발령 난 부서장은 내가 이 회사 들어와서 겪었던 최악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이었던 것이다. 당시 본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서 다시 해외 주재원으로 나갈까 생각도 했었지만 주재원 생활 때 겪었던 고생이 트라우마로 남아서 생각을 접었다. 참을 인자를 하루에 몇 번이고 새기면서 회사를 다녔었다.


인내 (출처 : 햇살콩 켈리 & 일러스트)


이렇게 본사에 돌아와서 힘들게 회사 생활을 하게 되니, 회사를 옮겨야 하나 하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어느 날 대학 선배 팀장 한 분이 본인 팀으로 와서 일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했었다. 이 선배는 주재원 이후 본사에 들어와 고생하고 있는 나를 눈여겨보고 있었는데, 팀원이 주재원으로 나가게 되어 빈자리가 생겨 나를 부른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왜 혈연, 지연, 학연이 중요한지 실감하게 되었다.


고민하다가 제의를 받아들이고 그 팀으로 갔다. 그런데 이 부서는 현업이 아니라 스탭/지원 부서였다. 우리 회사 스탭 부서는 스스로 손들어서 가는 곳이 아니고 타의에 의해 가는 경우가 많았다. 주위에서는 나의 이런 행동을 보고 의아해했었다.


다른 회사도 그렇겠지만 현장/영업 일선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임원을 포기하는 것이다. 물론 스탭/지원부서에서도 임원이 나오긴 하지만 그것은 재무나 인사 전문가 등 전문 보직 일 경우이다.


임원 (출처 : 기업나라)


내가 왜 이런 행동을 했을까?


브런치스토리에서 여러 번 이야기했지만 해외주재원 시절에 나의 나이/능력/고과 등 모든 면을 고려해 볼 때 이 회사에서 임원을 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본사에 귀임해 보니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회사에서 이룰 수 없는 꿈(임원)을 꾸면서 현업에서 뺑이 치는 것보다 차라리 스탭 부서로 가자. 스탭 부서에는 우수한 인력들이 상대적으로 적으니 내가 이곳에서 두각을 낼 자신이 있다. 이곳에는 나같이 글로벌 경험을 가진 인력은 많지 않고, 고위 임원과 교류도 상대적으로 많이 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임원 승진은 어렵겠지만 일만 잘하면 고과는 더 잘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그러면 당근 급여는 높아지고, 조직에서 롱런도 가능할 것이다. 가늘고 길게 회사 생활을 하자. 정년까지 Go Go!”


최선이 아니면 차선으로

최선 차선 (made by 늘푸르게)


늘~NOTE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생 죄우명 중 하나이다.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떻게 매번 최선의 길만 갈 수 있겠는가?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한 것이다. 대학 입학, 첫 직장 선택 심지어 결혼까지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요즘 많은 후배님들이 첫 직장으로 대기업을 원한다. 물론 중소기업보다 대기업을 첫 직장으로 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기업 중 대기업은 10%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그 어려운 10%에 들어가기 위해서 될 때까지 취업 재수를 해야 할까?


늘작가도 취업 재수를 한 사람이라 그 마음 잘 안다. 그런데 나의 경우 취업 재수는 딱 일 년이고 만약 안되면 중소기업에도 들어간다고 마음을 먹었고 실제로 지금 다니는 회사 합격 이전 중소기업에 합격이 되어서 그 회사도 몇 주일 다녔었다. 만약 이 회사 합격이 되지 않았다면 그 회사 다시면서 다른 길을 찾았을 것이다.


후배님들 ~ 최대 2년 정도 취업 재수를 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어디든, 최저 임금 주는 아르바이트라도 일을 시작 한 후 다음 길을 모색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일 것이다.




나는 이렇게 차선의 선택을 하고 회사에서 포지션과 미래를 리셋했다.


리셋 (출처 : 모름)


당시 내가 직장 선후배 동료에게 스탭 부서로 가서 부장으로 정년 퇴직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는, 다들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고 했다. 어떻게 이 회사에서 정년퇴직이 가능하겠냐? 그리고 스탭 부서로 가면 더 빨리 퇴직(잘릴) 할 것이라고.


하긴 그때까지 일반 기업 정년퇴직은 만 55세이었지만(법적으로 정해진 것은 아니었다), 우리 회사에서 임원 외 부장으로 정년 퇴직했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대부분 50대 초반에 명퇴를 했었다. 그리고 연차 높은 인력들이 스탭 부서로 가는 것은 퇴직(특히 명퇴) 코스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나는 역발상으로 오히려 이 분야/부서에서 더 오래 직장을 다닐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런 확신을 가지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그 무렵 만 60세를 정년으로 하는 근로기준법 통과였다. 작은 기업을 모르겠지만 대기업은 앞으로 직원들을 강제로 퇴직시키기는 힘들 것이라는 앞서 나간 생각을 했다.


이렇게 나는 직장에서 노선을 임원이 아니고 평사원 정년퇴직으로 정했다. 이때부터 남들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었던, 남들이 가지 않았던 길을 선택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길 (출처 : 손경민. feat. 이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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